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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그날의 광복절

 

1974년 29주년 광복절 아침.  나는 중앙청에 있었다. 중앙청 4층 무임소장관실의 육중한 창문을 통해 광화문을 살짝 비껴서 숭례문까지 태평로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다. 오른편 쪽으로는 야트막한 담장 너머 광화문 정부청사가 우뚝했다.

 

아침 9시50분 쯤이었다. 청와대를 출발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를 태운 리무진 행렬이 정부종합청사를 돌며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시에 있을 광복절 기념식장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행렬은 자주 보아왔으므로 그날도 나는 그저 무심코 내려다보았다.

 

광복절 행사가 끝나면 서울의 첫 지하철을 준공하는 개통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양택식 서울시장의 안내로 박정희 대통령이 삼부요인과 함께 개통 테입을 끊고 시청역에서 경기도 도농까지 시승을 하는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립극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흑백의 현장. 소란. 문세광.

 

갠 하루가 갑자기 기울더니 부슬비가 내렸다. 서쪽하늘 인왕산 자락에 진달래 자주빛 노을이 드리웠다. 육영수여사가 운명했다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전설에서 나올 법한 불가사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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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앙청은 사라졌다. 그날의 광화문도 사라졌다. 광화문 현판은 간데 없고 여기저기 톱날로 잘려진 광화문의 잔해가 시대의 유물이 되어 경희궁 어느 모퉁이에 있는 걸 보았다.

나는 오늘 경복궁 흥례문 앞에 섰다. 산천은 의구해 북악, 인왕이 다름없이 시야에 다가선다. 교통이 통제되어 오히려 적막이 감도는 태평로 넓은 거리를 점점이 검은 궤적을 남기며 정부청사를 돌아서 세종문화회관을 지나 이순신 장군 동상 옆으로 무겁게 미끌어져 멀리 멀리 사라져간 그날 아침의 차량 행렬이 엊그제인양 떠오른다.

 

과연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무엇이 是이며 무엇이 非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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