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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26화) < 에이플랜 프로젝트 킥업 >

26

 

 

오늘이 출범하는 날이다.

 

8월 30일(월) 오후 3시. < 에이플랜 프로젝트 킥업 >. 공식 용어로는 <사업활성화 프로젝트를 위한 스티어링 커미티>다.

 

6십 여명이 들어와 25층 임원 회의실은 초만원이었다. 양쪽 뒤편 공간은 보조 의자까지 동원되었다. 경영회의 구성원 11명과 전 임원, 공장장 등 참석 대상자는 이미 착석이 완료되었다.

 

에이플랜 팀에서 산전 멤버는 14명, 매킨지는 오늘 킥업 미팅을 위해 매킨지 일본 본사에서 건너온 지구사 이사와 트윈빌딩 동관에 상주하는 아카바를 포함하여 5명, 그룹 회장실의 V-추진본부 남용 상무 등 4명이었다.

 

‘ 회장실 ’, ‘ 3사 통합 ’, ‘ 매킨지 ’ 등 생경한 단어가 주는 메시지에 회의실은 긴장감이 흘렀다. 킥업을 알리는 플래카드나 배너는 전혀 붙이지 않았다. 3사 통합 작업을 시작하는 발대식장이다.

 

발대식이라면 뭔가 달라도 달라 요란할 줄 알았는데 행사장 어디에도 아무런 표시나 장식 하나 없어 예상을 뛰어넘는 색다른 분위기가 트윈타워의 바깥 삼복 무더위완 달리 무겁게 다가와 주눅 들기에 충분했다.

 

경영회의 멤버들조차 고추 앉은 자세가 왠지 서먹했다. 회의에 앞서 여느 때처럼 앞 뒤 옆 사람 끼리끼리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도 없었다.

후지모토와 아라마키가 앉은 자리에서 경영회의 멤버들과 멀리서 서로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며칠 전 < 프리 인터뷰 > 때 경영회의 멤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기에 구면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에이플랜 프로젝트 리더인 나는 단상 정면에 가장 가까운 경영회의 멤버들 뒤쪽 맨 앞에 앉았다. 내 오른 쪽으로 남용 상무, 지구사 이사 등 매킨지 멤버들이 자리를 잡았다. 에이플랜 팀은 나의 뒤편과 건너편으로 나뉘어 앉았다.

 

 

 

 

 

 

이희종 CU장이 입장했다. 내가 일어서서 대형 OHP 스크린이 걸린  정면으로 걸어 나갔다. 왼손에는 킥업 시나리오가 들려져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브리핑 브리핑 스틱을 잡았다. 어둑어둑한 실내를 한번 둘러보았다. 마주치는 시선에 열기가 실려 왔다.

 

“ 지금부터 산전CU < 사업활성화 플랜 킥업 미팅 >을 시작하겠습니다. ”

 

공식적인 일성이었다.

 

“ 오늘의 킥업 미팅은 사업활성화 플랜의 추진에 앞서 CU의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아울러 추진요원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하는데 있습니다.

먼저 산전CU 팀 멤버에 대한 사령장 수여가 있겠습니다. 사업활성화 추진팀 12명은 앞으로 나오기 바랍니다. "

 

 

 

이희종 CU장이 일어섰다.

 

“ 내가 앞으로 나갈까? 내가 앞으로 나가는 것이 낫겠지? ”

 

회의실 뒤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나 사잇길을 헤치고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 박진홍. 사령장. 사령 제 93-006호. 산전 자동화사업부 기획부 부장 박진홍. 명 사업활성화 팀. 1993년 8월 30일. 금성산전 주식회사 사장 이희종 ”

 

나는 들고 있던 시나리오를 보며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강명철이 사령장을 순서대로 챙겨서 이희종 CU장에게 전달했다.

 

“ 산전 창원공장 경리부 부장 문동일. 以下 同文 ............. ”

 

한창진, 박동원, 김무진, 이희양, 강명철, 최공범, 김연식, 윤용호, 임봉구, 강용만 순으로 한사람 한사람 사령장이 수여되었다. 수여할 때마다 박수소리가 뒤따랐다.

 

이어, 매킨지의 후지모토 켄지, 아라마키 겐타로, 소네 히로시와 회장실 V-추진본부의 파견요원인 하희조 부장, 박희석 과장, 전병렬 과장 순으로 산전 외 프로젝트 멤버들을 소개를 했다.

 

 

다음 순서는 < 사업활성화 플랜 >의 추진 개요 설명이었다. OHP를 비추었다.

 

 

매킨지의 제안서를 근간으로 하여 만든 < 에이플랜 프로젝트 >의 개요의 첫 장에는 < 산전CU 사업활성화를 위하여 >라고 제목이 붙여졌다.

모두 일곱 장의 보고 내용에서 '에이플랜'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희종 CU장의 격려사는 길지 않았다.

 

“ 지난 7월 중순에 우리 그룹의 사업합리화 발표가 있었습니다. 산전은 CU 3사의  합병을 결정했습니다. 이제부터 통합에 따른 신체제 확립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시점입니다.

