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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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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봇길에 만난 '버갯속 할머니' 호남마늘과 육쪽마늘. 추수한 마늘을 말리느라 집집마다 다들 바쁘다. 곧 농협에서 호랑이보다 무서운 마늘 수매가 있을 것이다. 크기별로 정갈하게 선별을 잘 해야 제금을 받는다. 코로나 19 전에는 전주에 있는 어느 의과대학의 대학생들이 이 때를 맞춰 농촌 일손 돕기 봉사활동으로 몰려와서 일 주일 정도 이집 저집 다니며 도와주기도 했는데 발걸음이 끊겼다. 도리없다. 90세 버갯속 할머니도 거들어야 한다.
'옥향 할머니'... 90세의 패션감각 정짓간에 부저깽이도 달려나와 농삿일을 돕는다는 농번기... 한동안 생강 심고 모내기 하더니 이제 마늘 양파 캐는 계절. 이어서 고구마도 심는다. 빨간 황토밭에서 재배한 황토 꿀고구마가 이곳 태안의 특산물. 인력시장에 일꾼마저 달려 눈 코 뜰 새 없다. 마을 초입에서 안 마을로 들어오는 꽁재 아래가 옥향할머니네 고구마 밭이다. 여든 일곱의 나이도 잊은 채 옥향할머니도 고구마 순 놓는 작업을 거든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오붓하다. 갓 비 온 뒤라 빨간 장홧발이 이채롭다. 알룩달룩 패션이 예사롭지 않다. 며칠 전, 댓글로 옥향할머니 근황이 궁금하시다는 분이 계셨다. 블로그 15년에 손님의 주문에 응대하여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는 처음.
며느리 사위 아들 딸...모내기하는 소리 언덕바지 아래는 부산하다. 모내기 하는 소리다. 안마을 박 회장네 논이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객지에 있는 자식들을 모내기에 맞춰 올해도 주말에 소집해 놓았다더니... 품앗이꾼들로 왁자하게 동네 잔치였던 모내기가 이젠 가족단위로 그나마 조용해졌다. 논갈이 써래질이나 못줄 잡아 늘어서 하던 모내기가 트랙터나 이앙기로 기계화되었기 때문이다.
'형님'이 주신 두릅 읍내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둘렀더니 '형님'은 마침 출타중. 두릅 봉지가 들어가는 입구에 얌전하게 놓여져 있었다. 어제 저녁 무렵, 두릅 따 논게 있으니 갖다 먹으라는 건너마을에 사시는 '형님'의 전화를 받고 오늘 찾으러 갔던 것. 많기도 해라. 우리집 두릅은 철 지난 지가 보름이 넘었다. 아직도 딸 두릅이 남아있다니... 산모랭이 하나 차이로 이런 시차가 있다. '형님'은 이곳 터주 주민이다. 귀촌 이후 십여 년에 절로절로 맺어진 인연으로 언니뻘이라는 의미에서 집사람이 부르는 호칭. 형님의 어감에는 이웃사촌의 정이 듬뿍 들어있다. 불러주는 언니가 있고 생각나는 아우가 있다는 것. 더불어 산다는게 아름답다.
설게...뻥설게의 계절 많아야 좋으냐... 맛 맛이다. 아들이 안면도에서 방금 잡아왔다면서 해거름길에 설게 한 봉지를 전해주고 선걸음에 돌아간 옥향할머니. 태안반도 우리 고장의 명물. 저녁 밥상에 설게찜. 쌉쌀하고 짭쪼름한 맛. 4월은 알이 밴 설게 철이다. 뻥설게라는 별명도 재미있다. 안면도 어디 가서 잡았는지 위치를 안다. 고남면 해변의 백사장이다. 8년 전에 해루질 체험삼아 설게를 잡으러 같이 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가는 도중에 태안읍내 철물점에 들러 뽕 막대를 3만 원에 샀는데 그 뽕대가 처마 한 구석에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 때 일곱 마리를 힘들게 잡았다.
쑥개떡 아무렇게나 만들어 먹는 것 같아도 온 정성이 들어갔다. 보리개떡, 모시개떡, 밀가루개떡, 고드레개떡... 개떡 이름 들어간 떡 치고 맛 없는 떡은 없다. 지긋지긋했던 보릿고개가 이젠 달콤한 추억이 되어 한몫 거들었을지도. 쑥개떡.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계절 음식의 하나. 일년에 이맘때면 제일 맛있단다. 알알이 서리태 콩알이 박힌 쑥개떡. 옆집 아주머니 솜씨다.
4월, 슬슬 모종작업을 시작할 때다 이웃 아주머니의 부지런함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존경스럽다. 해마다 땅콩을 심었던 밭이다. 올해도 밑거름 비료를 뿌리는 걸 보니 곧 밭갈이가 있을 터. 농사가 그렇다. 부지런한 이웃을 눈치껏 따라하면 씨 뿌리고 거두는데 어긋남이 없다. 이웃 아주머니의 농가월령가에 맞춰 나도 땅콩 모종 만들 준비를 했다. 물에 불려 싹을 틔우는 작업이다. 올 땅콩농사는 처음으로 빨강땅콩, 까만땅콩, 흰땅콩 세 종류다.
봄날의 식탁...쑥전,돌미나리 초무침 마당 처마밑에 돋아난 달래, 대문간 입구에는 머위, 아랫밭 돌계단에는 돌나물. 냉이. 쑥. 지천이다. 저절로 나서 자란 것들이다. 우리집 밭둑에 쑥은 동네 쑥이다. 동네 사람들이 무시로 들어와 쑥을 캔다. 비닐하우스에서 내려다보니 누군가가 쑥을 캐고 있다. 일부러 캐지 않아도 집사람이 동네 마실을 다녀오면 비닐 봉지 안에는 쑥이 있고 돌미나리도 있다. 밥상이 향기롭다. 입맛이 달라졌다. 오늘 점심에 쑥전. 저녁 식탁엔 돌미나리 초무침겉절이. 이래서 봄, 봄.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