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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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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네 셋...행선지는? 걷기 운동 길에 멀리 앞서 걸어가는 세 아낙네. 아마 병훈네, 기정네, 가을이네 일 것이다. 중무장한 복장에 함태기를 손에 들고 ,허리춤에 끼고, 어깨에 맨 행장으로 보아 감태 따러 가는 중이다. 이곳 도내리에서 2백 미터 제방을 건너면 어은리 염장마을이다. 그곳에서 개펄 위로 난 바닷길을 따라 쌍섬으로 들어가는 언저리 갯골에 감태가 샛파랗게 무성하다. 한창 때처럼 읍내 시장에 내다 팔 여력은 없고 눈 앞에 보이는 제철 감태 맛을 버릴 수 없어 짝짜꿍해서 나선 게 분명하다. 안마을에서 그나마 소장파다. 도내리 아낙네에게 감태의 추억은 끈질기다.
도내리 감태...아, 옛날이여! 꼭 10년 전, 이맘때다.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 - - "요게, 진짜 감태!" "얼마 전에 말여, 테레비 방송에 감태가 불면증에 좋다고 나오데. 미역인지 파랜지 비춰주는디 고건 감태가 아녀." "그려, 감태는 파래, 매생이허구 다르다니께." "감태라면 가로림만 도내 감태여." "맞어유, 그 중에서도 함박눈을 맞은 감태가 달고 제일 맛있다니께." 도내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갯내음 물씬한 햇감태구이 맛이 절로 입에 감긴다. 눈이 내린다. 다시 돌아왔다. 감태의 계절... 물 빠진 개펄은 온통 푸른 감태로 융단을 깔았다. 김장 끝나고 메주 쑤고 나면 농한기... 마실도 잠깐. 삼삼오오 감태 매러 갯벌로 나간다. 일년 내내 움직이던 몸이라 근질근질해 참지 못하고 움직여야 한다. 영하의 날씨..
鹿鳴과 동지팥죽 먹이를 먼저 발견한 사슴이 다른 배고픈 사슴들을 부르기 위해 내는 울음소리. '鹿鳴'은 詩經에 나온다. 시경은, 중국 춘추시대의 민요를 모은 오래된 시집이다. 다른 동물들은 혼자 먹고 숨기기 급급한데 사슴은 울음소리를 높여 불러내 함께 나눈다는 것. 녹명에는 더불어 살고자 하는 공동체 숭고한 마음이 담겨 있다. 세시 풍습으로 동지가 되면 흔히 먹던 팥죽도 이젠 귀한 음식이 되었다. 우리집 대문 앞이 안마을 박 회장의 팥 밭이었다. 여름내내 농사를 지은 팥으로 동지 팥죽을 쑤었는데 나눠 먹는 바람에 한바탕 동네 잔치가 되었다고 한다. 자식들은 도회지로 나가고 독거 노인들이 늘어나 팥죽을 만드는 집이 없다. 어제 동지 팥죽이 맛있다고 수인사를 했더니 남겨두었던 팥죽 한 그릇을 다시 보내왔다. 동지 팥죽을 며..
동지, 팥죽 팥죽을 만들기로 어느 날 마실 길에 미리 약속이 있었는 듯. 안마을 박 회장 댁 사모님으로부터 "어서 오누!"하는 재촉 전화를 받자마자 집사람이 득달같이 달려갔더니 돌아오는 편에 팥죽 한 그릇을 내 몫이라며 따로 보내왔다. 동지는 작은 설. 새알심은 나이 숫자만큼 먹는다는데 75개는 언감생심, 다섯 알만 먹었다.
희아리 고추와 노파심 버갯속 영감님 댁 할머니. 영감님은 가신지 올해가 10 년. 10 년이 금방이다. 오늘도 잘라낸 고춧대에서 마른 고추를 따서 한 개 한 개 정성드레 가위로 손질해 부대에 담는다. 자식들은 말려도 희나리 고추를 모으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늙은이 마음이다. 88세.
손 털었다? 개운하다. 마늘과 양파 농사는 이제부터 내년 6월까지 기다리면 된다. 동밭과 서밭이라 부르는 두 군데 짜투리 밭에 오늘로서 호남마늘과 자주양파를 다 심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시원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웃에서 육쪽마늘을 심고 종자가 남으면 나에게 주기로 약속했기에 '먹다남은 개떡' 처럼 어정쩡하게 빈자리를 남겨두었는데 날은 추워지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모종시장에서 자주양파 모종 한 단을 사와서 마저 심어버린 것. 약속했던 본인들이 아무런 이야기를 않는데 가을걷이에 바쁜 사람들 붙들고 마늘종자 남았냐고 새삼 물어볼 수도 없어 아예 단안을 내려버렸던 것이다. 실은 호남마늘 종자도 버갯속영감님 댁에서 심고 남은 걸 얻어왔던 것이었다. 쪽파, 양파, 마늘 등등 남은 종자는 흔히들 이웃에 나누어 주는 미..
아낙네 자가용 2대 요즘, 행장을 갖추어 내가 밭으로 출근하는 시간은 아침 8시 쯤이다. 동쪽 솔밭에서 아침해가 비껴든다. 오늘 아침에 나가다 보니 길가 우리집 담장 옆에 '자가용' 두 대. 사람은 안보이고 차만 있다. 누구 자가용인지 형색으로 대충 알겠다. 주인장은 안마을 사는 70대 중반의 아낙네 두 분. 70대만 되면 집집마다 다들 보행기를 한 대씩 보유하고 있다. 자세히 둘러보니 멀리 두 사람이 아침해 역광을 타고 희미하게 보인다. 아낙네 둘이 낫으로 팥을 베고 있었다. 팥을 추수하고 있다. 남정네들은 다들 어디 가고... 부지런도 하다. 이미 구부러진 허리에 더 구부릴 것도 없다. 언제 밭에 나왔는지 사래 긴 밭에 베어논 낫가리가 줄지어 여러 이랑이다. 구수한 내음. 자가용 보행기에 싣고온 냄비에 갓끓였다. 맛 있..
바심하는 농부의 얼굴 나락을 추수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표정이다. 충청도 여기선 바심을 '바섬'이라고 발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