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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52화) "제 발로 걸을 때까지 두고 보자구..."

52.

 

 

'해외사업 부문의 조직' 문제는 워크샵을 통해 토론이 진행이 되었다. 에이플랜 팀이 참여한 가운데 해외사업부와 각 사업부의 핵심 인원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평행선을 긋는 주장이 때로는 지루한 소모전의 양상을 보였다.

 

 

 

 

 

 

해외;

오히려 해외사업부로 해외 업무가 통합되어야 한다. 해외사업 비전의 일관성, 해외투자, 지사설립의 의사결정, 지역전문가 육성, 해외시장 정보의 공유, 신규시장의 개척, 패키지 딜의 추진, 법인장의 운영과 자원 활용, 수출절차업무의 전문화에서 유리하다.

 

사업부;

해외지사, 법인설치, 지역 전문가 육성, 해외정보 채널 등의 인프라에 해당되는 건 기존대로 해외에서 하는 걸 동의한다. 신기술, 신제품의 세일, 고객 니즈에 만족, 클레임에 대응, A/S, 신기술의 도입에서 사업부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외;

금성계전의 전기기기사업부의 경우, 해외 사업을 통합운영해서 기술과 마케팅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는 개별 제품과의 연계를 무시한 지역 별 조직운영의 단점이 드러난 사례이다.

 

사업부;

미쓰비시는 공장에 해외영업을 두고 있다. 후지덴키도 3 년 전에 조직을 변경하여 미쓰비시와 마찬가지로 공장에 두었다. 야스가와, 보시, B&D 모두 제품사업부 소속이다. 산전CU와 유사한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이렇다.

 

해외;

현 단계에서는 선진업체와의 경쟁에서 개별제품의 경쟁 보다 브랜드나 정책적인 면에서 산전 전체의 역량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해외 업무가 사업Unit에 귀속되면 해외 투자 등 Unit 개별사업을 넘어선 전사차원에서의 현지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사내의 의견 조정이 번잡해질게 뻔하다.

 

사업부;

현실적 여건은 이해한다. 그러나 근본적이 문제를 생각하자. 기술, 품질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사업Unit에 귀속해야 근본적인 수출 경쟁력이 생긴다.

 

해외;

이제 겨우 산전CU 전체적으로 해외사업의 기반이 마련이 되었다. 힘을 발휘할 때다. 각 사업 Unit 별로 분리할 경우 해외사업의 위축이 염려된다.

 

사업부;

향후 세계 레벨에서 경쟁을 고려할 때 사업 Unit이 비즈니스 시스템상의 모든 면에서 책임을 지고 해외시장을 공략하고 경쟁사와 대결을 해야 한다.

 

해외;

수출의 대부분이 적자다. 사업 Unit에 귀속이 되면 단기적인 손익개념이 강한 사업 Unit의 특성으로 보아 장기적인 수출이 맥을 못출 것이다.

 

사업부;

사업 Unit에 귀속이 되면 위축이 된다는 말은 이해가 안 된다. 오히려 공장과 긴밀하고 세심하게 케어가 되어 더 발전된다. 사업 유닛장의 가장 큰 임무가 해당사업의 손익을 책임지는 것이라면 수출 비중이 큰 사업 유닛장의 경우 수출을 남의 손에 맡겨두고 어떻게 사업의 총괄적인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해외;

해외사업부에 손익개념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적용하면 사업 Unit과 손익에 관한 마찰도 줄어져 손익문제도 해결 된다. 사업 Unit장은 현재와 같은 체제아래서도 제품의 구색, 품질, 가격경쟁력 강화를 통해 수출활성화를 측면 지원하는데 중점을 두기 바란다.

 

사업부;

해외사업전략과 마켓팅 지원, 지역별 전략 지원 등은 CU차원에서 CU장 직속으로 해외사업 지원부문을 두면 취약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에이플랜 팀이나 나는 앞서지 않았다. 사업부의 주장이 바로 에이플랜 팀의 논리였음으로 한발을 빼고 있었다. 해외사업부문과 사업부들 간에 서서히 충분히 발효되어 공감대가 형성되기를 기다렸다.

