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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귀촌일기- (20) 담배

담배                                                                                                  (20회)

 

  “요걸 안하머... 심란해서 아무것도 못히여.”

  “............”

  “난, 술은 안 먹어. 근디... 담배는 해야혀.”

  영감의 심기가 불편했다. 술 안먹는 걸 강조한 다음 담배 이야기가 나오면 틀림없이 마음이 심란한 날이었다.


  지난 설날에 담배를 들고 영감님 댁에 인사를 갔다. 명절이 아니라도 사두었던 담배를 가끔 드리곤 했다. 영감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꺼리였다.

  “왠 담배여. 머헐려구 사와.”

  영감은 슬쩍 사양하면서 입은 벌어졌다. 받자마자 봉지 채로 둘둘 말아 얼른 뒤로 감추었다. 언제부터인지 영감님 방에 공기청정기가 있었다. 알고 보니 버갯속 영감은 몇년 전에 심장 수술을 받았다. 수술 그 때 뿐 담배를 끊지 못하는 영감을 바라보는 자식은 입장이 달랐다. 아들은 나의 담배 선물이 껄끄름한 눈치였다. 


  우리집에 들어온 버갯속 영감은 늘 쭈뼛쭈뼛했다. 구석에 있는 담배 재떨이에 영감은 먼저 눈길을 보냈다.

  “허허, 담배도 안 하는디 왠 재터리가 두 개나 있네그려.”

  나는 얼른 재떨이를 가져와 영감 앞에 내놓았다. 매구 오래비 본듯이 좋아했다.

  “피워도 되간?”  

  “아이구, 마음대로 피우이소. 황토집이 그기 좋은 기라예. 집안에서 아무리 피워도 냄새가 안 끼인께네예.”

  “그렇긴 하더구마.”

  영감은 그때서야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슬며시 꺼냈다. 가느다란 에쎄 담배개비 허리를 더듬어 두어 번 말랑말랑하게 주물렀다. 나는 라이터를 켰다. 묘한 시차를 영감은 즐겼다. 고개를 살짝 돌려 첫 모금을 빨아 당기는 순간 영감의 볼은 오목하고 눈은 지그시 감겼다. 담배 한 대를 피우는데 영감과 나는 예외 없이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럴 때 마다 영감은 미안해하는 기색이 유별나서 내가 겸연쩍었다.

 

  헤어질 때 과정은 따로 있었다. 영감은 재떨이에 있는 꽁초를 손으로 주섬주섬 수거했다.

  “그냥 두시이소. 우리가 치울낑께네예.”

  못하게 말려도 한사코 영감나름의 방식을 고수했다. 처음에 몇 번 말리다가 그만두었다.

  영감은 재떨이 주변에 흩어져있는 담뱃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잿가루를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하나하나 찍어 올려 꼼꼼히 재떨이에 담았다. 바스러진 가루는 손바닥으로 쓸어모아 재떨이에 한꺼번에 털었다. 이 순간 영감의 표정과 손놀림이 너무 진지해 나는 빙긋빙긋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혼자 감상하기에 아까웠다.

  영감은 꽁초를 조심스럽게 들고나가 후미진 곳에 던져버렸다. 영감에겐 이런 판박이 수순이 집 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처럼 배어있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영감이 버린 꽁초를 나중에 나는 다시 주웠다.


  “어허, 참.”

  오늘은 여느 때와 달랐다. 헛기침에 묻어나온 첫마디가 나를 긴장시켰다.

  “어이구, 워디 끊을 수 있깐?”

  버갯속 영감은 주머니에서 꺼낸 담배갑을 방바닥에 툭 내던졌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창밖을 응시하다 고개를 돌려 슬며시 담배갑을 다시 주워들었다. 답배갑 구멍을 이리저리 헤집어 한 개비를 꺼냈다. 나는 재빨리 라이터 불을 켜서 들이밀었다. 영감은 고개를 숙여 첫 모금을 힘차게 빨았다. 담배개비를 낀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이 사르르 떨렸다. 영감은 창밖을 내다보며 입안에 가두었던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평소에는 조심조심 담배연기를 뿜던 영감이었다.

  “현수 그 넘도 싫여허구... 할망구도 싫여해.”

  “.............”

  나는 멀뚱히 영감을 쳐다보았다.

  “소용 없슈.”

  영감은 단호했다. 모르긴 몰라도 당신 집에서 한바탕 사단이 있었다.

  “허허, 그런디 말이여. 이거 안하머 심란해서 견딜 수 있깐.”

  영감은 변죽만 울렸다.

  “자석이구, 에편네구, 지 싫은 건... 에이, 소용없슈. 없다니께.”

  영감은 전혀 앙금이 풀리지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닫을 건 닫고 열건 모두 열어젖힌 영감이었다. 보낼 건 보내고 비울 건 비웠다하더라도 찾아오는 허전함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부딪치는 갈등에 영감은 심란했다. 영감이 심란하다는 의미가 나에게 그대로 와 닿았다.


