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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리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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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현장 대문이 없다. 문은 고사하고 삽짝문 그림자도 없다. 다만 우체통이 홀로 한가롭다. 발길이 나들고 얼굴이 오가는 출입에 문은 없다. '자연과 소통하고 있으시군.' 음암면 유계리 고택의 당주 김기현님이 어느날 보시곤 혼자말처럼 말씀하셨다. 올 봄 무슨 흥이 났던지 소나무 둥치를 정주목으로 양쪽에..
씨 받이 며칠 전, 비 개인 오후. 집 앞. 도내리 오솔길목. 안마을 소영 아배가 와서 낫으로 뭔가 베고 있다. 냉이다. 냉이꽃은 졌다. 말려서 냉이씨를 받는단다. 나도 씨받을 일이 있다. 어디서 날려왔는지 딸려왔는지 달래 몇포기가 마당 가장자리에 저절로 나서 자라 이제 막 씨주머니를 맺었다. 씨를 잘 받아..
캔버스 위의 수선화(3) 시간 나는대로 붓 가는대로...
고향무정
노을이 사는 집 노을이 사는 집 유창섭 “도내리”, 입 안에서만 뱅뱅 도는 발음, 가 보지도 못한 친구의 집을 상상한다, 혼자 웃는다 저녁 노을은 생겨도 그만, 아니 생겨도 그만 언제나 황토빛 노을이 걸려 있는 집 앞에서 그 깔끔한 친구가 어찌어찌 어설픈 옷가지를 되는대로 입고 황토빛 마당에서 꽃 하늘을 올려..
자연산 미꾸라지니까 저녁 무렵 도내리 오솔길에 차량 하나가 다가왔다. 얼마 전까지 인천에서 살다 내려온 이웃 양반이다. 건너 구도항에서 연락선 타고 인천으로 갔다니 이십 년이 훨씬 넘었다. 오랜 객지 생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연로한 모친 때문이다. "미끄락지 좀 잡어볼 가 해서유." 어촌계 작업복을 입으며 말..
상치에 관한 보고서 아직 가을이라 여겼는데 서리가 눈처럼 내린 걸 보면 분명 겨울의 문턱에 다달았다. 벗어두었던 장갑에 밤새 서릿발이 선명하다. 노지 상치가 서리를 뒤집어썼다. 이 정도의 살얼음 추위나 서리쯤이야 해 뜨면 본래의 모습으로 금방 돌아간다. 채소 중에 꾿꾿한 기상으로는 배추와 상치가 으뜸이다. ..
일상 열시 이후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흐릿하던 하늘에서 그 때부터 햇살이 살아난다. 오늘도 이마 벗겨지겠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간사지 너머 산등성이 흰 뭉게구름에 하늘 가운데는 이미 쪽빛이다. 오늘은 여덟시부터 동밭의 잡초를 맸다. 가지, 토마토, 들깨가 있다. 열흘 전에 매줬는데 어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