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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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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 홍시의 추억 동지섣달 그 시절 시골의 겨울밤은 유난히도 길었다. 심지를 돋워가던 석유 남포등불이 이슥할 즈음 할머니가 온돌 아랫목에서 슬며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가시면 온식구들의 눈이 반짝반짝 귀가 쫑긋하며 기다리는 그 무엇이 있었다. 밤참 주전부리... 소금 장독에서 꺼내 오신 홍시. 홍시는 '겨울 밤에 제맛'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오늘날 여기 있다.
따다 만 감나무 대봉감. 힘에 부쳐서 먹을 만큼만 땄다. 감나무에 달린 홍시 임자는 지금부터 따로 있다. 우리는 이를 자연의 순리라고 한다.
홍시와 배...소소한 가을맛
슬슬 대봉 홍시나 따 볼까 대봉은 대봉이다. 감나무 가지에 달려있을 땐 모르는데 따서 보면 역시 묵직하고 굵다. 직박구리나 까치들이 홍시로 익는 족족 분탕질로 남겨두질 않는다. 보초를 설 수도 없고... 언제 날아들었는지 알 수 없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감을 따기로 했다. 그동안 단감을 한 두개 씩 따서 햇감 맛을 보긴 했다. 알미늄 감따기 장대 아구리를 양파망으로 끼워 단단히 묶었다. 작은 크기의 나이론 그물 양파망이 안성마춤이다. 오늘은 대봉감. 내일부터는 축대 밑에 감나무 세 그루와 대문간 입구에 단감이다. 감따기 장대를 대문간 입구에 세워 두고 들며 날며 시간이 나는 대로 슬슬 따면 된다. 높이 달린 건 미우나 고우나 어차피 까치밥이다.
빨간 홍시가 보인다 길섶 따라 지난 여름이 두고 간 들꽃들. 앞뜰을 걷다 산등성이를 올려다 보면 앞마당에 빨간 점, 점 점 점. 홍시가 보인다. 가을 꽃처럼 보인다. 이제 만추다.
감 따기...홍시 계절 돌아오다
대봉 홍시
홍시 꺼내 먹기, 곶감 빼 먹기 까치밥으로 남겨주었던... 남겨주었다기 보다 실은 따기가 힘들어 포기했던... 열댓 개 홍시도 감나무 가지만 앙상한 채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한해가 지나간다. 5십여 년 전이다. 학창시절 곤양 다솔사의 북암인 봉일암에서 한 겨울을 보낸 적이 있다. 주지 스님이 신중단에 감춰둔 곶감을 찾아내 절간 친구들과 하나 둘 빼먹었던 그 곶감 맛을 잊을 수 없다. 하루에 한 두 개씩 꺼내 먹는 홍시. 계절의 낙이다. 그동안 이따금 따서 저장해둔 대봉 홍시를 오늘 총 점검했다. 익은 건 익은 것 대로 다시 분류했다. 대봉 홍시를 보며 눈이 내린 산사에서 곶감의 추억을 되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