 

에이플랜;

5월초부터 두 달이나 충분히 논의했다. 정리해서 6월 28일의 톱 매니지먼트 워크샵에 상정하겠다. 이번엔 결론을 내리도록 하겠다.

 

 

 

 

해외사업부장인 이병무 상무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 김 이사도 아다시피 이제 겨우 해외사업의 기반이 마련되고 있어요. 이런 때에 각 사업 Unit으로 갈라붙이면 해외사업은 위축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가요.

엘리베이터를 제외한 15개의 사업 Unit의 93년 총 수출액이 8천5백만 불 밖에 안돼요. 이 정도 가지고 각 사업그룹별로 분리하기에는 너무 적어요.”

 

“ 장기적으로 사업 Unit에 귀속해야 근본적인 수출 경쟁력이 생깁니다. 제판일치에 해외영업도 포함되어야지요. ”

 

“ 사업부에서 큰 소리 치지만 해내지 못합니다. 전문 인력 육성 면에서도 한곳에서 모아 집중 관리하는 편이 효과적일 텐데요. 사업부로 귀속이 되어 사업부로 가면 기존의 텃세로 발붙이기가 어려울 겁니다. 따돌림을 당해 회사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

 

이 상무는 하소연이 간절했다. 긴장하면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다.

 

“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회사에서 자기 직무에 소신이 없으면 곤란하지요. 조직의 운영 철학과 설계 사상을 이 상무님이 주도적으로 교육시켜야하지 않겠습니까? ”

 

” 전문가라는 프라이드가 대단합니다. 더우기 CU장의 해외사업에 대한 관심도가 프라이드를 키워주고 있습니다. “

 

비빌 언덕이 있었다. 이 상무는 끝내 이희종 CU장의 후광을 은연중에 부각시켰다. 

 

“ 내가 보기엔 해외 사업부가 너무 큰 집을 지으려고 그럽니다. 의욕이야 좋지요. 그러나 지나친 우월감은 곤란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실무자들의 주장에 이 상무님이 떠밀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산전 CU 3사 통합을 계기로 오히려 해외사업의 패턴을 새롭게 정립해보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

 

주장과 공방은 되풀이되었다. 해외사업부가 제품별로 분산되어 사업 Unit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 안 되는 감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 상무는 결국 영역 지키기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것을 깨고 타파하자는 것이 3사통합의 조직운영 철학이었다.

 

“ 이 상무 말씀 다 옳습니다. 지금 당장 국내 마켓에 오리엔티드된 사업 Unit장들이 염려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린 어느 길을 가야 하는지 냉철히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큰 체구와는 다르게 말씨는 부드러웠으나 이병무 상무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차 한잔 달라며 24층의 내자리로 수시로 나를 찾아와서는 무언으로 저항을 했다. 에이플랜 팀의 24층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공간이었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내 옆에 앉아있는 모습은 농성하는 거와 다름없었다.

 

때로는 해외사업의 기획부장인 임세종이 찾아왔다. 직속 부하를 대신 보낸 것이다. 이 친구는 내가 심사부장일 때 1982년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이제 부장이 되었다.

이 상무의 떠밀려 해외 부문에 관한 한 총대를 매는 인상을 주었다. 에이플랜의 논리는 귀를 막고 초지일관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데 나는 진력이 났다.

 

“ 밥그릇 싸움하는 거야? 해외사업에 제 밥그릇 만 찾으면 회사를 망쳐! “

 

어느 날 나는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나의 안경이 날아갔다. 임 부장이 피하는 바람에 맞지는 않았으나 안경알 하나가 틔어 바깥의 비서 김희장의 책상 아래로 어딘가에 틀어박혔다.

며칠 후 내 책상 위에 안경이 올라 있었다. 행방불명이 된 한 쪽 안경알을 찾아 망가진 안경테에 얌전히 다시 끼워져 있었다.

 

 

 

 

 

 

나는 해외사업 조직에 대한 반응들을 수시로 이희종 CU장에게 전달했다. 추이에 태연한 듯 하면서도 그 때마다 관심을 보였다.

