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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53화) “ 에이플랜에 와서 성질 죽었어요. ”

53.

 

 

연구개발 부문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사업 부문의 조직’과 ‘연구개발 부문의 조직’을 대상으로 두 테마를 병렬로 검토했다. 결과적으로 해외사업의 이병무 상무는 안도했으나 연구소장인 이종명 상무는 허탈했다.

 

 

 

에이플랜의 기본안은 2백 명의 '산전 중앙연구소'의 인력 중에 사업부 현장의 과제는 신설되는 사업그룹장 산하의 '지역 연구소'로 이관하자는 것이 핵심이었다. 앞으로 사업그룹장과 Unit장이 될 사업부에서는 쌍수를 들고서 환영했다.

 

연구소 기능이 분산될 위기에 처한 이종명 상무는 끈질겼다. 에이플랜 팀 박진홍의 표현대로 '끈적끈적했고 안면 몰수한 지구력은 나가떨어지게' 했다.

같은 이야기를 다음 회의에서 똑같이 되풀이했다. 토론의 장이 아니라 인내와 끈기의 대결장이었다. 긍정인지 부정인지 애매했다. 분명한 건 같은 주장을 아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대화에서 진전이 없었다.

 

 

 

에이플랜의 방향은 명확했다.

 

첫째, 사업전략과 기술전략을 합치시키는 체제를 만든다.

둘째, Breakthrough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운영 체제를 갖춘다.

셋째, 기술성과를 효율적으로 상품화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든다.

넷째, 개발부문과 사업부문의 각 기능과 연계를 강화한다.

 

 

 

이종명 상무를 면담하고 돌아온 어느 날 박진홍이 잔뜩 열이 올라있었다.

 

“ 에이플랜 따로, 자기 욕심 따로... 한심합니다. ”

 

“ 왜 그래? ”

“ 그래 가지고... 선배라고... ”

 

자리에 앉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짓눌렀다. 성질이 급해 때론 불 같았다.

 

“ 에이플랜에 와서 성질 많이 죽었어요. ”

 

“ 누군 성질 없어 참나?...  그래도 참는 자에 복이 있나니... ”

 

그럴 때마다 나는 달래면서 함께 우리는 웃어넘겼다.

오늘도 무슨 사단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었다. 허공을 쳐다보며  분을 삭였다.

 

 

 

 

이종명 상무는 내가 참석한 몇 차례 워크샵에서는 서두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에이플랜의 실무자들을 덜덜 볶아 대는 모양이었다. 짐작컨대 전말은 대충 이랬다.

 

오늘도 R&D 부문의 조직을 검토하는 에이플랜 팀이 안양에 소재한 연구소에 이 상무를 찾아갔었다.

 

“ 어째서 너희들은 중앙연구소를 없애려고 하느냐? 중앙연구소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났냐? ”

 

실무자인 노봉수 과장에게 이 상무가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

 

“ 중앙연구소를 없애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업에 근접한 연구와 상품 개발을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단순히 R&D 부문의 조직의 박스를 그려서 인원을 늘이자 줄이자 그런 제안을 하자는 게 아니죠. ”

 

옆에 있던 최공범 부장이 거들었다. 오늘은 최 부장과 서브리더인 박진홍까지 가세하여 연구소가 있는 안양으로 내려갔던 것이다.

 

“ 물론 알지. 내가 생각하기론 중앙연구소는 오히려 더 키워야 돼. 나누면 인력도 시너지 효과가 안 나고 R&D가 약해져. ”

 

이종명 상무는 금방 자세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상무가 노리는 것은 통합 산전의 신 조직에서 CTO였다. 그러나 에이플랜의 신 조직에서 CTO는 설정하지 않았다. CTO 자리 만 만들면 기술 개발이 저절로 되는지 기업에서 유행병처럼 한 때 야단을 쳤다.

 

 

 

얼마 전 나는 이희종 CU장에게 CTO를 거론해 보았다.

 

“ CTO? 그건 내가 겸임 할께. ”

 

나의 질문에 CU장은 한마디로 끝냈다.

 

CTO 자리가 아직 필요하지 않다는 뜻인지 CTO를 할 만한 인재가 없다는 뜻인지 이희종 CU장의 의도는 분명하지 않았다.

좋다 하면 한 때 유행병으로 떠들다 지나가는 세태에 대한 반감 같기도 했다. 신중하면서 깰 수 없는 고집스러움이 이 한마디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이 상무의 CTO 자리에 대한 집착은 앞서 나간 헛물이었다. 이런 흐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플랜 실무자들에게 자충수를 두고 있었다.

