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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21) 도내일몰(島內日沒)

  도내일몰                                                                                    (21회)


  “군(郡)에 갔다 오는 길이유.”

  버갯속 영감이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먼발치서부터 성큼성큼 걸음걸이가 가벼웠다.

  “육이오(六二五)라 기념식도 허구. 참전 용사라구 군수가 점심을 대접하데. 잘 먹었슈.”

  영감은 지난 현충일도 읍내를 다녀오다 우리 집에 들렀다. 그 날도 군수가 내는 점심을 먹었다는 얘기를 했었다.

  영감은 검정 색 정장 차림이었다. 옷깃에 달린 왕방울만한 배지가 먼저 내 시선을 끌었다. 토박이 시골 유지 냄새가 물씬 났다. 영락없는 도내 이장님이었다.

  “기냥 빳찌가 아녀. 군(軍) 유공자 빳찌여.”

  내 시선이 왕방울 배지에 멈추자 영감은 재빨리 궁금증을 해소시켰다.

  “허허, 요거 아무나 다는 거이 아녀. 도내에 시(세) 사람 뿐이여. 참전용사허군 달러. 어이구... 좋은 시절... 군대서 다 보냈다니께...”

  희소가치를 강조하면서 영감은 반세기 전 군대 시절을 되새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대생활의 애환은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허리 안 아픈개비유?”

  충청도 사투리로 나는 농담을 걸었다.

  “워쩌다 요런 날이 있슈. 희한혀.”

  “군수 밥이 약 밥인가봐예. 우쨋기나 잘 드셨는갑십니더.”

  “매번 갈비탕이여. 비싼 거라야 좋남. 허허.”

  “군수 양반, 돈 안 들고 칭찬받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지돈 아니라고 요새 엉뚱한데다 펑펑 쓰는 군수들이 많다카든데예.”

  “쩍쪄. 이즉 안 잊어버리구 불러주데. 먹어야 맛인감?”

  “그렇지예. 그 맛이지예.”

  누군가가 알아주고 불러주는 맛이었다. 영감의 왕방울 배지가 그런대로 힘을 쓴 하루 같았다.

  

  버갯속 영감은 오 사단에서 중사로 제대한 육이오 참전용사이다. 화랑무공 훈장을 받았다. 영감 사랑방에는 훈장과 이승만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훈장증이 액자에 넣어져 걸려있다. 그 옆에 훈장을 단 대형 사진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색깔이 바랜 천연색 기념사진이 세월의 무게를 더해준다.

  누구나 그랬듯이 일자로 꽉 다문 입에다 어깨에 잔뜩 힘을 줘 얼마나 근엄한지 우스꽝스럽기조차 하다. 나는 사진을 볼 때마다 영감의 포즈를 흉내 낸 다음 거수경례를 붙인다. 영감은 ‘어허, 그러지 말랑게.’하며 손사래를 쳤다.

  영감 집 대문에는 태극문양(太極紋樣)이 들어있는 ‘국가유공자의 집 김 종만’이라고 쓰인 문패가 당당하게 붙어있다.


  “바쁜 기 좋은 깁니더.”

  “그려. 오라는 데는 많슈. 다 가지두 못혀.”

  “오라 할 때가 사람 사는 기라예.”

  “이전엔 집에 있기나 했남? 농사를 지어보기는 했어? 나다니기 바빴슈. 허허. 근디 요새 말이여, 왠 놈에 대사도 그리 많다나. 품매구 돈 들어가구... 골치 아퍼. 늙으니 밤정가 안 해 그건 다행이여.”

  평석 옆 느티나무가 이태 째 몸살을 하고 있다. 모양새는 그럴 듯한데 아직 덩치 값을 못했다. 한 뼘도 안 되는 그늘도 그늘이라고 영감과 나는 엉덩이를 당겨가며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내, 오늘 이야기 하나 헐게잉. 들어봐. 삼 김(金) 있잖여.”

  자리에 앉자마자 영감은 뜬금없이 삼 김 이야기를 꺼냈다. 

  “어이구, 다들 대통령을 허구 싶은디 고게 잘 되남 말이여. 어느 날 셋이 모여앉아 저들끼리 신세한탄을 했는디... 그러다 노래를 하나씩 불렀슈. 무신 노랜지 아남?”

  “.............”

  “먼첨 영샘이가 불렀는디 ‘돌아와요 부산항에’여.”

  나는 웃었다. 영감은 진지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그 다음이 대중이인디 ‘목포에 눈물’. 맨 나중에 종필이는 ‘꿈꾸는 백마강’.”

  “그렇네예. 그런 때가 있었지예.”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듯한 풍자였다. 버갯속 영감이 거처하는 방에는 김종필 씨가 쓴 ‘國泰民安(국태민안)’휘필이 걸려있었다. 

  “충청도 종필이는 꿈만 꾸다 말었슈. 어이구.”

  동향인으로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말끝마다 묻어났다. 

  “모내기 끝났다시프이 감자 캔다구 왼 동네가 난리구마.”