  “못혀. 못버린다니께.”

  “글쎄 말입니더. 평생 친굴 버리모 되겠십니꺼?”

  나는 장단을 맞추며 농을 걸었다.

  “그렁께 말이여. 오십년을 적셔 가지구. 허허.”

  영감은 반색을 했다. 우울했던 표정이 누그려졌다.

  “많이 피우이소. 많이 피우이소.”

  나는 담배를 계속 피우라는 시늉을 하며 영감을 부추겼다.

  “뭐라구? 많이 피라구?”

  “예. 그 좋은 거, 많이 피우고, 나쁘다는 거 태워서 없애고예.”

  “뭐여? 어이구, 쯔쯔쯔.”

  한창 타들어가던 담배 불똥을 느닷없이 두 손가락으로 똑 잘랐다.  

  “그려. 허긴 안 태워야 되는디...”

  영감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영감은 자르고 남은 꽁초를 담배갑에 조심스럽게 끼워넣었다.

  “근디... 고게 되나 말이여... 끊을 재주가 없네. 허허.”

  영감은 비로소 웃었다. 스쳐지나가는 쓴웃음에서 나는 세월이 가져다 준 허무를 보았다. 

  “담배 먹어도 백 살 사는 사람있고예, 술 한방울 안 해도 일찍 가는 사람있고예, 안 그렇십니꺼? 하고 싶은 대로 하이소.”

  “그려. 담밴 원래 안했남?”

  “끊은 지 한 십년 가차이 되는 갑십니더.”

  “술은 먹으매 담배는 워쪄 끊었남? 나 말이여. 군대 가서 피기 시작했는디 이거 워디 끊을 수 있깐?”

  “안 피우몬 되잖아예.”

  “그려 그려, 죽으머 끊지. 어이구.”

  “담배 끈기 쉽십니더. 저, 여러번 끊어 봤는데예.”

  “그러시, 용케 잘 끊는... 독한 사람이 더러 있더라니께.”

  “하기사 독한 분이모 끊어도 벌써 끊었지예.”

  “난 못혀... 워디 한번 피워 보간?.”

  영감은 담배갑채로 내 가슴팍에 내밀었다. 생뚱맞은 버갯속 영감 때문에 나는 멈칫했다. 나에게 담배를 권하는 노인은 처음이었다.

  “담배친구 만들라꼬예?”

  “워디 한번 피워보라니께. 월마 맛 있남.”

  영감은 담배갑에서 한 개비를 뽑아 기어이 내 입에 물려주었다. 코앞을 스치는 담배 내음이 오랜만에 구수했다.

  “담밴 왜 맹글어. 피지 말라, 말라 허며... 화투는 왜 맹글어. 노름 허지 말라, 말라 허며 말이여. 나라서 안 맹글먼 안 할 거 아녀?”

  “그렇네예. 맞십니더.”

  아까 집어넣었던 꽁초를 찾아 다시 꺼냈다. 영감은 라이터를 몇 번이나 눌러 불을 붙였다.

  “하루 세 갑 피는 사람도 봤슈. 난, 지우 한 곽이여... 어이구. 다른 사람은 몰러두... 난 못헌다니께.”

  나는 입이 텁텁해졌다.

  “아이고, 가입시더. 한잔 하게요.”

  내 입에서 반쯤 나왔다. 막걸리 한 사발이 간절했다. 오뎅 꼬지에 김이 피어오르는 포장마차가 눈에 어른거렸다. 니나노집이면 더 좋다. 어깨동무하고 태안 읍내 어디라도 가서 젓가락 장단에 마음껏 소리 내 한 곡조 뽑고 싶었다.

  왜 영감이 술을 못할 가. 천성적으로 못하는 건지 어떤 계기로 술을 끊은 건지 물어보질 못했다. 이장 삼십년을 술 한 방울 입에 안대고 해냈다면 이도 보통은 아니었다.

  “어이구.”

  영감은 가는 신음소리를 냈다. 고개를 들어 한두번 연기를 내뿜고는 재떨이에 손가락을 꾹 눌러 껐다. 담배 맛이 안 나는 눈치였다.

  “나 갈껴.”

  “어데로예.”

  “워딘 워디여...”

  “거, 참. 쯧.”

  나는 마른입을 다셨다. 뒷맛이 씁쓰레하기는 영감이나 나나 매 한가지였다. 

  영감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엌일을 하고 있는 집사람을 쳐다보며 허리를 슬쩍 굽혀 인사를 했다. 집안에서 담배를 많이 피운 날일수록 집사람에게 더 깍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주머니, 잘 놀다갑니다.”

  뜻밖에 영감의 목소리가 밝았다. 자초지종은 알 수 없어도 영감의 쓸쓸한 마음 한 구석에 그나마 군불을 지펴드린 것 같아서 내 마음이 훈훈했다.



                                                                                                                                       계속 연재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