 

이 상무가 생각하는 CTO로 가는 길에는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아야 했다. 실지 사업과 연계는 공감하면서도 자기의 위상이 떨어지는 건 악착같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야심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럴수록 속셈을 감춘 채 변죽 만 울리고 핵심은 피했다.

 

“ 사업부로 보내 봐. 연구원들이 분명히 이탈해. 지방에는 안 가.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병무 상무가 해외 사업 전문 인력을 사업부로 보내면 회사를 모두 그만 둔다는 말과 맥락이 일치했다. 연구소 연구원들의 서울 선호는 다 아는 일이다. 연구원들의 불만을 역이용하고 있음이다.

 

“ 에이플랜의 취지를 설득해야 할 것 아닙니까. 임원 분들이 이런 일을 해주셔야지 누가 합니까. 에이플랜의 논리가 틀렸습니까? ”

 

옆에서 참다못한 박진홍이 논박을 했다. 박 부장의 색깔은 분명했다.

 

“ 불가능한 얘기야. 에이플랜은 거꾸로 가고 있어. ”

 

“ 거꾸로 가다니요. 선배님이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

 

열이 오른 박진홍이 결국 들이받았다. 이 상무는 피식 웃었다. 오늘따라 저돌적으로 나오자 한 걸음 물러섰다. 작전상 후퇴였다. 선배라는 말은 서울공대 출신의 10년 차 선후배를 의미했다.

 

“ 그럼 지금까지 뭘 하셨어요? 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또 하고... ”

 

박 부장으로선 내친김이었다. 그 동안 곤혹스럽던 선배에 대해 한바탕 분풀이를 했다. 정황은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며칠 전 공장장과 사업부장들과 워크샵에서 이종명 상무는 또 사면초가였다. 그래도 맷집 좋게 견뎌냈다. 수세에서는 얼버무리다가 상대방의 약점은 집요하게 추궁하는 전형적인 '모택동 전법'을 썼다. 이런 광경은 보는 사람들이 더 힘든 고역이었다.

이 상무의 회사 안에서 별명이 ‘마오’다. 얼굴과 체형이 그렇거니와 하는 행동거지가 모택동과 닮았다는 뜻이다.

 

 

공장장;

 

지역연구소의 개발과제를 지원할 때나 중앙연구소 과제를 사업부문 이관 시에 중앙연구소 인력을 일정기간 파견하는 것을 제도화하자.

 

사업부;

 

중앙연구소는 이번 기회에 혁신적이 개편이 필요하다. 일부 인원의 손실을 각오하고라도 사업그룹연구소로 대폭적인 인원의 전배가 있어야한다.

개발과제가 사업현실과 떨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취미생활 하는 느낌도 준다. 중앙 연구소 운운하면서 현업과 동떨어진 세계에서 노는 건 바로 잡아야 한다. 지난 해 퇴임한 최호현 소장이 장기간 너무 놓아 길렀다.

 

이종명 상무;

 

지역연구소는 인력 채용이 어렵다. 자체역량을 키우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점을 고려하면 중앙연구소 인력이 지역 연구소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일정기간 파견 근무시키는 것조차 어렵다. 중앙연구소 조직 내에 지역연구소를 두어 인력 공유의 효율성을 올리는 편이 어떤 가?

 

 

사업부;

 

지역연구소는 사업장과 가까이 있어야한다. 생산과 밀착된 연구개발이 되어야 지역별, 기술별, 제품별로 특화할 수 있다.

중앙연구소는 기반기술 없이 제품개발에 치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T/A에 의한 제품개발 중심이었으므로 앞으로 기반 기술의 싹을 키우는 의미에서 중앙연구소는 그 부분을 주로 담당하고 실질적인 사업그룹의 개발과제는 사업그룹에 주어야한다.

 

 

이종명 상무;

 

중앙연구소를 장래 기반기술개발로 전문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기반기술 과제의 채택, 인력배치에 어려움이 있다. 중앙연구소는 제품개발을 지속하면서 그 과정에서 기반기술을 습득해 가는 것이 타당하다.

 

 

사업부;

 

지역연구소는 제품개발을 담당하고 CU 중앙연구소는 선행기술 개발이라는 기반기술의 축적 이 두 축으로 전문화하자.

 

 

이즈음에 내가 나섰다.

 

“ 지역연구소는 설립 목적이 현장 밀착입니다. 그런데 공장에 가야할 지역 연구소를 서울인 중앙연구소에 두면 대 원칙에 어긋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노래 불러온 부문간의 벽도 해소가 안 됩니다.

