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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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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가 효자 시골에서 내가 어릴 적엔 '소풀'이라고 했다. 서울에 와서 '정구지'라고들 불렀다. 부추는 참 묘한 채소다. 잘라도 잘라도 새순이 돋아나 계속 자란다. 물만 주면 된다. 어쩌다 일년에 한 두번 퇴비를 얹져주면 부춧잎은 오동통해져 식감이 그저 그만이다. 귀촌 초기에 텃밭을 정해 제일 먼저 뿌린 씨앗이 부추다. 한번 뿌린 그 씨앗이 대를 이어 16년 동안 봄이 되면 해마다 맨먼저 돋아난다. 다년생 채소다. 요즘처럼 계절이 바뀌는 어정쩡한 시기에 부추가 효자다. 보면 볼수록 기특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부추전, 부추나물이 우리집 밥상에 단골. 주부의 발길이 멀지 않아야 하므로 부추밭은 가깝다. 오늘도 부추밭 주변의 잡초를 정리했다.
가을인가봐 전 7권 중에 5권을 읽고 있다. 80년대 출간된 서적이 다 그러했듯 활자가 깨알 같다. 돋보기를 눌러 쓰고 어떻게 읽어가나 했는데 금방이다. 글자가 작으니 눈 안으로 쓸어 모으듯 쏟아져 들어온다. 장마가 끝나나 했는데 덥다. 삼복에 못다한 무더위가 여름의 끝자락에 매달려 기승을 부린다. 독서의 계절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창 틈으로 기웃거리는 풀벌레 소리가 확연히 달라졌다.
강풍특보, 폭우가 쏟아지는 날...<지리산> 손때 묻은 책을 꺼내 다시 읽는 재미... 며칠새 후딱 한 권을 다 읽었다. 의 첫 1권 내용의 주 무대는 경남 진주다. 내 고향이다. 등장하는 지명이 사천,하동,남해,산청,함양...선진,상주,미조,곤양,다솔사,남강,비봉산,도동,평거,촉석루...이렇다. 친구들과 놀았고 소풍을 갔으며 일가친척들이 모여사는 곳, 눈에 선하다. 게다가 주인공인 이규와 박태영은 아직 어린 15,6세 중학생으로 내 모교 진주중학교 선배이다. 일제 강점기인1930년대 말, 진주 비봉산 아래 교정과 교실이 내가 다니던 1960년대와 그다지 차이가 없다. 이병주의 . 1985년도 초판본이라 활자가 깨알같다. 문선공이 일일이 활자를 채자해서 '게라'에서 교정을 본다음 두드려 지형을 뜨고 끓는 납을 부어 연판을 만들어 윤전기에 걸어 인쇄..
어젠 보름달, 오늘은 폭풍우 교교한 달빛이었다. 잠결에 남창으로 흘러들어온 빛이 설마... 하며 잠을 깼는데 보름달이었다. 음력 유월 보름. 달포 장마 밤하늘에 쟁반같이 둥근 달이라니. 그런데 하룻새. 오늘 새벽은 폭풍우가 몰아친다. 거실 창문을 비바람이 사정없이 때린다. 집 뒤란에 시눗대가 엉기며 스치는 소리가 스산하다. 밤새내내 잠을 설쳤다. 석달 가뭄보다 사흘 장마가 더 무섭다는 농심. 언제 마감될 지 모르는 올해 장마. 이런 적이 없었다. 날씨마저 왜 이러나. 오늘이 가을의 문턱. 입추. 시절이 하수상하다.
정전되는 날의 <귀촌일기> 번개와 뇌성이 꽤나 시차를 둘땐 그나마 낫다. 그 간격이 짧아질수록 벼락이 가까이 점점 다가온다. 죄 지은 게 없으니 뭐가 두려우랴 하면서도 하늘이 쪼개지듯 우루루쾅쾅 할땐 겁은 난다. 하늘이 뚫렸나. 창대비는 내리고... 어제밤부터 오늘 하루종일 이랬다. 결국 두 번이나 정전이 되었다. 오전 오후 서너 시간 씩. 집사람은 '노 터치', 냉장고 문 단속에 신속 돌입했다. 작년 9월 태풍이 몰아친 어느날, 반나절이나 정전되었을 때 기다리다못해 이웃 박회장댁 농업용 대형 냉장고 한켠에 더부살이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냉장고에 소장 식재료를 꺼내 피난살이 시키는 번거로움이라니... 마침 어제 뽑아둔 콩대가 있었다. 빗방울이 잦아진 사이에 검정 강낭콩 두어 포기를 통째로 뽑아왔던 것이다. 흰강낭콩에 이어 빨강..
팔월 초하루, 오늘도 비는 내리고 육개장엔 대파가 많이 들어간다며 뽑아 달란다. 행장을 차려 밭에 내려 갔는데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이 들기 시작했다. 비트 몇 뿌리에 미인고추, 토마토, 파프리카, 깻잎을 손에 잡히는대로 서둘러 따고 대파를 주섬주섬 뽑았다. 빗줄기가 차츰 굵어졌다. 아니나 다를가 폭우다. 이왕 밭에 간 김에 옥수수 몇 개와 울타리 강낭콩도 딸가했는데 관두고 일단 하우스 안으로 피신했다. 국지성 호우. 창대같은 비. 피신. 올여름 내내 이러기를 몇 번인가. 오늘이 8월 초하루. 달이 바뀌어도 장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음주도 계속 빗소식이다. 올 장마, 말 그대로 끈질기다.
흰강낭콩 수확...농부와 농부는 바빴다. 올해 심은 콩 종류는 다섯 가지다. 흰강낭콩,검정강낭콩,빨강강낭콩,동부콩 그리고 땅콩. 그 중에서 흰강낭콩의 성장이 제일 빠르다. 콩대 이파리가 누렇게 변하고 주렁주렁 달린 콩들이 제 무게를 못이겨 축 늘어졌다. 장맛비를 오랫동안 맞으면 싹이 나서 버리기 십상이다. 오늘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기에 주섬주섬 익은 것만 골라 대충 한 바구니를 땄다. 콩 농사로 첫 수확이다. 줄기가 엉켜있어 수확량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農夫는 밭에서 거두고 農婦는 집안에서 열심히 깠다. 밥에 흰 강낭콩이 가득 들어간 내일 아침 밥상의 풍경이 사뭇 그려진다.
합이 145세...어느새 세월이 백발을... 집사람의 오늘 읍내 출입 목적은 은행에 가서 '식탁 값'을 송금해줘야 한다나 어쩐다나 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 주방가구로 아일란드 식탁을 마춤 주문으로 들여왔던 것. 오뉴월 한낮 땡볕에 차를 몰고 외출하기가 마뜩찮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 나는 운전기사 신분. 집을 나서다 보니 오늘따라 집사람의 머리가 중천의 햇살을 받아 하얗게 반짝인다. 작년 같으면 일주일에 두 번 꼬빡꼬빡 읍내 출입을 했었다. 태안 노인 복지관이 주관하는 집사람의 노래 교실 봉사 활동에 나는 꼼짝없이 운전 기사 노릇 길잡이였다. 신종코로나 사태로 올핸 완전 올 스톱이다. 여섯 달 째다. 코로나 기세로 보아 가까운 시일내 풀릴 것 같지가 않기에 -이제 사람들 앞에 나설 일도 없는데 하며- 초봄부터 그동안 까맣게 물들이던 머리 염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