  영감은 간사지 논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뉴월의 들판은 따가운 햇살에 눈이 부셨다.

  “어은 사람들이 도와주는갑데예.”

  “말짱 여자들이여. 여자들 힘이 장사여.”

  “..............”

  “조기 좀 봐. 닷되지기 논도 없었는디가 요기 아뉴...”

  영감은 우리 집 밑으로 보일 듯 말 듯 잡목에 가려진 한 뙈기 논을 가리켰다. 지금 보면 논이랄 수 없다. 닷 되나마 쌀을 구경했던 손바닥만한 천수답이었다. 간사지가 생긴 이래 수십 년 동안 거들떠보지 않아 잡초만 우거졌다.

  “논이 일을 두 배, 세 배로 맨들었다구. 도내에 밭 뙤기라 혀봐야 고구마 심구, 감자 심구, 뭐 할 게 있었남? 모다 여자들이 한기여.”

  오늘따라 영감은 도내 여자들의 노고를 알아주었다. 

  “힘 들어도 논일이든 밭일이든 살맛이 나야지예. 모두가 영감님 덕분 아니겠십니꺼.”

  “난 말이여, 농사도 몰러. 바다 일두 몰러. 안 해봤시유.”

  영감 당신이 걸어온 역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 사람이 한나절에 이 백 개(마리)를 잡는 낙지를 영감은 평생 한 개도 잡아보지 않았다. 경운기 한번 몰아본 적이 없었다.

  “아이구, 영감님이야 그 시간에 다른 일 하셨지예.”

  “그려. 저 논 보라구. 먹고살게는 맨들어 놨응게... 허허, 그러니 나 죽으머 천당 갈기여.”

  “예? 천당예.”

  갑자기 천당이 엉뚱했다. 나는 버갯속 영감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 좋은 일 많이 했슈. 나 아니머 누가 혀. 못혀. 월매 좋아.”

  영감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나 왕방울이 울리는 소리였다. 지금까지 버갯속 영감 스토리에서 스스로 이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왕방울이 소리를 낼 때는 내야 했다. 버갯속 영감에게 오늘은 다른 날이었다. 영감은 울울했던 마음을 툭툭 털어냈다.

  “그렇지예. 알 건 알아야 합니더.”

  나는 다시 영감의 얼굴을 살폈다. 실눈을 감았다 떴다하며 초점을 잃었다. 이대로 헤어질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장 삼십 년에 청춘 다갔지예?”

  나는 영감을 슬며시 부추겼다. 어차피 가야할 여정이라면 미리 차표를 끊어드리는 게 도리였다. 영감은 아래 위 입술을 삐쭉이 누르며 꿀꺽 침을 삼켰다.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영감은 갑자기 뒤로 돌아앉았다.

  “조오기, 조.”

  영감은 턱을 들어 구도 쪽 당섬을 가리켰다. 당섬은 우리 집 뒤에서 능히 건너뛸 만큼 지척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못 가보았다. 나름대로 장구를 갖추어 건너기를 시도했으나 무릎까지 빠지는 개펄에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갯골이 미끄럽고 깊었다.

  “조게 딴섬인디...”

  딴섬이라는 말에 내 귀가 번쩍 틔었다. 당섬을 옆집 배 선생은 언젠가 ‘창개골 섬’이라 불렀다. 두 번이나 물었으나 내가 듣기에 여전히 ‘창’인지 ‘판’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굴포운하를 팔 때 유래된 ‘신털이봉(峯) 전설’이 건너 마을 북창(北倉)에 남아있다. 이 전설에 판개논, 판개골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판개골 섬’이 맞는 것 같다.

  정식 지도책에는 당도(堂島)로 적혀있다. 순수 우리말이었던 딴섬이 당섬으로 되었다가 당도가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에 미치자 그동안의 궁금증이 풀렸다.

  “딴섬서 굴 찍어 먹고 살았시유. 조래 뵈두 우릴 멕여살린 섬이유.”

  “코딱지 같은 섬에 무슨 굴이 있다고예.”

  “여자들이 했다니께. 고것두 돈이 됐승끼.”

  굴 따서 나올 때는 거룻배가 없어 썰물을 기다렸다가 걸어 나왔다. 지금은 딴섬에 굴 찍으러간다는 소리를 하는 걸 듣지 못했다. 모두 애옥살이 이야기였다.   

  “어이구, 버스가 있기나 했어? 죈종일 걸어다녔슈.”

  영감은 슬슬 허리끈을 풀었다.

  “자전거라도 타시지...”

  “나 자전거 못타.”

  “예?”

  “자전거 때문에 죽을 뻔 했다니께. 어이구.”

  경운기도 못 만지고 자전거도 못 탄 이장님이었다.

  “그려, 이장 삼십년을 말이여... 자전차가 뭐 필요하간?”

  “허기사 그때 길이 지대로 있었것십니꺼...”

  “말 마슈.”

  “인제 버스 종점이 생기구... 도내가 딴 세상 된 거지예?”

  “오래살고 볼 거여. 근디 오만디가 아프니 말이여.”

