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村漫筆 (632) 썸네일형 리스트형 택배, 제설 작업과 군수 폭설이 내리는데도 택배가 왔다. 신기하고도 고마운 일이다. 우리집 뒤 동서로 난 길은 겨울철이면 위험하다. 양쪽이 비탈진데다 특히 마을 들머리 동쪽은 꽁바우(꿩바위)가 있는 꽁재다. 몇 구비 꾸부러진 낭떠러지에 응달이라 눈이 내리는 겨울철이면 빙판이 되어 통행하는 차들이 전전긍긍한다. 하루에 여덟 번 들어오는 마을버스가 끊긴 적이 더러 있다. 가을 무렵에 고갯길 군데군데 모랫주머니를 갖다두거나 제설통에 모래를 채워두는 걸로 월동 대책은 사실상 끝이었다. 얼어붙은 모랫주머니를 가져다 터트려가며 뿌릴 주민이 없다. 고령화되었다. 요 며칠 열흘 사이에 한파와 함께 눈이 세 번 내렸다. 충청도 지방으로선 드문 10 센티를 상회하는 폭설이다. 그런 날 마다 깔끔하게 제설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이른 새벽에 제설차..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배추는 살아있다 ‘겨울이 되고서야 소나무와 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했다. 어디 송백뿐이랴. 겨울 채마밭에 배추. 지난 가을 김장배추가 그대로 남아 푸르름을 뽐내고 있다. 영하 10도를 넘나들던 맹추위가 그동안 몇 날 며칠이던가. 봄날 식탁에 봄동 겉절이.... 그리고 노란 배추꽃 필 때를 기다려 삼동설한을 넘길 태세다. 대봉 홍시, 그리고... 함박눈이었다. 눈이 오려면 좀 더 올 것이지 진눈깨비로 변하면서 내리다 말았다. 햇살이 돋았다. 곧장 한파가 닥친다기에 따다둔 한 접 남짓 대봉감을 서둘러 분류했다. 잔가지를 잘라내고 홍시가 거의 다 되 이내 먹을 감과 한동안 익기를 기다려야 하는 감을 구분하여 나누어 담는 작업이다. 딸 때 땅에 떨어지면서 깨진 놈도 더러 있다. 큰 방 창가에는 두 접 가량의 단감이 대봉이 오기를 기다리며 이미 터를 잡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감식초를 담글 요량이다. 겨우내 한두 개씩 꺼내 먹을 대봉홍시야 남겨두고서. 단감과 사탕감... 귀촌의 소소함에 대하여 매사에 시시콜콜 분석하고 따지는 성향이 아닌데다 세월이 갈수록 그게 싫다. 그렇커니 하고 지나가는 편이 편하다. 오늘 안마을 버갯속영감님댁에 갔더니 90세 '버갯속할머니'가 조금 전에 아들이 사다리에 올라가서 '사탕감'을 잔뜩 땄다며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주시더라. 여기 충청도 지방에선 단감 대신 사탕감이 대세다. 이웃 아주머니도 우리집 단감나무를 으레 사탕감나무로 알고 있다. 며칠 전에 내가 단감을 따고 있는데 "올해 사탕감 많이 열렸슈!..." '사탕감'에 힘주어 방점을 찍으며 한 말씀하고 지나갔다. 귀촌 17년이 되도록 사탕감을 맛 본 기억이 없는건 우리집에 단감이 있는데 굳이 사탕감에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마침 잘 됐다. 단감과 사탕감이 어떻게 다를까? 모양과 크기, 맛은? 사탕.. '우거지국'과 '시래기국' 스산한 날씨. 따끈할수록 시원한 배추우거지국과 무시래기국, 어느 쪽이 더 시원할까? 소줏잔깨나 축낸 다음날, '우거지상'으로 아침 밥상에서 찾아헤매던 우거지국이 그런 면에서 단연 한 수 위다. 귀촌한 뒤 배추잎 배추우거지와 무청시래기를 만들기도 했으나 번잡스러워 최근에 와서는 무청시래기만 만든다. 추억 삼아라면 모를가 구태여 우거지국을 찾을 일이 없다. 쉰 개나 되는 월동무를 땅에 묻는 바람에 무청시래기가 잔뜩 생겼다. 한가롭던 처마밑에 빨랫줄이 갑자기 붐비기 시작했다. 곧 무말랭이를 만들면 앞으로 무청시래기는 더 늘어날 것이다. '도사리'...무슨 뜻일까? '배추 도사리'... '도사리 시금치'... 라고 부른다. 긴 겨울을 지나 초봄까지 있는듯 없는듯 다시 살아나는 배추, 시금치 등 채소를 말한다. '도사리'는 '되살이'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엄동설한의 고생 끝에 땅달보처럼 바닥에 붙었다시피 해서 형색은 볼품이 없어도 그 고소한 맛이야... 뾰쬭하게 채소가 없는 봄철에 미각을 살려주는 채마밭의 귀공자다. '날 좀 보소!'하며 어느 이른 봄날 자태를 드러내는 채마밭 도사리 배추나 도사리 시금치를 보면 생명의 강인함을 새삼 알겠다. 밭 고랑에서 저절로 나서 자란 도사리의 기세. 해마다 나는 겨울내내 상추를 재배한다. 노지 꽃상추다. '도사리 상추'와 다를 바 없다. 올해는 씨앗을 뿌리는 시차를 달리해서 두 군데다. 쥐눈같이 쬐끄만 상추 새싹이 긴 겨울을 이긴.. 소피아 로렌, '해바라기' '해바라기' 영화를 관람한 건 1974년이다. 중앙청 서편에 있던 공보부 청사 강당에서다. 이태리 영화 '해바라기'를 수입했으나 해바라기가 소련 국화인데다 촬영 무대가 소련이어서 이념성 문제로 일반 시중에 개봉 허가가 나지 않았다. 당시 중앙청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보기 드문 영화를 시사회 형식으로 가끔 보여주곤 했었는데 그 때 '해바라기' 영화를 관람했던 것. 전쟁의 비극에서 비롯된 남여간의 사랑 그리고 엇갈린 운명... "아..." 소리가 절로 나온 소피아 로렌의 짠한 연기도 그렇거니와 끝없는 샛노랗게 핀 해바라기 벌판이 뇌리에 진하게 남아 해바라기하면 '해바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해마다 나는 해바라기를 심어왔다. 올핸 아예 해바라기 밭을 크게 가꿔볼 요량으로 미리 종자를 구해다 이른 봄.. 운수 좋은 날 & 기분 좋은 날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인력거꾼 김 첨지에게 그 날 하루는 결코 운수 좋은 날이 아니었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니 농삿꾼인 나에게 오늘은 소소하게 '기분 좋은 날'이었다. 밭에서 갓뽑은 알타리무를 서울로 급히 택배로 보낼 일이 있었다. 인근 팔봉우체국을 들렀다가 이왕 나온 김에 잘 됐다하고서 이발소를 찾아갔다. 가을걷이다 뭐다 하느라 머리를 깎을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거 뭐냐? 오늘따라 '정기 휴일'. 저만치서 정원을 손질하고 있던 이발소장님이 나를 보고서 머리를 깎아주겠단다. 머리를 깎고 보니 앗차! 이발요금이 없다. 이발 계획이 없어 현금을 챙겨나오지 않았다. 도리없이 이발 요금을 외상으로 긋기는 난생 처음. 겸연쩍어 하며 나오려는데 이발소장님 말씀 : "과꽃, 꽃씨..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7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