 

“ 시작했으니까, 이럴 때 충분히 토의 해봐! “

 

이미 에이플랜 팀의 논리대로 가는 길은 정해져 있으므로 공감대 형성에 뜸을 들이라는 주문으로 들렸다.

 

 

 

 

해외사업부문과 사업부 사이에 진전이 없는 교착 상태가 계속되었다. 어느 날 사업부에서 중간 안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 전사 직속도 아니고 사업 Unit도 아닌 사업Gr별로 두면 어떤가. ”

 

그러자 해외사업부에서 구체안을 제시했다.

 

“ 완전 통합이 원칙이나 물량이 적은 사업, OEM 위주의 사업, 검사장치 등 전문기술을 요하는 사업은 예외로 사업 Unit에서 하면 어떤가. ”

 

해외사업부문의 제안에 사업부에서 다시 한발 더 나아간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 엘리베이터 사업은 산전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수출의 기반 사업이고 과도기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자칫 수출전략에 공백이 생기거나 혼선이 와서는 안 된다.

엘리베이터는 양보하겠다. 저압기기, 배전설비, 전력변환장치, 검사장치, 공구 만 Unit 직속으로 하자. ”

 

사업부 쪽에서 슬며시 백기를 들고 나왔다. 강공 일변도에서 갈수록 한발 씩 물러서는 감을 주었다. 

 

 

사업부에서 타협안이 나온 배경은 다른데 있었다. 말 못할 속앓이 끝에 나온 고육책이었다. 수출을 내 놓아라 큰 소리를 치면서 가져왔다가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감당해야하는 뒷수습이 난관이었다.

사업부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리스크를 알아차렸다. 그것을 극복할 만한 자신과 실력이 없었다. 그리고 배짱도 없었다. 서서히 꼬리를 내리는 명예로운 후퇴를 선택했다. 현실적인 수읽기에 이해득실을 계산한 결과였다.

 

 

이젠 내가 앞장서서 반대하고 나섰다. CU 통합에 따른 신체제 출범에 맞춘 '조직 설계 사상'에 정면 배치되기 때문이다.

 

 

 

 

“ 김 이사, 해외 조직 말이야. 그대로 두는 게 어때? ”

 

어느 날 점심시간이었다. 서관 지하에 있는 일식당 화촌에 몇몇 임원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이희종 CU장이 지나가는 말처럼 나에게 던졌다.

CU장의 표정은 신중하면서 조심스러웠다. 나는 무얼 의미하는지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병무 상무의 로비를 생각했다. 그동안 해외 사업과 사업부 사이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과 대립은 소문이 나 있었다.

이 상무가 CU장에게 시간 나는 대로 찾아가고 심지어는 얼마 전에 부임한 이종수 부사장에게까지 찾아가 호소를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점심이 끝나자마자 곧장 나는 25층 이희종 CU장을 찾아갔다.

 

 

“ 해외의 어리광이 지나칩니다. 받아주면 안 됩니다. ”

 

“ 제 발로 걸을 때까지 조금 더 두고 보지 그래... 2, 3 년 정도면 안 될 가... ”

 

CU장은 혼자 말을 하듯 음성이 낮았다. 조용한 설득은 하위자인 나에 대한 배려였다. 고심한 흔적을 솔직하게 내보였다.

 

“ ................ ”

 

‘ 사업부 통합도 위험한 작업인데 해외 조직까지 흔들어 놓으면 곤란하지 않을 가? ’

 

이희종 CU장이 생각하는 리스크였다. 지금 당장에 해외사업을 사업 Unit에 분산하는 데서 오는 부작용을 우려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이병무 상무의 주장과 같았다.

 

 

나는 CU장에게 더 따지지 않았다.  

 

해외사업부는 그대로 존속이었다. 두 달의 논란 끝에 공구와 검사장치 만 사업 Unit에 귀속시키고 나머지는 지금대로 전사조직으로 운영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CU장의 결심이었다. 1988년 산전 CU  CU장으로 부임하면서 6년동안 해외사업을 앞장서서 일군 CU장의 애착이었다. (52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