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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팡세

우체부

향기 품은 군사우편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에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립문도 못가서
북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갑작스런 변화는 영혼을 잃는 것과 같다' 는 누군가의 말에 공감한다. 일제 잔재 청산? 언제부터 '우체부'가 '집배원'이 되었는지, '국민학교'가 하루아침에 '초등학교'가 된 것처럼 왠지 생소하면서 어딘가 어색하다.
군사우편 도장 찍힌 전선편지의 애절함이 어떠했으면 향기 품었다 했을꼬. 어릴 적 귀에 익은 이 노래로 말미암아 우편배달부 우체부가 지금껏 친근하다. 우리 마을 우체부는 오늘도 바짓가랑이 요롱소리 나도록 바쁘다.

우체부는 흔적을 남긴다. 인터넷으로 구매한 자질구레한 생활용품 택배가 현관문에 놓여있다. 이런 저런 과거 모임에 정기 간행물, 친지들이 보내준 선물꾸러미나 책자, 출간 시집도 있다. 요새같은 세모에는 달력이다. 일년 열두 달 줄기차게 날아드는 건 재산세, 자동차세, 전기, 수도료 등 지방세 세금 고지서다.

은행 구좌에서 자동 납부가 안되는 공과금도 있어 일일이 납부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게으름이 겹쳐 세금 납부 독촉장이 몰려오기도 한다. 가끔 운전 과속 범칙금 납부 통보서를 받으면 은근히 화가 나면서 맥 빠진다.

우체부는 과거와 현재 나의 궤적이자 일거수 일투족을 비추는 거울이다. 종종걸음을 쳤던 우체부가 어느 한 시절엔 자전거를 타고 지금 오토바이를 타도 나에게 우체부는 영원한 우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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