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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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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머지 알타리무를 모두 뽑았다 오늘로서 나머지 알타리무를 전부 뽑았다. 집사람이 정한 행선지를 향해 김장철 때 맞춰 이젠 모두 떠났다. 알타리무 뿐만 아니라 맷돌호박, 검정호박, 누렁호박도 어디론가 덩달아 함께 떠나갔다. 씨를 뿌려 가꾸어 기르는 건 내몫, 나누는 그 다음 일은 집사람이 알아서 한다. 농가월령가에 따라 철이 되면 씨앗을 챙기며 기르는 재미... 이게 나의 보람이다. 맛있게 먹었다는 회신이 더없는 즐거움이다.
농사 마무리는 제때 해야... 초가을에 옥수수를 딴 뒤에 옥수수 밭을 이제서야 정리했다. 추수하는 그때그때 마무리를 한다는게 말이 그렇지 잘 안된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다음 해야할 일이 눈을 부릅뜨고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해야할 일, 뒤늦게 하면 과외 일을 하는 것 같다. 옥수수 밭 고랑에 그동안 숨어있다가 뒤늦게 나타난 검정호박 하나, 옥수수 열매 한 개... 반갑다.
친구의 손 편지...아름답다 이따금 전화로 안부를 나누곤 하면서도 손편지를 받고보니 감흥이 다르다. 친구의 섬세함이 놀랍다. 아름답다.
가지와 풋고추 "우리가 한햇동안 먹는 상춧값 채솟값만 얼마나 될까?!" 버릇처럼 매양 하는 문답을 오늘도 집사람과 나눴다. 봄 이후 여름을 지나 지금까지 푸성귀를 마트나 시장에서 사다먹은 적이 없다. 텃밭 채마밭이 있다는 장점이자 내가 직접 가꾼다는 이점이다. 입동, 소설을 지나 김장철. 배추 김장무 대파야 지금이 제철이다. 그러나 가지와 풋고추. 무서리 된서리 노지 칼서리에 모양새는 다소 흐트러져도 꿋꿋한 기상이 고맙다. 휘어꼬부라진 가지 하나, 똥짤막해진 고추 한 개에서 신의와 성실을 배운다.
할아버지와 손자, 감 따기 다섯 살이다. 애들이 자라는 걸 보면 금방이다. 서너 달 만에 보니 많이 자랐다. 오자마자 단감 따기에 단단히 재미를 붙였다. 귀촌의 낙은 이런 즐거움이다. 제깐 놈이 감을 얼마나 딸까마는 이젠 따야하는 감 딸 계기를 마침 만들어 주었다. 몇 개나 될가, 3대가 달겨들어 단감을 절반 가량 땄다. 나머지는 여전히 내 몫.
"무슨 가을비가 이렇담?"
어떤 시도...밥상의 예술 '농사는 예술이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관점이다. 모든 예술 창작의 원천이 흙에 있고 자연에 있다고 믿는다. 산이 보이고 들이 있는 곳. 봄에 모종을 키워 재배한 토란이 긴 여름을 지나 가을 어느날 토란탕이 되어 식탁에 오르고, 밥솥에서 갓펀 밥 내음이 오늘따라 또 다르다. 고구마 말랭이를 잘라 밥솥 밥에 얹졌더니 고구마밥의 또 다른 맛. 별게 아닌듯 별 것. 맛의 예술. 이렇게도 만들어 먹어보고 저렇게도 해서 먹어보고...
농부는 몇시에 출근하나? 농부의 일상이야 뻔하다. 푯대나는 일은 없어도 할 일은 많다. 발걸음 떼는 곳, 눈이 가는 곳은 모두 일이다. 일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들깨 대를 하우스안에 풀어헤쳐 말렸다. 며칠 전에 다라이에다 베다놓구서 자리를 펴고 헤쳐놓질 못했다. 야콘을 캐다 옆 이랑에 자란 들깨가 보이기에 서둘러 베어놓았던 것. 그냥 내 몰라라 버리면 그만, 그러나 어느 봄날 애써 심어 한동안 들깻잎을 열심히 따먹기도 했었던 들깨가 이젠 익어 들깨 알이 우두둑 떨어진다. 고소한 들깨 향이 코끝에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