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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48화) "사단이 나야 정신을 차린단 말야! ”

48.

 

 

매킨지라는 컨설팅 회사에서 컨설턴트는 프로 직업인으로서 신중함이 그들에게 있었다. 후지모토는 깍듯한 행동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하이’ 하는 대답이 절도가 있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다. 냉철히 생각했다. 아니다 싶은 의견은 두루뭉실이 아닌 정공법을 택했다. 이젠 기회다 싶을 때엔 자신의 견해와 의견을 분명히 야무지게 전달했다. 핵심을 찾아내 정곡을 찔렀다.

 

젊은 나이인 데도 미국에서 비즈니스 스쿨을 나와 다국적 기업 매킨지에서 그렇게 훈련되고 단련이 되었다.

 

 

후지모토는 체질적으로 술에 약했다. 그러나 건네는 술잔을 마다 않았다. 분위기상 어울려야 할 때는 스스럼없이 끝까지 어울렸다. 다음 날 일정에 소홀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는 항상 기우에 그쳤다. 지각 출근은 없었다. 직업의식이었다. 

 

회사가 정해준 숙소인 호텔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면 김포와 하네다 공항을 통해 가정이 있는 일본을 오갔다. 불규칙한 직장 생활을 이겨 나가는 건강도 타고났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글씨는 깨알 같고 생각은 치밀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감에서 우러나오는 설득력을 가졌다. 토론의 논점에서 벗어나면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가차 없이 주의를 환기시키곤 했다. 이외로 그는 다혈질이었다. 

 

직업적인 컨설턴트 이전에 후지모토라는 한 인간이 내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었다. 가치 없는 일을 철저히 배격하는 합리성이 돋보였다. 본질을 추구하려는 열정이었다.

 

그 점이 좋았다. 일본 사람이라는 선입견으로 기분이 나빠 할 이유가 없었다. 평소 후지모토가 보여주는 행동 모델에서 나는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치밀한 후지모토도 이런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이다. 서브 리더인 박진홍이 읽어보라며 메모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사무실 땅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는 매킨지 전용 용지 하나를 습득했던 것이다. 빠른 필체로 휘갈겨쓴 낙서였다.

 

지난 에이플랜 스티어링 커미티인 경영회의 보고회에서 경영회의 참석 임원들이 코멘트 한 사항들을 자기 혼자 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속기한 것이었다. 이런 메모를 주위에 남긴다는 건 후지모토의 실수였다.

 

그러나 낙서에 비쳐진 우리 실상은 바로 우리 산전의 거울이었다. 짤막하게 평가하는 단어 하나하나에서 우리 탑 매니지먼트의 수준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 어째서 저 정도 이야기 밖에 못할 가. ’

 

‘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없어. ’

 

‘ 바보 같은 사람. 내용도 모르고... ’

 

심지어는 이런 글이 눈에 띄었다.

 

‘ 저러고도 사장이야. ’

 

여기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왔다. 나는 심정적으로 동감했다. 평소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후지모토가 일정부분 옮겨 쓴 착각마저 들었다.

 

 

이때까지 만 해도 매킨지는 의연했다. 감정의 기복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삭이며 기다리는 마음으로 초연했다.

 

그러나 기전 김회수 사장의 ‘ 나한테 오지마! 사건 '은 그 자리에 나와 함께 동석했던 후지모토에게도 충격이었다. 마음고생을 안겨준 단초가 되었다. 에이플랜 팀 리더인 나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후, 그룹 회장실이 있는 트윈타워 동관에서 들려오는 낌새랄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장실 남용 상무 산하의  V-추진본부와 매킨지의 아카바가 회장 비서실 한 켠에 상주했다. 

1990년부터 금성사와 호남정유가 맥킨지와 계약을 맺어 OVA(Overhead Value Analysis)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점진적으로 그룹 전체로 확산하면서 5년 째 붙박이로 상주하고 있었다. 

