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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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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부의 망둥어 낚시 오늘 산봇길에 어은-도내 방조제에서 망둥어 낚시를 하는 부부를 만났다. 보잘것 없다는 어종의 대명사, 망둥어가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天高馬肥라더니 역시 가을은 가을이다.
가로림만의 남쪽 저녁무렵에 앞뜰을 걸었다. 도내수로 방죽을 따라 갈대밭이다. 여기도 바다였다. 40여 년 전 바다를 메꿔 간사지 논을 만들었다. 1.5키로의 방조제가 육지와 바다를 가른다. 썰물로 빠지면 갯벌, 밀물이 들면 바다다. 쌍섬이 나란히, 뒤로 이화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렀다. 여기는 태안반도, 가로림만의 남쪽.
도내나루터가 보인다
구름 나그네 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보니 정처없는 구름 나그네 어디로 가는 걸까 아무 말도 하지않고 부는 바람 새소리에 고개 너머 님 찾으러
만보계로 본 농부의 하루 심어두면 절로 자란다지만 농부의 발걸음 손길이 없이 제대로 되는 작물은 없다. 장마에 비바람이 동반한다니 이런저런 단도리로 대비해야 한다. 처마밑에다 일단 끌어다 두어야 안심이다. 이제부터 한낮엔 밭일을 못한다. 7월에 들자 중천의 햇볕이 따가워졌다. 오늘도 오전 8시에 밭에 나가 10시 간식시간에 잠시 쉬고 12시까지, 눈에 보이는 대로 손에 잡히는대로 하는게 내 방식이다. 언젠간 해야 할 일이고 모두 내가 할 일이다. 감자 캐는 일은 우공이산의 심정으로 열흘 째 하루도 빠지지않고 하는 일과. 앞으로 닷새는 부지런히 캐야하는데 장마가 변수다. 장마라 해서 내쳐 비가 오는 건 아니다. 지리한 장마통에도 푸새 말릴 햇살은 나는 법. 해질 무렵에는 걸었다. 쌍섬이 보이는 바닷가를 반환점으로 앞뜰 수로 방죽을..
'도내리 감태'...추억으로 사라지다 내가 도내리에 내려올 무렵엔 물론 불과 5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맘 때면 감태작업에 매달려 온마을 집집이 정신이 없었다. 특히 눈이 많이 올수록 감태가 달다하여 그 땐 감태 값이 한 등급 올랐다. 올해 얼마나 눈이 자주 왔는가. '도내리 감태' 하면 알아주었다. 농한기에 짭잘한 수입원임에도 마을에 감태를 만드는 집이 없다. 어느새 고령화되어 중노동인 감태를 만들 재간이 없는 것이다. 가로림만 남쪽... 쌍섬이 있는 이 넓은 개펄... 갯골에 흐드러진 파란 감태를 볼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 귀농이 늘어나야 할 이유다.
가로림만의 고니, 한 마리... 딱 한 놈 뿐이다, 이 너른 바다에... 어쩌다가. 어떤 형태로든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트럼프. 희망고문은 계속되는가.
가로림만, 도내나루 앞 바다가 얼었다 바다는 좀체로 잘 얼지않는다. 그런 바다가 얼었다. 보름째 한파다. 북극 한파라고들 한다. 흔히 애교로 불렀던 동장군과 다르다. 가로림만 남쪽 끝. 호수같은 바다. 10여 년 만에 얼었다. 서너 달만에 도내나루에 갔다. 하루에 두 번 조수 간만에 쓸려나갔다가 밀려온 얼음 조각들이 개펄에 질펀하다. 삭막하긴해도 겨울다운 그림이다. 쌍섬의 '해태 바위', 구도항 쪽 언덕에 '카크 다글라스 바위'. 내가 이름을 붙인 도내나루터 지킴이들이다. 볼 때마다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