 

추진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매킨지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회장실의 지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약점은 총론에는 동의하고 각론에 가면 합의가 안 됩니다. 사람의 이동과 부서의 통폐합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성인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해서 공포감과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산전, 계전, 기전 3사의 통합이 단순 물리적인 합침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통합 시너지 창출이 중요합니다. 통합에 따른 지레 짐작으로 갈등이나 혼란을 야기시키는 일이 없도록 사업부장, 공장장들이 각별히 유념해주기 바랍니다.

 

에이플랜 팀에게 한 번 더 강조를 합니다. 에이플랜의 주체는 우리 산전입니다. 에이플랜 여러분들은 문제해결 능력을 신장하는 데 각별히 노력을 해주기 바랍니다.

 

여기 계시는 경영회의 구성원 여러분들은 에이플랜 팀에 전폭적인 지원을 바랍니다. 특히 앞으로 많은 면담, 조사, 현황 파악이 있습니다. 토의와 토론이 있을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진실된 의견개진을 부탁합니다. “

 

 

 

이어 지구사 매킨지 재팬의 이사와 회장실 V-추진본부의 남용 상무의 인사말을 들었다.

 

 

 

 

 

 

< 사업활성화 플랜 킥업 미팅 >은 2십 분 만에 끝났다. 경영회의 멤버들은 퇴장하는 에이플랜 팀에게 격려의 악수를 했다. CU장에 이어 사장 세분, 부사장, 전무들이 연이어 청하는 악수 세례에 상기되었다.

 

“ 고생하소. ”

 

“ 잘 될 거요. ”

 

“ 김 이사 뿐이야. ”

 

“ 열심히 해요. ”

 

나에게 뿌리는 축하 말은 짤막했다.

 

 

불과 2주일 만에 에이플랜 추진의 시동을 걸었다. 행사가 끝나자 한 치의 빈틈이 없이 달려와 첫 이벤트로 킥 업을 해냈다는 작은 안도감 스쳤다. 

 

 

“ 오늘 참 잘 되었습니다. 이희종 CU장님이 잘 리더를 해주었습니다. ”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에게 다가온 아카바가 특유의 엄지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연신 싱글벙글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 에이플랜 팀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소신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최곱니다. 오늘 첫 출발은 아주 잘 되었습니다. ”

 

입이 다시 함박처럼 벌어졌다.

 

 

 

 

 

에이플랜 팀 전원은 25층에서 24층 에이플랜 팀의 회의실로 몰려 내려왔다. 멤버들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킥업의 결과에 대한 실무 미팅이 기다렸다. 보고회든 워크샵이든 어떤 이벤트가 끝나면 실무 미팅은 하나의 프로세스로 자체 평가를 겸해 다음 단계를 스크린하는 중요한 모임이었다.

도출되었던 논점이나 미진했던 부분, 그리고 향후 실행으로 옮겨야 하는 항목을 점검했다. Next Step에 대한 대책회의였다.

 

아카바와 남용 상무까지 참석했다. 사무실 의자까지 들고 들어와 좁은 회의실이 더 비좁았다. 브라인드를 최대한 제껴 햇빛을 차단했으나 삼복 한증막 열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각 자 한잔 씩 들고 들어온 종이 커피 잔이 테이블 위에 가지런한 듯 어지러웠다. 무질서 속에 편안함이 느껴졌다. 서서히 손때가 묻어 가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수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서로 축하합시다. 갈 길은 정해졌습니다. 격려도 받았습니다. 다 같이 노력합시다. 스스로를 위해 앞장서서 노력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카바에게 시선을 돌렸다.

 

“ 산전의 여러분이 못하면 산전은 망한다는 기분으로 임해야 합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달리 돌아가거나 건너 뛸 방도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채린지 정신이 에이플랜의 성패를 가름할 겁니다. ”

 

아카바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 활짝 피었던 미소는 사라지고 심각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거두절미한 표현에 큰 제스처로 분위기를 잡았다.

 

탑의 관심사항을 해결한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부수되는 작은 과제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탑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많이 나옵니다. 타임리 하게 백업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팀장이신 김 이사님이 탑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특히 노력을 하셔야 할 줄 압니다. “

 

이희종 CU장을 비롯한 탑 매니지먼트의 동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나에 대한 당부도 빼지 않았다.

 

 

회장실의 남용 상무가 이어 받았다.

 

“ 제로베이스, 원점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산전은 많은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전의 사업 하나 하나를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어프로치를 해야 할 겁니다. 생각을 바꾸면 행동은 어려운 게 아닙니다.

 

고정관념에 얽매여서 새로운 접근방법을 놓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프렉서블한 마음가짐으로 유연성 있게 대응 해나가 주십시오. 거기에서 비전이 생겨납니다.

 

회장님을 비롯하여 그룹의 어른들께서 산전을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산전이) 조금 부족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번 사업활성화 프로젝트를 통해서 만회하십시오. “

 

남 상무는 남 상무대로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그룹 회장실의 V-추진본부는 각 CU의 혁신활동을 지원하는 창구이다. 매킨지의 아카바는 아예 남 상무 산하에 자리를 잡고 몇 년 째 상주하고 있다.

오늘 여기까지 오는데 남용 상무 역시 그룹 내 의사 결정의 절차상 이희종 CU장을 만나는 등 마음고생이 있었을 터였다.

 

 

Next Step. 곧장 내일부터 멤버십 트레이닝이 시작된다. (26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