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6065)
어느 겨울, 홍시의 추억 동지섣달 그 시절 시골의 겨울밤은 유난히도 길었다. 심지를 돋워가던 석유 남포등불이 이슥할 즈음 할머니가 온돌 아랫목에서 슬며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시면 온식구들의 눈이 반짝반짝 귀가 쫑긋하며 기다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밤참 주전부리... 소금 장독에서 꺼내 오신 홍시. 홍시는 '겨울 밤에 제맛'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오늘날 여기 있다.
"마누라 심부름 왔씨유~" 집사람이 이틀 걷기운동을 걸렀더니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 왜 운동을 안 하슈? 혹시나 해서, 안부전화 했씨유." 안마을 김 계장 부인이었다. 집사람이, 실은 배탈이 나서 걷기운동을 쉬노라 이실직고를 했다. 전화가 끝나고... 우리집 현관문을 힘차게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바깥양반 김 계장이었다. " 마누라 심부름 왔씨유. 드시고 힘내시유." 하며 전해주고 간 건 바지락 조개와 도토리묵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눈썰미는 무섭다. 멀리서 보는듯 안보는 듯 무심한 듯... 하면서 시야에 두고 있는 것이다. 바지락은 개펄 모래톱에 가면 어촌계 조개밭이 있어 언제든 긁어 와 집집마다 두고 먹는다. 그러나 이런 성의가 쉬운 일인가? 형제보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칼바람 엄동설한에 이웃사촌에 ..
며칠 만인가? 솔밭길 이러다 툰드라... 온통 동토지대. 갈수록 온난화 된다면서 식어가는 지구촌은 몸살을 앓는다. 식자들은 툭 하면 기상이변으로 돌린다. 북극 한파라는 말에 지레 주눅들었나. 움추렸다가 여러 날 만에 걸었다. 충청도 치곤 드물게 꽤 눈이 내렸다. 솔밭길은 거진 다 녹았다. 이제 겨우 겨울 초입. 겨울은 아직 창창하게 남았다. 한 사흘 잠잠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일 또다시 서해안 따라 눈 소식이 들린다.
(엽서 한 장) 노조 위원장 안부를 묻다 꿈속에서도 못잊어 못잊어서 그렇게 기다린 인사가 엽서 한 장인가요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다 봉함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즘 세상에 엽서가 있긴 있나? 누구 노랫말처럼, 사랑하다 이별도 엽서 한 장으로... ...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엽서. 한 닢 나뭇잎에 새긴 글. 가볍지만, 담긴 사연은 한없이 무거웠다. 세모... 올해도 목소리가 우렁찼다. 이맘 때면 잊지 않고 전화로 안부를 나눈다. 유태승 위원장이다. 40년 전이다. 내가 총무부장으로 승진해 첫 노사협의회를 할 때 노조 위원장이었다. 나이가 4, 5년 위로 공장 현장에서 강성 노동 운동 경력에다 우람한 체구, 어디로 보나 회사 측 노사관리 실무자인 나로선 사사건건 버거운 상대였다. .... .... .... 이후 몇 년동안 벌어진 상..
햇살 동쪽 송림이 울창해 우리집 해돋이는 늦다. 중천에 햇살이 퍼지면 저녁해는 풍성하다. 금빛 노을은 덤이다. 자고 나면 눈, 눈, 눈. 시도 때도 없이 난분분 하더니 천기도 정신 차려 모처럼 갰다. 송구영신... 어느덧 세모.
우체부 향기 품은 군사우편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에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립문도 못가서 북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갑작스런 변화는 영혼을 잃는 것과 같다' 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한다. 일제 잔재 청산? 언제부터 '우체부'가 '집배원'이 되었는지, '국민학교'가 하루아침에 '초등학교'가 된 것처럼 왠지 생소하면서 어딘가 어색하다. 군사우편 도장 찍힌 전선편지의 애절함이 어떠했으면 향기 품었다 했을꼬. 어릴 적 귀에 익은 이 노래로 말미암아 우편배달부 우체부가 지금껏 친근하다. 우리 마을 우체부는 오늘도 바짓가랑이 요롱소리 나도록 바쁘다. 우체부는 흔적을 남긴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자질구레한 생활용품 택배가 현관문에 놓여있다. 이런 저..
국수와 백김치 수굿하게 우려낸 멸치에 뽀얀 감자 국물이 새삼 따끈하다. 하얀 국수발이 얼마전에 담가 갓꺼낸 백김치의 새콤함과 모처럼 어울렸다. 창밖엔 눈발이 하염없이 흩날린다. 매일 같이 내리는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얀데 식탁마저 하얗다. 운치가 이런 것. 시절 음식 동지 팥죽을 지나 세모 밑자락에 국수 맛도 일품이다. 세상살이 한 끼 마음먹기.
그녀는 씩씩하였다 하루 만보 걷기를 반드시 지킨다. 읍내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처럼 오늘도 북창 정미소 근처에서 내려달라기에... 멀리 팔봉산 능선이 새하얗다. 마을회관을 지나... 팔각정이 있는 안마을 입구 교차로... 오르막 꽁고개를 넘으면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