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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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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입춘방 붙이다
春來不似春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自然依帶緩 非是爲腰身 미인 왕소군을 소재로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쓴 시. 오늘도 눈발이 날렸다. 봄 같지 않은 봄.
춘설이 난분분... 매화 옛 등걸에 춘절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엄직 하다마는, 춘설이 난분분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입춘첩을 붙였다. 명색이 입춘인데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불었다. 죙일 을씨년스런 날씨다. 이런 날일수록 움직여야 한다며 나선 길. 크게 살 물건도 없는데 물정이나 살필 겸 오랜만에 서산에 있는 롯데마트를 가보기로 했다. 태안 농협 하나로 마트가 전국에서 몇 번째로 크다 한들 물량이나 태깔이 역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봄을 지나 여름이 거기 있었다. 형형색색의 파프리카. 8월이면 우리 밭에도 풍성할 것이다.
입춘방...입춘대길 오죽에도 납매 가지에도 밤새 하얗게 눈이 내렸다. 立春 瑞雪. 책력을 보니 올해 입춘시는 오전 5시 51분. 입춘방을 써서 붙였다. 입춘첩을 여러 장 쓴 건 해마다 입춘첩을 기다리는 이웃이 있다. 입춘 날 소소한 즐거움의 하나.
이대로 봄이 되려나 기와지붕에 쌓인 눈은 홈통을 타고 녹아 내린다. 대한을 지나니 날이 풀렸다. 소한에 얼었던 게 대한에 녹는다? 오늘도 앞뜰 소롯길을 걸었다. 소나무가 우거져 응달진 곳은 빙판이다. 군데군데 질척거리긴 해도 마음이 가볍다. 맞바람에 움츠려 걸을 땐 앞만 보고 종종걸음을 쳤는데 날이 풀리니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긴다. 앞뜰에서 집을 올려다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봄기운이 돈다. 어쨌거나 다가오는 절기는 입춘이다. 까짓 꽃샘추위이야.
겨울 당근의 봄맞이 늘 푸르던 시눗대가 겨울 한파에 얼어서 말랐다. 겨울의 끝인가 했더니 봄은 거저 오지않는다. 꽃샘치곤 심통 변덕이 심하다. 입춘 널뛰기다. 어젠 눈보라, 오늘 아침엔 칼서리가 내렸다. 채마밭에 겨울 당근. 뿌리가 빨갛다. 새봄에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날까? 삼동을 견뎌 지금까지 왔다.
입춘방 쓰다...立春大吉 建陽多慶 입춘방을 여섯 벌을 썼다. 마을에 다섯 가구에 나눠줄 것이다. 붓을 들어 입춘방을 쓰는 건 나, 다섯 집에 배달은 집사람 몫. 드물게 입춘날 아침에 서설이 내렸다. 책력에서 입춘 시(時)를 찾아보니 23시 59분이다. 한밤중이라 입춘방을 미리 붙였다.
개나리,산수유,납매...오늘은 입춘 앞산 솔밭에 그 많은 소나무 틈새 산수유나무가 한 그루 있다. 실은 생강나무다. 산수유나무와 생강나무는 꽃 모양새가 판박이로 닮아서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힘들다. 서울 어느 분이 가르쳐 주셔서 나도 지난해서야 비로소 알았다. 아침 운동 다녀오는 길에 생강나무 가지 하나를 잘라 개나리 화병에 꽂아두었다. 납매는 며칠 전 꽃이 피었고,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산수유 아닌 생강나무 노란꽃이 곧장 자태를 드러낼 거다. 창가의 화병은 이미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