 

 

 

 

 

 

 

 

“ 산전의 미래는 에이플랜을 통해 구축하자고 출발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희종 CU장님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통합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데 문제입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

 

어제 저녁 중간보고 뒤풀이에서 후지모토의 어조는 매서웠다. 컨설턴트로서 클라이언트에 대한 통상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컨설턴트로서는 금기를 깨고 있었다.

 

“ 세계 초우량기업으로 가자고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 개별 사업의 활성화 >를 통해서 만이 가능합니다... ”

 

하소연을 하듯 계속되는 그의 말을 경청했다. 창피스러웠다. 우리의 현실이었다. 아프지만 가시밭길을 가야했다.

 

다음 날 아침 후지모토는 출근하자마자 나를 찾아와 어제의 행동을 사과했다. 후지모토는 진정으로 배전반 사업을 걱정했다. 

컨설턴트가 눈물을 흘리다니. 박진홍의 한마디 표현대로 ‘ LG산전에 대한 충정 ’이었다. 산전이 그를 울렸다. 

 

 

 

곧장 나는 구정길 시스템 본부장을 찾아갔다. 이른 시간인데 구정길 시스템 본부장 방에는 김용철 배전반 사업부장이 와서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제 저녁 ‘후지모토의 눈물 사건 ’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밤사이에 누군가를 통해 소상하게 전달되었다.

 

 

“ 김 이사, 미안해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정말 미안 해. ”

 

구 전무는 나를 보자마자 거두절미 사과부터 했다.

 

“ 이런 일이 우째 일어납니까? 정말 창피합니다. ”

 

나도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 내가 철저히 과정을 파악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요. 내 잘못이요. ”

 

“ ................ ”

 

“ 일이 번지지 않도록 해주소. ”

 

구 전무는 내 의자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희종 CU장의 귀에라도 들어가는 것을 우려한 말이었다.

 

“ ......... 마무리나 잘 해 주소. ”

 

" 다음 최종 보고는 사업부장이 하세요. "

 

" ................ "

 

 

어제 중간 보고는 에이플랜 팀의 < 개별 사업의 활성화 > 프로젝트 리더였던 윤용호가 했었다. 그러나 연말로 예정된 2차 완료 보고는 사업부장이 직접 발표하도록 즉석 제안을 했다. 사업에 대한 당사자 의식과 의무감의 강화를 노린 것이다. 

 

 

 

이후 배전반 사업부에 자성의 바람이 일어났다. 중간보고 후유증으로 발생한 ‘후지모토의 눈물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군기가 바짝 들었다. 프로젝트의 자초지종을 본부장인 구 전무가 앞장서서 독려하기 시작했다. 사업부장인 김용철 이사도 급 피치를 올린다는 소문이 내 귀에 들려왔다.

 

“ 무슨 사단이 나야 정신을 차린단 말이야. ”

 

나는 혼자 웃었다. 두고두고 배전반 사업부는 뼈아픈 농담을 새겨들어야 했다.

 

 

 

혼연일체가 된 모습은 일찍이 없었던 광경이었다. 본사의 영업과 생산 현장인 오산공장에서 배전반 사업부의 응집력을 보여주었다. 

 

 

 

< 배전반 사업의 사업활성화 프로젝트 > 최종 보고는 12월27일이었다. 김용철 사업부장이 보고자로 직접 나섰다. 제1차 파일럿 프로젝트 답게 마무리되었다. 

 

“ 우리의 배전반 사업은 주력 중에서 원조 주력입니다. 그 동안 노력을 해봤어요. 몰라서 안 되는 사업이 아닙니다. 이번 프로젝트처럼 다 같이 합심하니까 될 것 같지 않아요. 분명히 이번에는 될 겁니다. ”

 

최종 보고회 말미에 격려하는 총평에서 CU장이 말했다. 

 

 

원조주력. 찌들기만 했던 배전반이 주력사업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했다. < 개별 사업 활성화 >의 첫 파일럿 프로젝트를 해냈다는 열기와 긍지가 가세했다.

 

에이플랜 팀에게는 일 년여 통합작업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결실이었다. 안개속의 미로를 벗어나 탄탄대로를 진입하는 듯 안도감이 밀려왔다. (48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