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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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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일기- 잔설따라 도내리 오솔길을 가다 고라니 발자국인가. 이건 산토끼 발자국인가. 도내리 오솔길 걸으며 걸으며 하얀 겨울을 가다.
허수아비 열전- 삼복에 콩밭은 내가 지킨다. 여기는 콩밭. 밤새 고라니들이 싹둑싹둑 잘라 먹는다. 아침 저녁으로는 산비둘기가 날아든다. 가을에 거둘 한줌의 메주콩, 밥상에 오르는 간장 한종지에도, 땀과 사연이 있다. 누가 허수아비라 하는가. 염천 삼복에 불철주야 콩밭을 지켜낸 허수 일가의 공로를 잊지말자.
꿈속의 영감 토란잎에 빗방울이 구른다. 익어가는 볏닢에 얹힌 은방울도 바람결에 곧 굴러내릴 태세다. 또닥또닥 내리는 비가 하루종일 그렇다. 게으른 사람 놀기 좋고 부지런한 사람 밭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산보 삼아 버갯속영감 댁을 들렸더니 할머니는 비를 피해 창고 안에서 혼자 고추 뿔따기를 하고 있어..
귀촌일기- 이별은 슬퍼더라, 하룻강아지의 재상봉 생후 40일 짜리 젖떼기 강아지 한놈을 데려왔다. 길러 보라는 버갯속영감님댁 할머니의 권유를 집사람이 무심코 받아들인 것이다. 작년 가을 이후 풀어놓았던 빽빼기 녀석도 열흘 전부터 다시 묶인 몸이다. 돌아다니며 비닐 멀칭에 발자국 구멍을 내므로 고라니 소행까지 덤터기 써며 원..
머위 집 아래로 옛 샘터가 있다. 아직도 맑은 물이 솟아나고 있다. 물 맛이 좋다고 마을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그러나 십년 전에 간이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샘물 맛은 이제 희미한 기억에서 남아있다. 샘터 주위가 머위 밭이다. 해마다 노지 머위가 제일 먼저 돋아나는 곳이다. 벌써 돋아났을 가 하면서 슬..
귀촌일기- (27) 상열지사 상열지사 (27회분) “큰일이네그려.” 잡초로 어근버근했던 분위기를 버갯속 영감이 바꾸었다. “예?” “할망구들 말이여. 날 덜덜 볶어.” “할망구가예?” “경로당 할망구들 말이여.” “..........” “노래를 불러... 또 놀러가자구...” “난 무신 말씀이라꼬예.” “어이구, 이래저래 ..
귀촌일기- (21) 도내일몰(島內日沒) 도내일몰 (21회) “군(郡)에 갔다 오는 길이유.” 버갯속 영감이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먼발치서부터 성큼성큼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육이오(六二五)라 기념식도 허구. 참전 용사라구 군수가 점심을 대접하데. 잘 먹었슈.” 영감은 지난 현충일도 읍내를 다녀오다 우리 집에 들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