중앙연구소 인원이 사업그룹연구소로 자연스럽게 분산 배치되도록 분위기를 점진적으로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급격한 개편은 현재의 상황을 고려할 때 득보다 실이 될 수 있습니다. 대 원칙과 과도기적인 과정을 분리해서 생각합시다. “

 

 

연구개발 조직은 사업그룹에 전진 배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일부 연구인력의 이탈을 각오하고서라도 사업과 직결되는 과제에 대한 인력은 사업그룹 연구소에 귀속시켰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은 원칙이다. 지킬 가치가 있는 약속이었다.

 

 

 

에이플랜 팀의 서브 리더인 박진홍 부장은 이때의 순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며 뒷날 이렇게 회고했다.

 

“ ‘현재 R&D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R&D 조직을 설계할 때 각 사업부문에서 다양한 계층을 인터뷰를 해보았습니다.

 

대부분은 연구소와 사업부문 간에 연계가 원활하지 못하고 사업 즉 현실과 괴리된 R&D 활동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사업부문과 연구부문이 밀착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일 연구소(산전CU 중앙연구소)체제를 분할하여 각 사업부문에 귀속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부의 토론을 거쳐 사업그룹 연구소체제를 구상하게 되었고 이 체제에 대한 에이플랜 팀의 신념은 확고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CU 중앙연구소장인 이종명 상무로부터 에이플랜 팀의 수난은 시작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개인적인 질책, 힐난, 비판, 모욕 등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공식석상에서 말씨와 개별적으로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회사 전체를 내다보는 관점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대학 선배이지만 후배에게 부끄러운 걸 알아야 했습니다.

 

결국 에이플랜 팀이 주장한 체제가 채택되었고 그러한 체제가 최근까지 운영이 되었습니다. IMF 여파로 다시 구체제로 회기가 되고 말았지만 R&D 조직이 사업부문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은 지금도 추호의 변함도, 의심도 없습니다.

 

구름 위에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땅 위에 있고 현실의 바탕에서 선 R&D 조직이어야 합니다. “

 

 

이어서 해외사업조직에 관해서도 박 부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 해외사업 조직 역시 각 사업부문에 귀속시키자는 것이 에이플랜 팀의 주장이었습니다. 이처럼 개별사업 단위의 명확한 책임경영체제를 이룩하겠다는 안을 상정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형철 상무님의 안경이 하늘을 날기도 했습니다. 진풍경이었습니다.

 

어쨌든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안이 뒤늦게 빛(?)을 보아 현재는 그러한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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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 98년 7월의 조직 개편에서 그 때의 사업그룹인 사업본부로 수출이 귀속이 되었다. 전력사업본부와 엘리베이터 사업본부, 자동화사업, 공구사업 등으로 나누어지면서 해외사업은 완전히 사업본부와 사업부 쪽으로 분산되었다.

비로소 산전에서 에이플랜 팀의 당초 철학이 받아들여졌다. 그 난리를 쳤던 이슈가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셈이다. 그 동안 사업본부의 실력과 자질과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인가. 

 

 

LG상사에서 산전으로 장병우 전무가 오면서 해외사업을 맡았다. 상사에서 산전으로 오는 명분이 산전에는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해 부사장으로 승진시킨다는 꼬리표를 달아서 산전으로 보내왔다.

기존의 유창섭 상무 위에 전무가 앉게 되었다. 나이도 유 상무가 두 살이 더 많았다. 우선 이런 점에서 이상한 그림이었다.

 

기존 조직원들의 심기를 또 한번 자극했다. 그룹 인사로 오는 사람은 보장까지 받고 오는데 기존 있던 사람들은 뭔가? 모멸감을 주었다.

 

 

장 전무를 겨냥한 불편한 조직정서에다 금성사에서 온 이종수 사장이 기름을 부었다.

 

“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 불평 만 하면 어떡해. 산전은 이게 탈이야. ”

 

경영회의든 공식보고 석상에서 장 전무를 두둔하였다. 이 사장 나름대로 신참자인 장 전무를 격려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러나 사려 깊지 못한 한 마디로 조직 정서는 혼돈에 빠졌다. 

 

‘ 있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냐, 데려오느냐. ’

‘ 아니면 부족하더라도 시켜서 단련을 시켜나갈 것이냐. ’

 

 

98년 7월의 조직 개편에서 사업본부로 수출이 귀속된 것은 장 부사장이 엘리베이터 사업본부장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한사람의 거취와 움직임에 따라 조직의 운영이 오락가락한 사례였다. (53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