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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갯속 영감 교유기(交遊記)

요즘의 도내수로

 

 

 

  “조기 조, 저수지 말이여. 거진 삼만 평이여.”
  삼만 평이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았다. 집에서 내려다보면 일 년 내내 그대로였다. 모내기철에는 양쪽으로 난 수로로 논에 물대기 바빴다. 한꺼번에 물을 빼도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간사지 사이로 길게 뻗은 저수지를 보며 버갯속 영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가. 언제나 한결같은 저수지에 변하는 건 사람이었다.
  “괴기가 많어. 낚시 한번 혀보라니께.”
  영감은 뜻밖에 낚시 이야기를 꺼냈다. 언젠가는 바다낚시를 해보라더니 오늘은 저수지 낚시를 들먹였다. 영감은 여태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미련일가 자부심 일가. 아닌 게 아니라 한겨울에는 얼음 구멍치기 낚시꾼들이 몰려와 새카맣게 진을 쳤다. 저수지를 낀 수로는 초봄에 수초 낚시꾼들의 차지였다.
 
  저수지는 해 질 무렵에 제 모습을 드러낸다. 한낮에는 있는지 없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해가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밀려오면 남쪽의 전망은 달라진다. 굵게 땋아놓은 동아줄이 어느새 이순신 장군이 쥔 큰칼로 바뀐다. 뉘엿뉘엿 서산에 걸리면 역광(逆光)에 꿈틀거리는 은빛 물비늘이 간지럽다. 보글보글 끓는 듯, 송사리 떼가 요란하다. 거실에 기대앉아 보노라면 온 몸이 한없이 잦아든다. 이화산(梨花山) 너머 해가 곤두박질 할 때는 용암이 저수지로 흘러내린다. 팔봉산의 솟는 여명이나 이화산의 지는 노을이나 다를 바가 없다. 같고 다른 건 보는 이의 자기 마음이다.
  나는 이 조망을 우리 집에서 보는 제 일경(第 一景)으로 친다.    ('버갯속영감 교유기'의 '(21)도내일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