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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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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밥상 풍속도 우리집 아침 식탁 풍속도가 두어달 전부터 달라졌다. 아침 식사는 각자 해결이다. 먹고 싶은 시간에 좋아하는 재료로 각자의 방식대로 조리를 하면 된다. 식재료는 주로 우리밭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흔히 말하는, 나는 새벽같은 '종달새 형'이고 집사람은 '부엉이 형'이다. 50년을 그렇게 살았다. 아침밥은 밥상머리 앉는 시간을 서로 구애 받지 않기로 합의했다. 피차 시원하게 자유 해방이다. 남정네가 까짓껏 한 끼 쯤이야... 30분의 조리시간에 아침 7시가 나의 식사시간. 별반 설거지랄 것도 없이 마저 끝내고 물러나면 집사람 차례다. 당연지사랄까? 7학년 5반이 되니 서로 마음 편한 게 좋다.
노각 늙은 오이. 이맘 때면 채마밭에 천덕꾸러기 노각. 두어 개 따왔더니 노각 무침이 되었다. 입맛이 돌아온다. 한여름 식탁에는 반찬이 따로 없다.
봄비 오는 날, 부추전 사흘째 하늘이 구질구질하다. 바람 불고 가랑비가 흩날린다. 채마밭에서 따온 햇부추가 오동통하다. 이런 날 해물 부추전. 방아를 아세요? 마침 갓 돋아난 방아 잎이 숭숭 들어갔기에 햇부추전에 방아 향이 어우러졌다. 식탁 위의 봄. 귀촌의 맛.
봄날의 식탁...쑥전,돌미나리 초무침 마당 처마밑에 돋아난 달래, 대문간 입구에는 머위, 아랫밭 돌계단에는 돌나물. 냉이. 쑥. 지천이다. 저절로 나서 자란 것들이다. 우리집 밭둑에 쑥은 동네 쑥이다. 동네 사람들이 무시로 들어와 쑥을 캔다. 비닐하우스에서 내려다보니 누군가가 쑥을 캐고 있다. 일부러 캐지 않아도 집사람이 동네 마실을 다녀오면 비닐 봉지 안에는 쑥이 있고 돌미나리도 있다. 밥상이 향기롭다. 입맛이 달라졌다. 오늘 점심에 쑥전. 저녁 식탁엔 돌미나리 초무침겉절이. 이래서 봄, 봄. 봄이다.
짜투리밭이 더 쓸모가 있다 쪽밭... 짜투리 밭뙤기. 지난해 늦은 가을에 씨앗을 뿌려둔 상치가 돋아나서 긴 겨울을 넘겨 이제야 깨어났다. 봄동 상치다. 솎아주었다. 그래야 큰다. 올봄 첫 솎음상치겉절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손이 많이 간다. 시골 밥상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
비가 온다...달래무침 그젠 함박눈. 어제가 대한이었다. 오늘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내릴수록 하루하루가 다르게 날로날로 봄이다... ... 달래 초무침이 식탁에. 밥상에 봄맛이. 봄이 성큼.
영하 10도...노지 상추 겉절이 폭설이 내린다더니 드문드문 햇살에 눈발이 날리다 말았다. 바람이 세다. 꽁꽁 얼었다. 충청도 서해안으로선 보기드문 강력 한파다. 영하 10도라나요. 그러나 노지 상추는 강하다. 식탁에서 상추 겉절이를 보며 귀촌의 의미를 읽는다.
홍합이 식탁에 오르면... 희미한 카바이트 불빛 아래... 오가던 소줏잔.... 서린동 골목 입구, 홍합 국물 인심 후하던 포장마차 그 아지매 생각이 난다. 초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