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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팡세

귀촌일기-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한다.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을 

따는 집이 없다.

떨어진 풋감도 줏어 익혀서 먹었던

그런 날에 비하랴.


온통 먹거리가 넘쳐난다.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도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은 공군 1호기를 타고 다니고

안사람은 2호기를 자가용처럼

는 세상이 되었다.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라인강의 기적을 배우러

독일을 갔을 때 릐프케 대통령이 보내준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빌어타고 갔던

우리나라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정치판은  

박정희 흔들기에 바쁘다.


제대로 된 기념관 하나 없다.

하기사 우리나라 동서남북 전체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다.


경부 고속도로, 울산 공단, 포항제철이 그렇다.

지하철, 광케이블, 소양강 댐이 그렇고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이 그렇다.


통일벼가 쌀밥을 먹게 해주었고,

은수원사시나무 육종 개발로 국토를

푸르게 만들었다.






한일국교 정상화도 가난 때문이었다.

이역만리에 보낸 파독 광부도 간호원도

가난 때문이었다.

월남 파병도 가난 때문이었다.

사우디 건설 근로자 파견도 오일 머니,

가난 때문이었다.


지금의 잣대로 박정희를 재단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재건국민운동과 새마을 운동,

잘 살아보세로 국민을 결집시키고

총력안보, 자주국방, 중화학공업 육성, 수출입국,

근면 자조 협동, 조국 근대화, 민족중흥을 기치로 

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달성해냈다.









5.16이 군사정변이니 쿠데타니

말장난은 부질없다.

가난을 몰아낸 한강의 기적은

민족사에 천지개벽이었다.

 

누천 년 내려온 질곡,

가난을 해소시킨 일 하나만으로도

박정희는 우뚝하다.







11월 14일은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1주년이다.


박정희라는 말 만으로도

눈물이 어린다.








조자룡이 헌 칼 쓰듯

적폐니 국정농단이니 몰아가며

박정희의 딸을 가둬 놓고

우리나라가 과연

잘 될 수 있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