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귀촌하신다구요?

(2043)
겨울 냉이와 할머니 냉이는 봄철이라지만 부지런한 아낙네들은 엄동설한에 냉이를 캔다. 우리집 채마밭 밭둑이나 밭고랑에도 냉이가 지천이다. 누군가가 와서 캐 간다. 겨울 냉이는 임자가 따로 없다. 겨울 냉이의 흙냄새 풋풋한 향내는 가히 토속적이다. 오늘 밥상에 냉이국 냉이는 재래시장에서 80이 넘은 할머니로부터 3천원에 떨이로 사온 것. 놀면 뭐하냐며 쌈지돈 사려는 할머니들이 바람도 쐴 겸 마을버스 타고 들고 나와 삼삼오오 시장통 입구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광경은 정겹다.
한겨울 어물전의 쓸쓸함에 대하여 재래시장에 볼일이 있다는 집사람을 따라갔다가... ... 인적 드문 겨울 시장은 언제나 을씨년스럽고 춥다. 어물전 입구 어느 가게 좌판을 한 남정네가 잠시 기웃거렸더니 '오늘은 물템뱅이가 물이 좋아유**'하며 여자 주인장이 전기 장판 깔고 앉았던 자리에서 부리나케 일어나 다가와 권한다. 그냥 올 수 없어 돌아온 집사람에게 눈짓을 해 '벌교 꼬막'을 7천원에 한 봉지 샀다. 쓰잘데 없이 번잡스레 기웃거린 죄(?)로...
눈... 충청도 서해안 눈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줄 알면서도 거실 커튼 사이로 살짝 내다보았더니 하얀 눈이다. 밤 사이에 눈이 내릴 거라는 일기 예보가 있긴 있었다. 끝내 많은 눈은 오지 않았다. 집을 나서면 마을 들머리로 나가는 꽁재(꿩고개)가 비탈져 눈 내린 뒤 빙판이 첫 출발부터 애를 먹인 적이 있는데 오늘 읍내 출입에는 문제가 없다. 눈이 올테면 좀 더 올 것이지. 겨울을 겨울답게 온 세상이 풍성하게 함빡눈으로. 어젠 우박에 싸래기눈... 충청도 서해안 눈발은 어정쩡 늘 이렇다.
우박... 막차로 돌아오다 싸락눈인지 우박인지? 요란하게 차창을 때린다. 메주 콩 알 만한 크기가 내 눈에는 우박이었다. 오랜만에 우박... ... 집사람은 고속버스 첫차로 나들이 서울 갔다가 막차로 돌아왔다. 진눈깨비 비바람을 피해 앞산 솔밭을 걸었지만 혼자 집을 지키는 게 오늘따라 허전하다. 過而不改라... 어깃장으로 세상 돌아가는 우중충한 모양새에 어수선한 날씨마저 심란한 하루.
남기고 간 만추... 그리고 간월암
'낙엽을 태우며'... 낙엽길을 걷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 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자욱해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읽었던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며'를 생각하면서 오늘도 낙엽이 소복히 쌓인 앞산 오솔길을 사박사박 걷는다. 낙엽을 애써 긁어 모아서 태우는...
2023년...꽃 달력 벌써 몇 년째인가, 참 대단한 정성이다. 올해도 꽃 달력을 보내주셨다. 집사람의 중학교 동창 친구다. 사진 동호회 모임에서 70줄 회원들의 사진 촬영 솜씨로 만든 달력인데 해마다 이맘 때면 어김없이 우체부가 전해준다. 앞질러 찾아온 새봄의 설레임에 세모에 쏟아지는 어느 달력보다 기분이 좋다. 나는 이 달력을 이라 부른다.
'까치밥'의 현장 이른 아침부터 참새 몆 놈이 날아와 순서대로 그 난리를 치더니... 대봉 홍시에 참새떼가 지나간 자리. 흔적이 날카롭다. '까치밥' 홍시가 사라지는 건 시간 문제. 삼라만상은 이렇게 기나긴 겨울의 문턱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