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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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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같은 놈? 마늘과 양파 뽑아낸 동밭이 잡초로 뒤덮혔다. 예취기가 효자다. 잡초를 잘라냈더니 시원하다. 옆집 밭과 경계선에 심었던 해바라기가 비로소 돋보인다. 예취기 작업을 할 때마다 일과 운동의 상관관계를 떠올린다. 일이냐? 운동이냐? 단순작업이 그렇다. 해바라기는 해를 등지고 꽃이 핀다. 양지만 쫒는 기회주의자 아니다. '해바라기같은 놈'이란 말을 해바라기가 들으면 심히 억울해 할만하다.
비와 비 사이 여름도 아니갔는데 가을 장마라. 오늘 왠일로 이른 아침부터 햇살이 비친다. 어제 마른 가지 그루터기를 뽑아내고 그냥 둔 가지밭 이랑에 김장무나 마저 뿌려야겠다 하고 밭에 내려갔다. 사흘 전 토마토 자리에 뿌렸던 김장무 씨앗이 그 사이에 파릇파릇 새싹이 되어 올라왔다. 이 녀석들이 한 달 안에 촉석루 기둥같은 대왕무가 된다니... 잠시 그 사이를 못참아 후다닥 비를 뿌린다. 허겁지겁 마무리를 하는둥 마는둥 하우스 안으로 숨바꼭질 하듯 긴급 대피했다. 몰려오는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
지못미!...올해 마지막 가지나물 음식도 제철이 있다. 식재료 채소가 일년내내 채마밭에 있는게 아니다. 노지재배 작물일수록 더 그렇다. 한동안 소나기 퍼붓듯 열렸던 가지가 끝물이다. 아침저녁으로 건들바람이 일자 가지꽃이 작아지고 열렸던 가지가 꼬부라졌다. 시엄시엄 내리는 늦여름 장마에 부추는 아직 신났다. 그러나 부추도 두어 주일 지나면 꽃대가 올라오고 잎이 어새지면서 마른다. 김장배추를 심기 위해 늙은 가지가 주렁주렁 달린 가짓대를 들춰 뽑아내는데 언젠가 한동안 유행했던 말, '지못미'가 뜬금없이 왜 떠오를까.
우산 쓰고 고추 따다 올라오다 사라진 태풍, 창밖엔 진종일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피클 담근다며 미인고추 좀 따다 달라는 집사람의 부탁을 받고 밭에 내려갔다. 장홧발에 우산을 받쳐들고 고추를 따기는 처음. 비트, 자주양파, 파프리카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 내가 재배한 작물이다. 올핸 어떤 피클 작품이 나올지? 자못 궁금... 귀촌의 하루는 또 이렇게 저문다.
폭풍우에 넘어진 해바라기...세우다 잠결에 창으로 비껴 들어오는 달빛이 대낮같이 밝았다. 어제 늦게까지 하루종일 그토록 난리를 쳤던 비바람을 생각하면 보름달이 얄밉다. ------------- 그나저나 넘어진 해바라기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날이 밝으면 아침에 당장 해야할 일이다. 향일성이라 놔두면 곧장 허리가 꾸부러져 해바라기 농사는 도로아미타불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쑥대밭이 없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키가 10척이다. 몇 달만에 이렇게 자랐다. 우리집 해바라기 밭은 두 군데다. 올핸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철제 지줏대를 촘촘이 박고 빨래끈을 길게 늘어뜨려 묶은 다음, 넘어진 해바라기를 일일이 바로 세워서 해바라기 허리를 하나하나 단끈으로 붙들어 매는 작업. 뒷치닥거리한다는 게 재미없고 힘든 줄 알겠다. 작업이 끝나자마자 하늘을 ..
까치는 복숭아보다 배를 좋아한다 노랗게 잘 익어가는 배나무가 막바지에 수난을 당하고 있다. 까치떼가 번갈아 날아와 파먹기 시작했다. 분탕질로 배나무 아래가 어지럽다. 배봉지를 씌웠는데도 요리조리 찢어내고 파먹는다. 날카로운 부리에 찍히고 나면 상하거나 봉지째 떨어진다. 냄새를 어찌알고 날아드는지 영악스럽다. 얼마전 몇 개 따먹은 복숭아 백도는 날벌레가 기어들긴했어도 까치가 건드리지 않았다. 까치는 복숭아보다 배를 좋아하는가 보다.
'장떡 방아부추전' 부추보다 소풀이라 불러야 정감이 간다. 열흘 전에 화끈하게 깎아주었더니 금새 자란 소풀. 물을 제때 자주 준 덕분이다. 토실토실 오동통하다. 삼단 머리가 따로 없다. 소풀전에는 방아가 들어가야 제맛! 된장이 가는 곳에는 방아가 따라간다. 살짝 된장맛에 어우러진 방아 향. 장떡 방아소풀부치개 이 맛. 그토록 극성맞던 매미소리는 한물 갔다. 방아깨비가 뛰고 잠자리가 난다. 여치가 날아들고. 어디선가 곧 당랑거사가 등장하면 서서히 가을은 완성된다.
'외상거래' 예찬 요즘세상에 혀곧은 소리 해가며 굳이 외상 거래를 틀 이유가 없다. 현금을 꼭꼭 챙겨 다니기도 번잡스러워 훌훌 털고 다닌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외상을 그을 때가 있다. 딱 두군데다. 이웃 마을의 팔봉 이발소와 읍내 모종 가게. 며칠 전, 이발을 했는데 면도까지 12.000원이었다. 모처럼 챙겨간 만 원짜리 한 장에서 2.000원이 모자랐다. '그냥 가셔도 된다'는 이발관장의 손사래도 불구, 힘 주어 외상으로 달아 놓았다. 바로 뒷날 외상을 갚으러 갔더니 방금 채종했다며 종이컵에 접시꽃 꽃씨를 눌러 담아주시더라. 얼마 전, 모종가게 앞을 지나다가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가듯 계획에 없던 모종 몇가지를 외상으로 산 적이 있다. 며칠 뒤 외상값 15.000원을 갚으러 갔다. 모종아지매가 함빡 웃음을 덤뿍 보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