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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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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읽는 법 한바탕 왁자지끌하던 모내기가 끝났다. 며칠동안 내린 비로 뽀도랑 물이 넘쳐 앞뜰은 명경알 같다. 물꼬 다듬느라 다들 바쁘다. 가을까지 벼농사의 긴 장정이 시작되었다. 앞산 솔밭길을 돌아오다보니 문반장네 마늘밭은 햇마늘 추수에 들어갔다. 여긴 심고 저긴 거두고... 모두가 엊그제 같은데 또 한 해가. 들판길을 걸어보면 세월을 가는 줄 안다.
새벽비 날씨가 참 어수선하다. 봄날씨가 변덕스럽다곤 하나 요즘처럼 이런 날은 드물었다. 밤새 휘영청 교교했던 달빛도 언제 그랬냐는듯 어둠에 묻히고 새벽 동틀 무렵이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 하루 이틀이 아니다. 홈통을 타고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요란하다. 오늘도 이 시간에 창대같은 비다. 오늘은 번개 뇌성을 동반했다. 두터운 커튼이 극장의 빈 스크린처럼 허옇게 비쳤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눈여겨보지 않았던 며칠새 비닐하우스 안에 한 그루 심어두었던 토마토에 노란 꽃이 한바탕 피었다. 지줏대를 세워주고 단끈으로 묶어주었다. 너저분하게 자란 곁가지도 가위로 잘라냈다. 바깥은 가랑비가 온다.
해바라기 모종을 심으며 해바라기 씨앗이 좋아서가 아니다. 올해도 해바라기 모종을 심으면서 '해바라기'를 생각한다. '해바라기' 영화를 관람한 건 1974년이다. "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소피아 로렌의 짠한 연기도 그렇거니와 끝없는 샛노랗게 핀 해바라기 벌판이 뇌리에 남아 해바라기하면 '해바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귀촌해서 밭을 가지게 된 다음부터 해바라기를 심었다. 밭 가생이 경계선에 길게 늘어선 해바라기는 장소로서 안성마춤이다. 작년에는 모처럼 모종을 100 개나 심었는데 비가 너무 와서 해바라기꽃을 볼 수 없었다. 그 실망감이란... 올핸 이웃 마을 단골 팔봉이발소에서 종자를 어찌해 구해다 모종을 만들었다. 올 여름... 활짝 핀 해바라기의 희망을 섞어본다.
지금쯤 모종시장이 궁금했다 태안읍 외곽에 농자재마트가 새로 생겼다는 광고 전단지를 본 건 꽤 오래 전이다. 오늘 처음 들러보았다. 없는 것 없이 시원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직원들의 응대도 친절했고 얼핏보아 값도 쌌다. 농협 조합원으로서 죽으나 사나 '농협 자재마트'를 이용했는데 대형 경쟁업체가 나타났다. 읍내 나온 김에 모종시장을 갔다. 지금쯤 모종시장이 어떨까 궁금했다. 16년 단골 모종아지매도 만났다. 어린 모종이 바깥으로 나오기엔 날씨가 들쭉날쭉해서 아직 때가 이르다. 4월 말, 5월 초까지 두어 주일은 기다려야 모종시장이 활기를 뛸듯. 모종시장도 그렇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하드라도 재래시장 한 귀퉁이에 모종가게가 두어 집 뿐이었다. 자유 경쟁이 사람을 날쌔게 만든다. 목로주점 아지매 술도 맛있고 싸야 먹는 법.
'방아'를 알면 고향이 보인다 현관 앞에서 뒤안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방아밭이 있다. 보라빛 꽃이 지금 만발했다. 방아도 내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씨를 맺어서 떨어지면 내년 봄에 새싹이 돋아나 여름내내 무성하게 방아밭을 만들어줄 것이다. 해마다 저절로 방아밭이 늘어난다. 내가 해주는 거라고는 물을 자주 주는 것 뿐이다. 가끔 퇴비를 주긴하지만 다른 작물에 비하면 신경을 덜 쓴다. 그래도 잘 자라주는 게 고맙고 신기하다... 2011년 9월18일자 귀촌일기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봄이 되니 방아 새싹이 돋아난다. 지금 많이 자라는 이곳을 표고버섯 재배장으로 활용하자니 방아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었다. 방아는 서부 경남 지방 사람에겐 널리 알려져 있다. 부침이나 된장찌개에 필수적이다. 10여 년 전, 우리집 이 방아는 서울에서 내가 살던 ..
봄은 어디서 오는가 춘분이다. 봄은 매화로부터 온다지만 나에게 마음의 봄은 이미 왔다. 대청소.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몇년동안 미뤄왔던 비닐하우스 정리 정돈... 오늘도 하루종일 하우스 안에서 살았다. 여러날째다. 서두를것 없다. 새 달이 되면 시작할 모종작업 공간부터 마련했다. 미니 보온온상 자리다.
농부, 일은 하기 나름 씨감자를 심은 뒤 곧장 밭이랑 비닐 덧씌우기작업에 매달려 거의 일주일째 하고 있다. 이쯤 크기 밭뙤기, 힘깨나 쓰는 장골들이야 하루 반나절이면 거뜬히 해낼 일이다. 아무려나. 처음엔 버거워 보이던 일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어느새 끝이 보인다. 사래가 길어 하루에 한 줄씩 하다가 어젠 나도 모르게 두 줄을 했다. 마침 햇살이 좋았다. 풋풋한 흙냄새 맡아가며 땅과 더불어 하는 일... 참 좋다. 봄이다. 오늘은 진종일 오락가락하며 빗방울이 듣는다. 봄날에 어쩌다 봄비, 이런 비 쯤이 무슨 대순가. 사방이 탁트인 밭이라 이웃사람들이 지나가다 한마디씩 거든다. "쉬었다 해유... 혼지서두 용케 잘하시네유." "어찌그리 이쁘게 지어셨대유♩". "뭘 심을 거유?" 밭둑을 가운데 두고 나누는 대화, 기분좋은 말들이다..
소나무도 무리하게 다이어트 하면? 마당에 홍송 두 그루가 죽었다. 봄부터 한 그루가 잎이 마르고 시들하더니 여름을 지나며 또 한 그루가 그렇다. 지난해 가을 정원수 미화작업을 하면서 전정을 했는데 수세를 무시하고 가지를 너무 많이 잘라낸 강전정 탓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작년 정원사를 오늘 불러다 문의를 했더니 소나무 깍지벌레라네요. 사시사철 울울창창 16년동안 잘 자라던 소나무가 오비이락격으로 이럴 수가. 나머지 남아있는 세 그루를 어쩐담. 변함없이 오늘도 직박구리가 날아왔다. 답답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2020.8.29자 내 블로그) 재작년 10월, 마당에 있는 소나무 전정을 했다. 귀촌해서 집을 지을 때 인근 나무시장에서 사다 심었던 홍송 다섯 그루다. 16년동안 잘 자랐다. 솔가지가 너무 어수선하게 무성해서 전정작업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