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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사는 집

 

노을이 사는 집

                                        유창섭

 

“도내리”, 입 안에서만 뱅뱅 도는 발음,
가 보지도 못한 친구의 집을
상상한다, 혼자 웃는다

저녁 노을은 생겨도 그만, 아니 생겨도 그만
언제나 황토빛 노을이 걸려 있는 집 앞에서
그 깔끔한 친구가 어찌어찌 어설픈 옷가지를 되는대로 입고
황토빛 마당에서 꽃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을의 바깥 세상으로 난 꽃길을 멀리 내다보며,
세상의 무게를 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금년에도 온 밭을 뒤덮고
주인 행세를 하게 될, ‘웬수’가 될,
쑥이며 냉이를 경이의 눈으로 들여다 보는
호기심어린 눈길을 상상한다
아무래도 친구들 불러올 욕심만 심어두고 사는
노을이 사는 친구의 집,
도내리 오솔길로 가야 할까 보다

(*) 도내리 오솔길 ; 태안에 사는 친구의 블로그 명칭


항산 유창섭님의 작품이다.  '시인촌'에 들렀다가 오늘 이 시를 처음 마주했다. 언젠가 또 하나의 시집에 고이 넣어주실런지. 작년에 펴낸 항산님의 열네번 째 시집 '낯선자와의 악수'에 또 하나의 시가 있었다. '태안의 친구'.

충북 제천의 항산님과 충남 태안의 나는 같은 충청도인데 오가는 길이 참 멀다며 늘 이맘때 쯤이면 서로 목소리로 안부를 나누곤 한다. 신록의 5월은 많은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다.

 

 

 

泰安의 친구
                                       유창섭


泰安,하고 말하면
모래톱으로 부터,걸쭉한 갯벌로부터,
황토 빛 노을 솟구쳐 하늘로 오르는 저녁......
이 생각난다.

발걸음 옮길 때 마다
발목에 감기는 그림자가 아늑한 회상을 밀물에 밀어넣던 해변에는
끈적끈적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발자국 끌고 절름거리는 그림자들이 매달려
바다가 숨가쁘게 내뱉는 쿨룩쿨룩 기침소리에 묻어나고
멀리,유령처럼 검은 섬으로 얼비치는 유조선의 망령이
자꾸 자꾸 갈매기도 떠난 섬을 덮치는
무서운 밤이 길어졌다.

해변에 황토 집을 짓고 꿈에 부풀던 친구는
더 이상 놀러오란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

저녁마다 노을을 뭉쳐 모래구슬을 만들어 놓고
몰래 숨어 들어가던 칠게는 어디로 갔는지
짱뚱어 모시조개 고동도 자취를 감춘 갯벌엔
친구의 한숨만 먼 바다로 쓸려 나갔으리라
아직도 시커먼 바다에 빠져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죽은 철새의 검은 깃털이
여기저기 찢겨 날리는 바닷가
따뜻한 泰安의 친구야,
그저 미안함에 안부도 전하지 못한 소줏병 하나, 무자년 데불고
검은 노을을 걷으러 찾아 가리라 마는
검게 질척이는 발자국이나 네 맘에 가득 찍어놓고 오게 될지
몰라
망설이는 밤이 하얗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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