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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다솔사 일기(5) 五味

 

효당을 처음 만난 날이다. 죽로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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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年 1月24日(12.7)  金  乍曇乍晴

점심 후 수좌 상현군의 안내로 조실 최범술 스님을 배알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님은 서책을 읽고 계신 듯, 방안의 사방에 놓여진 장서용 캐비넷과 옆에 육중하게 걸려있는 박달나무 목탁이 먼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불상이 든 액자, 넓직한 책상, 문구 등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내 육체의 무게 중심이 나를 떠나 장판지 저 바닥밑으로 축 늘어져버리는 것 같았다.

 

두 시간여 우리나라의 민족 이념, 다도 그리고 불교에 대하여 대담을 했다.

 

-우리의 주체적인 사상이 될 만한 사상이나 이념이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발분하여 북돋아나가야 한다. 해외 사조에 휘말려서 스스로를 일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을 찾고 개발해서 우리 체질에 맞는 민족주의적인 개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해외에 나가면 두가지 유형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맹목적으로 동화되어버리는 사람들, 또 하나는 내가 가진 것과 비교하여 한층 자기 자신을 갈고닦는 사람들이 있는데 후자를 지향해야 한다. 후자가 되려면 내가 가진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사리에 대해 말씀이 계셨다. 스님이 소장하고 있는 고려자기, 대장경 서고, 벽에 걸린 액자의 내력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해박한 지식과 일일이 응답해주시는 품위가 자상하다. 당당한 체구에  불그레한 얼굴, 그리고 눈에는 광채가 있어 학덕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나는 다도(茶道)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드렸다. 조실 스님은 차통에 있는 차를 한줌 집어 화로에서 방금 끓인 물이 든 다기에 조용히 넣었다. 천천히 우러나는 차의 빛깔을 응시했다. 차향이 방안에 번졌다. 한모금 그 맛을 음미하며 다도를 들으니 더욱 실감이 났다. 스님 옆에 상현 수좌가 있었으나  하나하나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차의 근원은 중국 南北朝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천하가 어지러울 때 청담파(淸淡派) 학자들이 향리로 돌아가서 술 대신 차(당시 나무목변에 값가로 된 한자. 그림 참조)를 마시며 정신과 몸을 쇄락하게 해 오직 학문에 정진을 할 수 있었다.

-차를 마시는 데 네가지 사상을 길렀는데 바로 和,敬,淸,寂이다.

-차에는 오미(五味) 즉, 다섯가지의 맛이 있다. 달고,떫고, 쓰고,시고, 짠 맛을 동시에 얻는다. 처음 차를 마시는 사람은 어느 한가지 밖에 못 느끼나 다인(茶人)의 생활을 하다보면 오미의 경지에 이른다.

-다도는 규범이나 격식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편하게 차를 즐기는 것. 우리의 다문화는 형식이 아니라 실용이 아닐가.

-차례(茶禮), 봉채(封茶에서 유래)도 차와 관련이 있다. 시집 장가 갈때 함과 예단에 차를 넣어 주고받았다. 문답이다. 달고,떫고,쓰고,시고,짠 일생의 고락을 함께 하자는 다짐을 차를 주고 받음으로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선문답 같은, 실로 우리 고유의 문화적인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전통 혼례는 이러했다.

  

조실 스님이 권하는 대로 연거푸 차를 마셨다. 차향이 입안에 맴돈다. 오미 중에 두가지는 느껴진다. 떫고 달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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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道無門, 茶道用心의 경지를 하루 나절에 가늠할 수 없어도 오미와 봉차는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회사의 사내 교육에서 효당 조실로 부터 들은 오미와 봉차 이야기를 들려주며 신입사원으로서 가져야할 자세를 일깨웠다. 가정사나 회사나 인생살이는 결국 오미의 순환이자 연속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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