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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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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김장김치... "맛이나 보슈!" "글쉬... 섬섬허게 담았는디... 맛이나 보슈." 이웃 배씨네 집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 김장을 끝내고 김장김치 두 쪽을 가져왔다. 섬섬하다는 말은 짜지 않다는 뜻이다.
농부란? 시골 농촌에서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리석다. 농부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 나는 농부다. 농부의 보람은 땅을 파서 다듬어 심고 가꾸는 일이다. 추수의 기쁨은 다음이다. 올해는 긴 장마로 애를 먹었다. 잡초가 기승을 부렸다. 통제불능이었다. 귀촌 20년에 처음이다. 초봄에 비닐 멀칭을 한 뒤 가을 김장 채소 심을 자리를 비워 두는데 여름을 지나며 고랑 틈새로 완전히 잡초가 뒤덮어 버린 것. 김장 준비는 다가오고... 내 키를 넘는 잡초를 예취기로 걷어내고 멀칭을 해둔 고랑을 괭이로 다시 정리해서 김장배추, 김장무, 알타리무, 쪽파, 대파를 심었다. 보름 걸렸다. 이제 드디어 뿌린 종자들이 뾰쪽뾰쪽 새싹이 되어 올라오고 모종들이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았다. 가을 햇살에 무럭무럭 자라는 일만 남았다.
알타리무,쪽파 심기...귀촌농부의 김장 풍속도 그저께 대왕무 종자를 넣었다. 어제는 배추모종을 심었다. 오늘은 알타리무 종자를 뿌렸다. 씨 쪽파도 심었다. 김장 준비다. 올해는 철저히 먹을 만큼만 심기로 했다. 해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씨앗을 넣을 때면 나도 모르게 양이 불어났다. 나중에 생산량이 남아돌아 나눠주느라고 애를 썼다. 해가 돋는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어제 모종시장에서 배추모종을 살 때 모종아지매가 덤으로 얹혀준 꽃상치도 마저 심었다. 이제 남은 건, 대파 모종을 심는 일만 남았다. 내일 안면도 갔다오는 길에 모종시장을 들러 대파 모종 한 단을 사오면 된다. 넉넉히 밭을 일구어 놨으므로 마음이 든든하다.
올해 김장은 배추 105포기 옥수숫대를 뽑아낸 밭에 김장배추 모종을 심으면 튼실하게 잘 자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올해 옥수수 심었던 자리가 두 군데다. 여길 개간해서 김장배추 모종을 심기로 했다. 읍내 나가서 배추모종 한 판을 사왔다. 연결 포트에 배추모종 105개짜리다. 오늘은 우선 30개를 심었다. 흐릿한 하늘에서 심심하면 빗방울이 듣는 하루. 모종 심기에는 딱이다. 땀도 덜나고.
밭이 부르면 언제든지...김장 대왕무 씨 토마토 가지가 말랐다. 뽑아낸 자리에 김장무 종자를 심었다. 심고 거두고 뽑고... 변화하는 계절은 농부를 가만 두지 않는다. 바깥은 이른 아침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치면 밭이 나를 불러낼 것이다. 밭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농심.
김장...요란하게 해야 하나? "배추 두어 포기 뽑아다줘요. 무, 쪽파도... 알타리도요." "소금도 좀 퍼다주고요." 집사람의 잇단 주문에 따라 채마밭 돌계단을 서너 번 오르내리며 부지런히 갖다 날랐다. 재빨리 소금 장독에서 왕소금도 덤뿍 퍼왔다. 알타리무 씻을 땐 소매 걷어붙이고 나도 한몫 거들었다. 하룻밤을 새고 오늘 아침에 탁자 위를 쳐다보니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 속에 이미 쏙 들어가버린 김장. 배추 김치와 알타라리무 총각김치, 두 통. 집사람과 나, 단 두 식구에 간단명료한 올해 우리집 김장 풍속도. --- '배추는 밭에 있겠다 먹을 만큼만... 그때그때. 조금씩.' - - - 큰소리 치는 뒷면에 든든한 '빽'이 있기에 가능한 일. 김장 김치, 묵은지 먹고 싶을 땐 언제든지 말하라는 돈독한 이웃사촌이 있다.
김장은 언제 하나? 배추와 김장무 배추밭에 배추는 결구가 되어 속알이 들어차고 대왕무는 장독처럼 되었다. 자랄대로 자라고 클대로 컸다. 날씨가 영하로 곤두박질을 치자 온동네 집집마다 알게 모르게 김장 준비에 잰걸음들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운기를 동원해 도내나루 바닷물을 물통에다 퍼와서 큰 고무다라에 배추를 절였던 모습은 지난 옛이야기로 서서히 사라지는듯. 우리집은 김장을 안하는 걸로 방침을 굳혔다. "밭에 무, 배추 있겠다 그때그때 조금씩 담가 먹으면 되는 거지..." 하며 집사람이 일찌감치 선언을 했다. "애들이 가져다 먹냐?... 달랑 두 식구에... 괜시리 번잡키만 하구... " 허긴 그렇기도 하다.
귀촌일기- 김장철에 먹는 부침개, 배추전 소설. 배추밭에 내린 눈발 서리. 계절음식이란 이런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