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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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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이런 아이러니도 가끔 버갯속영감님 댁에서 햇 단호박을 수확했다며 올해도 한 망을 가져다 주었다. 나머지 두 개는 집사람이 동네 마실에서 돌아올 때 손에 들고 온 것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단호박으로 현관 앞이 붐빈다. 단호박 철이 되었다는 걸 비로소 안다. 모르긴 몰라도 이웃 몇 집에서 맛이나 보라며 한두 개씩 더 보태질 것이다. 단호박 농사를 짓지않는 나로선 이만 하면 충분하다. 글쎄, 단호박 농사 안짓는 집이 농사 짓는 집 보다 되레 단호박이 더 풍성한 건 아닌지... 농촌에 살다보면 이런 아이러니도 가끔.
장맛비 변주곡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맛비는 힘이 있어 좋다. 세상을 집어 삼킬듯 시원하다.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 빗소리가 좋다. 운율이 잘 다듬어진 시처럼 처마끝 홈통을 타고 똑똑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 그 중에 으뜸이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장맛비가 가랑비 되어 내린다. 장마가 길다. 앞뜰을 걸었다. 간사지 원뚝으로 나가는 길목에 조그만 정자 하나. 있는듯 없는듯 발길이 뜸한 정자. 왜 여기다 세웠는지 주인 없는 정자다. 하냥 지나치기만 하다가 오늘 올라가 보았다. 왜 이 정자에는 현판이 없을까. 찾는이 없다고 이름까지 없다니. 시인 묵객이 따로 있나. 나라도 한번 붓을 들어 이름 하나 지어볼까. 비 내리는 날 내멋에 겨운 흥타령의 한 소절일 뿐. 보슬비 장맛비를 맞으며 걸었다.
입장 난처...LG트윈스, 한화이글스 어딜 응원하나? 나는 LG 밥을 30여 년 먹었다. 1990년,1994년 'LG 트윈스'가 한국 시리즈 우승하는 순간에 나도 잠실 야구장에 있었다. 해마다 시즌 초반에는 '신바람 야구'에 걸맞게 잘 나가다가 더위를 먹는지 가을 야구로 갈수록 뒷심이 떨어져 안타깝다. '무적 LG'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 여기 충청도를 연고로 하는 '한화 이글스'가 요즘 죽을 쑨다. 롯데에 있던 장시환 투수가 올해 이글스로 왔는데 장시환은 우리 마을 어귀 북창정미소 장동석 사장의 둘쨋놈이다. 재작년인가 국가 대표로 선발되자 '경축, 장 아무개 아들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만들어 마을회관 앞에 붙이기도 했다. LG트윈스와 한화이글스가 맞붙는 날... 오늘따라 이글스의 선발투수로 장시환이다. 지난날 밥벌이의 추억, LG트윈스냐, ..
쌍둥네집 '상량보'를 쓰다 16년 전 내가 이 마을에 귀촌할 때 반장이었다. 나는 줄곧 문 반장이라 부르지만 마을 사람들은 쌍둥네 집이라 한다. 최근 새로이 집을 신축하였다. 달포 전 집터를 닦기 시작할 때 일찌감치 상량보를 써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하루에도 열 두 번 만나는 이웃사촌. 내가 할 수 있는 상량보 쯤이야 당연지사.
산봇길에도 기분 좋은 구간이 있다 초가을이면 상수리 도토리가 떨어져 발밑에 지천으로 구른다. 한여름에는 잠시 그늘이 된다. 매미가 운다. 봄엔 개복숭아꽃이 숲속 여기저기에서 피어난다. 무리진 시눗대가 불어오는 바람에 사각거린다. 집을 나서 앞뜰 살짝 비탈진 길을 내려가 쌍섬이 있는 바닷가 원뚝으로 가다보면 만나는 곳. 둥그스럼하게 돌아가는 구간이 그 곳이다. 이곳을 걸을 때면 웬지 절로 기분이 좋다. 새벽 산봇길. 오늘도 이 길을 걸었다.
계획에 없는 쪽파를 심었다 안마을 종점 근처에 사는 재덕엄마가 집사람에게 며칠 전 뜻밖에 쪽파씨를 주기에 사양하지 않고 받아왔었기 때문이다. 마침 월동상치가 끝내 남아돌아 장다리가 올라오기에 몽땅 뽑아낸 밭뙤기가 있었다. 가을 김장철까지 여름 쪽파를 먹게 되었다. 심어두면 요긴한 채소 반찬이 된다.
자식 칭찬은 부모가 더 좋아한다 농삿철에 외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고향에 돌아와 집안일을 거드는 걸 보면 이웃의 눈에도 정답게 보인다. 문 반장네 마늘밭. 작년 이맘때 부모의 마늘 추수를 도와주더니 올해도 같은 모습이다. 지나가다 효도하는 자식들 칭찬을 한마디 해주었더니 멀리서 듣고있던 부모가 입이 함박같이 벌어지며 더 좋아한다.
마늘이 풍년이라는데 왜 한숨이... "마늘 농사...소용없쓔!" 소용없다는 말은 '하찮다', '별볼일 없다'는 충청도식 표현이다. 올해 마늘농사는 풍년이다. 작황이 풍년이라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마늘 수매가가 오르지 않을 전망이다. 농사는 농민에게 돈이 되어야 한다. 안마을에 문 반장 내외가 오뉴월 뙤약볕에 앉아서 열심히 마늘 추수를 하고 있다. 어쨌거나 계절은 간다. 바야흐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