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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51화) < 에이플랜 3대 대첩 >의 서막

51.

 

 

조직구조의 기본골격은 94년 4월부터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내가 가장 힘들었던 테마 세 가지였다.

 

‘ 해외사업 부문의 조직 ’,  ‘ 연구개발 부문의 조직 ’을 어떻게 편제하고 운영할 것인가 였다. 그리고 ‘ 기획기능과 심사기능 ’ 조직이었다.

 

 

세 가지 테마는 가히 격전이었다. 결정 과정을 나는 < 에이플랜 3대 대첩 >이라 불렀다. 상대는 해외사업부장 이병무 상무, 연구소장 이종명 상무였다. 그리고 박충헌 전무다.

 

 

 

 

 

 

 

<주요 사업의 개별 활성화 프로젝트>와 병행하여 에이플랜에서 <산전CU 통합 3사 통합조직의 기본구조>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냈다.

기술, 생산, 판매, A/S의 일관성을 갖는 즉, 공통의 고객, 기술을 갖고 있는 개별사업의 가능성을 철저히 추구하는 ’ 사업 Unit 조직 ‘ 체계다.

 

사업부장이라는 명칭이 없어지고 Unit장이 기능 조직을 관장하면서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방향으로 조직운영의 골격이 다듬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해외 사업부문과 연구 개발부문은 둘 다 각 사업 그룹이나 유니트에 귀속되어야 한다. 제판일체(製販一體)의 유니트 책임 단위의 조직을 운영한다는 쪽으로 에이플랜 추진 의결 기구인 스티어링 컴미티에서 경영회의 멤버들이 이미 컨센서스를 이루었다.

 

해외사업 조직과 연구개발 조직에 관한 과제를 두고 사업부장들과 해외사업부장 그리고 연구소장의 견해가 달랐다. 사업부장으로서는 권한의 강화였으나 해외 사업과 연구소는 조직의 분산과 축소를 의미했다. 사업부와 지원부서 간에 집단적 이기주의 충돌 조짐이었다.

 

해외 사업과 연구소 부문 별로 각각 많은 워크샵과 토론회를 가졌다. 한편, 나는 에이플랜 팀장으로서 해외사업부장 이병무 상무, 연구소장 이종명 상무와 개별적인 설득과 논의도 계속했다.

 

두 상무도 수시로 나에게 찾아왔다. 그들의 주장을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장가처럼 되풀이했다. 에이플랜 팀의 구상에 사업부는 환영했으나 특히 해외사업부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한 달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았다. (5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