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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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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밭 사람들...희비쌍곡선 어스럼 새벽인데 벌써 바깥이 소란스럽다. 우리집 대문간 건너편이 안마을 박 회장댁 생강밭이다. 열 댓 사람들이 몰려와 해거름까지 하루종일 생강을 딴다. 동네 몇 사람 품앗이 일꾼을 빼곤 읍내 인력시장에서 동원된 사람들이다. 남자는 14만 원, 여자는 8만 원 일당. 봄에 생강을 심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왔었는데. "올핸 생강금이 영 없씨유." 김장철이 코앞인데도 박 회장의 표정이 어둡다. 구렁이알같은 현찰은 인건비로 나가고 생강 농사가 시원찮단다. 긴 장마에 작황이 안좋은데도 시장에 생강 값이 없다는 건 경쟁적으로 다들 생강을 많이 심었다는 것이다. 아예 생강굴 보관 창고로 직행해 쟁여두고서 하세월에 생강값이 오르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는 답답한 농심... 사먹는 입장에서야 생강 값이 싸고 볼 일.....
'프로와 아마추어' 농부의 차이 이른 아침이다. 동갑네 안마을 박회장이 생강밭에 왔다가 우리집 고구마밭을 들렀다. " 허허, 알이 잘 들었네그려." 하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캐다만 밭을 보더니 뭔가 갑갑한듯 삼지창을 잡았다. 고구마 줄기 무더기를 힘차게 걷어내고 삼지창을 찔러 단숨에 흙을 파냈다. 고구마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허리를 구부린 자세며 팔 놀림이 시원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고구마 포기마다 주위를 돌아가며 두세 번 한쪽 발을 눌러 찌른 다음 흙을 들어내고서야 겨우 나타나는 고구마를 파냈던 것................ 농업경영체에 등록된 다같은 농민. 평생 농부와 귀촌 농부의 차이... 어쩔 수 없다.
동네 아주머니 칭찬받은 올 배추농사 작물은 주인장 발자국 소릴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땅 파고 모종을 심는다 해서 농사가 절로 되는 건 아니다. 김장배추 농사. 물만 자주 준대서 배추가 튼실한 것도 아니다. 은근히 까다롭다. 일교차가 큰 요즈음 하룻밤새 부쩍부쩍 자란다. 속 알이 차면서 결구 모양새가 보인다. 오늘 아침, 밭둑 너머로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배추밭에 있는 나를 보고 멀리서 큰 소리로 외치는 한 말씀... "배추 농사 잘 되었슈!". 칭찬 한마디로 올 김장배추 농사는 일단 합격점이다.
참 빠르기도 하시지... 동갑내기 친구 여러군데 나뉘어져 있는 짜투리 밭 중에 동쪽에 있다해서 편의상 '동밭'이라 부르는 이 밭은 열댓 평 남짓이다. 로타리 치기가 힘들다. 밭뙤기 크기가 작은데다 모서리져서 트랙터를 돌리기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옆집 밭을 갈아엎을 때 이어서 협업을 할 경우도 있으나 타이밍이 맞지않을 때는 도리없이 누군가에게 따로 부탁을 해야 한다. 해마다 여기에 양파를 심는다. 올해도 자주 양파를 심을 참이다. 한달 뒤 쯤 한지형 육쪽마늘 심을 때가 적기다. 그러나 미리 밭을 가꾸어 두어야 한다.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시간이 나는대로 해달라며 며칠 전 산봇길에서 만난 안마을 박 회장에게 로타리를 어렵사리 부탁을 했던 터. 오늘 아침에 나가 보니... 이게 뭐냐? 밭갈이가 끝나 있었다. 어제 늦은 시간에 트랙터를 ..
농부, 농부들 계절은 소리로 말한다. 뜰아래 논에서 언덕바지를 타고 들려오는 소리 소리들... 콤바인이 숨가쁘다. 오늘은 드넓은 간사지 논을 휘저으며 벼 추수를 하고 있다. 내일은 또다른 장비가 와서 곤포사일리지 '하얀 공룡알'을 단숨에 논바닥에다 생산해낼 것이다. 이른 아침. 바심하기 위해 어디론가 바삐 이동하는 대형 콤바인... 집채만 하다. 말썽을 부리는 장비. 안타깝게 들여다보는 농부의 표정. 시간은 자꾸 가는데... 무슨 얘깃거리가 그리도 많은 지. 이웃 두 아낙네의 마늘 심는 손길이 분주하다. 나는 호미로 채마밭에 김을 맸다. 물을 주었다. 몰두하면 적막강산. 적막도 소리없는 소리다.
햅쌀... 사촌보다 나은 이웃사촌 안마을 버갯속영감님 댁에서 한가위 추석을 앞두고 올벼 추수 타작을 서둘러 했다며 가정용 도정기로 햅쌀을 찧어 올해도 한 자루 보내왔다.
마실이란, 오고 가는 것 옥향할머니가 마실 오면서 육쪽마늘 깐마늘을 가져오셨다. 안동네 박 회장 댁과 옥향 할머니가 맷돌호박을 달라기에 오늘 배달했다. 집사람이 호박을 들고 갈 수 없어 차에 싣고 아낙네 마실에 남정네도 나섰던 것. 주거니 받거니 아름다운 시골 풍습이다. 맷돌호박 농사 잘 지었다고 아낙네들에게 칭찬을 들은 게 오늘의 수확.
수리계장님의 벼농사 전망 멀리서 봐도 안다. 오늘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도내수로에 나왔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부지런하신 분... 수리계장님. 나는 새벽 산봇길 이른 시간에 뜰에서 매일 만난다. 논농사를 짓는 몽리민을 위해 수리시설의 유지, 보수 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도내저수지에 수문을 열고 닫는 시기를 결정한다. 지금부터 가을 태풍과 내년 봄가뭄에 대비해야 한다. 올핸 장마가 길어 벼가 웃자라 이삭의 출수가 늦다. 이제부터라도 햇살이 쨍쨍 나야한다며 올 벼농사 걱정이 태산이다. 부자 사촌보다 한 해 풍년이 낫다는 옛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