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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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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요란하게 해야 하나? "배추 두어 포기 뽑아다줘요. 무, 쪽파도... 알타리도요." "소금도 좀 퍼다주고요." 집사람의 잇단 주문에 따라 채마밭 돌계단을 서너 번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갖다 날랐다. 재빨리 소금 장독에서 왕소금도 덤뿍 퍼왔다. 알타리무 씻을 땐 소매 걷어붙이고 나도 한몫 거들었다. 하룻밤을 새고 오늘 아침에 탁자 위를 쳐다보니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 속에 이미 쏙 들어가버린 김장. 배추 김치와 알타라리무 총각김치, 두 통. 집사람과 나, 단 두 식구에 간단명료한 올해 우리집 김장 풍속도. --- '배추는 밭에 있겠다 먹을 만큼만... 그때그때. 조금씩.' - - - 큰소리 치는 뒷면에 든든한 '빽'이 있기에 가능한 일. 김장 김치, 묵은지 먹고 싶을 땐 언제든지 말하라는 돈독한 이웃사촌이 있다.
무시래기 추녀 아래 빨랫줄 걸대에 무청 시래기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밭에서 두어 개씩 대왕무를 뽑아올 때마다 통무를 잘라낸 시래기가 차츰 늘어난다. 날씨가 영하로 더 떨어지기 전에 무를 뽑아다 통무는 저장하고 무청은 말려야 한다. 이웃 친구이던 호박고지가 올핸 없어 무청 시래기가 외롭다. 곧 풍성해 질 것이다.
'도사리'...무슨 뜻일까? '배추 도사리'... '도사리 시금치'... 라고 부른다. 긴 겨울을 지나 초봄까지 있는듯 없는듯 다시 살아나는 배추, 시금치 등 채소를 말한다. '도사리'는 '되살이'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엄동설한의 고생 끝에 땅달보처럼 바닥에 붙었다시피 해서 형색은 볼품이 없어도 그 고소한 맛이야... 뾰쬭하게 채소가 없는 봄철에 미각을 살려주는 채마밭의 귀공자다. '날 좀 보소!'하며 어느 이른 봄날 자태를 드러내는 채마밭 도사리 배추나 도사리 시금치를 보면 생명의 강인함을 새삼 알겠다. 밭 고랑에서 저절로 나서 자란 도사리의 기세. 해마다 나는 겨울내내 상추를 재배한다. 노지 꽃상추다. '도사리 상추'와 다를 바 없다. 올해는 씨앗을 뿌리는 시차를 달리해서 두 군데다. 쥐눈같이 쬐끄만 상추 새싹이 긴 겨울을 이긴..
'화초감나무', 처음 본다 별의별 감나무도 다 있다. 화초감나무... 처음 보는 감나무다. 우리 마을 이장님 댁에 갔다가 마당에서 눈에 띄었다.
재발견...귀촌의 樂이란? 올해 콩농사가 시원찮았다. 흰콩, 검은콩, 빨강콩, 동부콩... 여러 콩을 심었으나 별반 건진 게 없다. 콩이라 해서 모두다 같지 않다. 씨를 뿌려 꽃 피고 콩이 여는 시차가 다르다는 걸 생각치 못했다. 심심풀이 농가의 낭만, 콩깍지를 벗기며 콩 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 주일이나 고구마를 캔다고 캤는데 제대로 생긴 고구마가 없다. 대장쟁이집에 쓸 칼이 없다더니 올해도 고구마 농사 끝이 그렇다. 끼니마다 집사람이 쬐끔 성가실뿐 밥솥 밥에 얹져 먹는 새끼 짜투리 고구마의 진미. 잘 생긴 것 저리 가라다. 한결 맛있다. 오늘 저녁 밥상엔 콩밥이다. 아침나절에 콩을 까서 물에 불렸다가 지은 콩밥 또한 별미. 짜투리 고구마든 모듬 콩이든 모두 내가 지은 농사이니까. 마음이 편하면 반소사인들 어떨까, 입..
12월, 순망치한의 계절 하루가 다르게 자고나면 추워진다. 마음은 아직 저쪽 가을인데 계절은 성큼 겨울이다. 갑자기 추위를 왜 더 타는가 했더니 이발소에서 머리를 빡빡 깎았다. 작년 광복절 무렵 이후 계속 해온대로다. "추우실텐데 ... " 이발사는 말끝을 흐리며 재고할 의향을 은근슬쩍 강요했으나 나는 초지일관 단호했다. 빡빡 머리가 춥긴 춥다. 머리칼이 없으니 머리끝이 허전하다. 추우면 모자로 잠시 덮으면 되는 것.
11월 30일, 해질 무렵
태우는 계절...가을은 깊었네♬ 옆집 아주머니가 거북데기를 태운다. 들깨 타작을 마친 뒤 마른 들깻대다. 논두렁 밭두렁 여기 저기서 하이얀 연기가 난다. 구수한 냄새가 번진다. 해마다 이맘때 우리 시골의 정취. 우리밭에도 태울게 많다. 옥수숫대, 해바라기대, 콩대... 바람 없는 어느날을 택해 저녁 노을을 바라보며 태우리라. 익어가는 가을이 이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