  “아직 창창 합니더.”

  “창창하다구?”

  내 장단에 영감의 입은 한껏 벌어졌다.

  “허긴 아직쩍...”

  영감은 자세를 고추 세웠다. 이 쯤 되면 영감의 머리는 씨줄 날줄 얽인 과거사가 빠르게 줄을 섰다.  

  “조, 간사지가 일백오십 정(町)이여. 원뚝 길이가 육백 오십 메타구.”

  육백 오십 미터의 제방 안에 백 오십 정보(町步)의 논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저 길쭉하고 넓디넓은 논으로 만 봐왔다.

  “조기 조, 저수지 말이여. 거진 삼만 평이여.”

  삼만 평이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았다. 집에서 내려다보면 일 년 내내 그대로였다. 모내기철에는 양쪽으로 난 수로로 논에 물대기 바빴다. 한꺼번에 물을 빼도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간사지 사이로 길게 뻗은 저수지를 보며 버갯속 영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가. 언제나 한결같은 저수지에 변하는 건 사람이었다.

  “괴기가 많어. 낚시 한번 혀보라니께.”

  영감은 뜻밖에 낚시 이야기를 꺼냈다. 언젠가는 바다낚시를 해보라더니 오늘은 저수지 낚시를 들먹였다. 영감은 여태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미련일가 자부심 일가. 아닌 게 아니라 한겨울에는 얼음 구멍치기 낚시꾼들이 몰려와 새카맣게 진을 쳤다. 도내리 수로로 알려져 초봄에는 수초 낚시꾼들의 차지였다.

  

  저수지는 해 질 무렵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낮에는 있는지 없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밀려오면 남쪽의 전망은 달라진다. 굵게 땋아놓은 동아줄이 어느새 이순신 장군이 쥔 큰칼로 바뀐다. 뉘엿뉘엿 서산에 걸리면 역광(逆光)에 꿈틀거리는 은빛 물비늘이 간지럽다. 보글보글 끓는 듯, 송사리 떼가 요란하다. 거실에 기대앉아 보노라면 온 몸이 한없이 잦아든다. 이화산(梨花山) 너머 해가 곤두박질 할 때는 용암이 저수지로 흘러내린다. 팔봉산의 솟는 여명이나 이화산 지는 노을이나 다를 바가 없다. 같고 다른 건 보는 이의 자기 마음이다.

  나는 이 조망을 우리 집에서 보는 제 일경(第 一景)으로 친다. 집 뒤로 보이는 구도 항도 그윽하지만 딴섬이 홀로 외로워 안타깝다.


  이른 아침 물안개 자욱한 어은 뜰, 만조 때 호수에 뜬 구도항의 야경,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들어부은 은하수, 구름이 가는지 달이 오는지 그저 그렇게 무심한 엇갈림, 앞서거니 뒤서거니 철새들의 군무, 한여름 밤을 온통 뜬 눈으로 지새우는 개구리의 합창. 으스름 새벽에 만나는 고라니 떼의 나들이. 안동네 개 짓는 소리가 밤을 뚫고 닭 홰치는 소리에 흩어진다. 모두가 보아야 보이고 들어야 들리는 우리 집 풍광이다. 있는 듯 없는 듯. 바람 없는 밤일랑 조각배에 삿대 저어 달빛아래 물들고 싶다. 


  나는 제 일경을 ‘도내일몰(島內日沒)’이라 이름을 붙였다. 내가 첫 손가락으로 꼽는 경치는 버갯속 영감이 만들었다. 집터를 고를 때만 하더라도 나는 저수지가 있는지 몰랐다. 때가 모내기철이라 물을 댄 논과 저수지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앞으로는 들판이고 뒤로는 바다만 보였다. 집을 짓기 시작하고 나서야 발견하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무릎을 쳤다.


  동네 사람들은 오다가다 버갯속 영감과 내가 같이 있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남녀노소 어느 누구도 대화에 끼어든 적이 없어 뜻밖이다. 가까이서 얼굴을 빤히 맞닥뜨리면 고개만 꾸뻑하고 지나갔다.

  장소가 따로 없어 앉는 곳이 만남의 장소였다. 오늘은 우리 집 평석이었다. 동서남북이 트여 그저 그만이다. 둘러봐서 버갯속 영감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강의의 실마리가 되었다.

  오늘도 동네 사람들이 띄엄띄엄 심심치 않게 오갔다. 도란도란 얘기하는 영감과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이구, 많이 놀았네그려. 나 가네잉.”

  영감은 일어섰다. 평석을 가리던 느티나무 그늘도 슬슬 비껴나고 있었다. 영감은 가볍게 허리춤을 고친 다음 툭툭 신발을 털었다. 버갯속 영감의 가슴에 달린 왕방울 배지가 오늘따라 믿음직스러웠다.

  “걱정 말유. 약쑥은 아즉 시간이 있슈. 기별 할텐게잉...”

  영감은 약쑥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마치 손가락을 걸며 사랑을 맹서하는 연인 같았다.



                                                                                                                                      연재 계속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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