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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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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음의 길, 그 길은 어떤 길인가 서재에서 책 한권을 꺼냈다. '새마음의 길' 3십여 년 전에 출간된 책이다.
스승의 날, 어린이 마음은 하얀 도화지다 "십수년 전의 일이다. 담임을 하고있는 한 1학년 여자 어린이에게 복도를 쓰는 일을 시켰었다. 몇분이면 끝날 수 있는 일인데도 1교시 2교시가 지나도 이 어린이는 돌아오지않았다. 걱정이 되어 교내를 찾아다니다가 4층 복도를 쓸고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선생님이 복도를 쓸라고 하니까 ..
올레길과 '노오란 유채꽃 사이로'(1) 오늘 아침 어느 '테레비' 방송에서 제주 올레길이 특집으로 나왔다. 올레를 길로 처음 뚫은 '올레 이사장님'의 한마디한마디가 알찼다. 귀담아 들어보니 역시 길의 선구자답다. 아침 방송을 보며 생각나는 제주의 추억이 있기에 찾아보았다. 이 글은 수학여행으로 제주도에 갔을 때 나의 ..
김영삼의 박정희론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으란 말이 있다. '영샘이, 영샘이' 하는 말을 할아버지한테서 많이 들었다. '영샘이'가 할아버지한테 보낸 편지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재비 못된 게 항렬은 높다고, 따지고 보면 내가 조금 높은 한 집안이다. 59년 내가 열두세살 되던 때부터 5,6년동안 여름방학이면 나는 진주..
그날의 광복절 1974년 29주년 광복절 아침. 나는 중앙청에 있었다. 중앙청 4층 무임소장관실의 육중한 창문을 통해 광화문을 살짝 비껴서 숭례문까지 태평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오른편 쪽으로는 야트막한 담장 너머 광화문 정부청사가 우뚝했다. 아침 9시50분 쯤이었다. 청와대를 출발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
다솔사 일기(7) 원효와 효당 오늘 새삼 꺼내본다. 그 때 주신 글을 007가방에 접어둔채 지금까지 그대로 있어 송구스럽다. '茶道無門'은 그렇다치고 원효대사의 금강삼매론 중의 글 -雖無切能應機說話猶如天鼓- 의 의미를 아직 나는 모른다. 당시 효당의 말씀을 듣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지 ..
다솔사 일기(6) 汝矣無門 1969年 1月30日(12.13) 木 曇後雪 열흘의 산사 생활을 끝내고 하산했다. 눈덮힌 다솔사 송림 사이로 이불보퉁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왔다. '작품이 없다고 예술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김시습이, 서양에서는 조각가 자코메티가 보여주었다. 예술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완성을 위해 다가가는 것이다. 1970年 1月31日(12.24) 土 晴 하산했다. 스무날도 못됐는데 내려가느냐고 혜담 스님이 말했다. 참는 것도 수양이라 인내가 없으면 성사를 할 수 없고 타성이 되면 대사를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상현군을 만나러 갔으나 없어 섭섭했다. 백암과 윤달군이 절 아래 추동까지 바래다 주었다. 다솔사에 오는 것도 이젠 어려울 것 같다. 69년,70년 각각 열흘, 스무날 ..
다솔사 일기(5) 五味 효당을 처음 만난 날이다. 죽로지실. --------------------------- 1969年 1月24日(12.7) 金 乍曇乍晴 점심 후 수좌 상현군의 안내로 조실 최범술 스님을 배알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님은 서책을 읽고 계신 듯, 방안의 사방에 놓여진 장서용 캐비넷과 옆에 육중하게 걸려있는 박달나무 목탁이 먼저 눈에 띄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