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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읍

(1921)
눈 내리는 날, K씨의 하루 간밤에도 눈이 내렸다. 읍내 나갈 일이 있다. 내일 서울 올라갈 고속버스표 예매다. 간선도로는 눈이 녹았지만 마을 초입의 교차로까지 고갯길이 문제다. 꼬불꼬불하고 응달진 꽁재를 넘는 게 바짝 신경 쓰인다. 자칫 반대편 차와 고갯마루에서 맞닥뜨릴 때가 낭패다. 읍내 나간 김에 몇군데 들러 올 곳이 있었다. 재래시장, 하나로 마트 그리고 며칠 전에 소장님 왕진 출장으로 헛걸음을 한 보건소. 몇가지 검사를 했다. 집사람이나 나나 정상이었다. 하루종일 오락가락하는 눈 눈 눈... 올겨울은 눈 풍년이다. 바쁜 것 없이 느긋한 하루. 실은, 오늘 재래시장과 하나로 마트를 들어가 본게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집사람만 다녀오고 나는 길 가에서 정차한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우리집 호떡장수 뭣이 못마땅한지 하루종일 잔뜩 하늘은 찡그리고 바람이 불어대는 스산한 날이다. 밍숭맹숭 이런날, 둘이 마주 앉아 호떡 구워먹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재래시장에 단골 호떡장수 아지매 굶어죽게 생겼다...
귀촌, 그리고 '코로나 블루' 언제나 그렇듯 눈이 내린 날은 더더욱 조용하다. 창가에 홍시 두 개가 참 따뜻하다. 바깥 홍시 상자에서 막 꺼내온 홍시다. 년말 년시를 맞아 안부삼아 친지들과 통화를 해보니 갑갑하고 답답한 '집콕' 이야기가 주류다. 앞뒤 아귀가 안맞는 정치 방역으로 긴장의 끈을 엉뚱한데서 조인다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코로나 블루'로 나타나고 있다. 아침나절에 읍내를 다녀오다 북창정미소 근처에서 차를 세워 집사람이 내렸다. 집까지 2 키로 남짓 거리를 걷는 것이다. 나는 저녁무렵에 솔밭길을 걸었다. 북풍 바람 찬 날은 수로를 돌아오는 들판보다 해송이 아기자기한 솔밭 오솔길이 딱이다. 소소한 귀촌의 하루. 코로나를 잊고 산다.
땅속에 월동무 50개 저장하기 물빠짐이 좋은 곳을 골라 땅을 깊게 판다. 볏짚을 밑바닥에 깐다. 무청을 잘라낸 통무를 꽁무니가 위로 경사지게 배열하고, 볏짚을 덮는다. 2단째 다시 무를 배열하고, 볏짚을 다시 덮는다. 도톰하게 봉우리를 만들며 파낸 흙을 덮고, 발로 쾅쾅 눌러준다.
'화초감나무', 처음 본다 별의별 감나무도 다 있다. 화초감나무... 처음 보는 감나무다. 우리 마을 이장님 댁에 갔다가 마당에서 눈에 띄었다.
오늘, 나머지 알타리무를 모두 뽑았다 오늘로서 나머지 알타리무를 전부 뽑았다. 집사람이 정한 행선지를 향해 김장철 때 맞춰 이젠 모두 떠났다. 알타리무 뿐만 아니라 맷돌호박, 검정호박, 누렁호박도 어디론가 덩달아 함께 떠나갔다. 씨를 뿌려 가꾸어 기르는 건 내몫, 나누는 그 다음 일은 집사람이 알아서 한다. 농가월령가에 따라 철이 되면 씨앗을 챙기며 기르는 재미... 이게 나의 보람이다. 맛있게 먹었다는 회신이 더없는 즐거움이다.
알타리무의 외출, 행선지는? 본격적인 김장철이다. 알타리무를 뽑을 때가 되었다. 애시당초 알타리무를 나눠주기로 작정하고 넉넉하게 씨앗을 뿌렸던 것. 여기저기 타진한 끝에 환영하는 '손님'이 서너 분 나타났다. 오늘 처음으로 밭에서 알타리무를 뽑아 읍내 살고있는 친구에게 전달했다. 농촌에 살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농사를 짓는 건 아니다. 밭이 있다고 해서 모두 알타리무를 심는 것도 아니다.
LG트윈스...꿈은 사라지고 살얼음판을 걷듯 2위를 고수하더니 운명의 장난처럼 마지막 두 게임에서 연거푸 지는 바람에 순식간에 4위로 추락하며 페난트레이스를 마감했다. 키움히어로스와 와일드 카드에서 이겨 준플레이 오프에 진출했으나 어이없게도 두산베어스에 내리 두 판을 내주고 말았다. 핸드폰을 집어던지는 열성 팬의 분노가 표출되었고, 끝내 류중일 감독이 물러난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충청도 어느 시골에 앉아 올해도 LG트윈스 점퍼를 열심히 입고서 가을야구를 응원했건만 26년을 기다린 우승의 꿈은 내년에 다시 꾸기로 했다. 1994년 마지막 우승 당시 잠실 구장에서 응원의 함성 속에 입었던 LG트윈스의 빛바랜 빨간 점퍼를 벗어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