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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42화) 먹구름 '네고 플랜( Nego Plan )'

 

42.

 

 

< 네고 플랜( Nego Plan ) >이라고 에이플랜에서 명명되었다. Nego란 Negotiation의 줄임 말이다.

 

산전CU는 미쓰비시( 三菱 ), 히타치( 日立 ), 후지덴끼( 富士電機 ) 등 해외 파트너가 있다. 합작선인 이들의 반응은 3사 통합과 에이플랜의 일정에 중요한 변수였다.

< 프리 인터뷰 >에서 이미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다른 테마는 그룹 또는 산전CU 자체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합작선 처리야 말로 치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에이플랜은 이들 합작선과 관계의 지속여부와 기술선과 관련되는 개별 사업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검토할 단계에 이르렀다. 엘리베이터, PLC, 송배전기기에 대해 우리 산전의 입장에서 이러한 해외 파트너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대응책을 수립하는 일이 초점이었다.

 

< 네고 플랜 >은 에이플랜 팀에서 실제의 교섭에 대비한 도상 훈련이었다. 

 

합작선의 파트너 별로 단계적인 제안 사항을 정리하고 산전의 교섭 체제, 즉 책임자와 담당자를 선정하는 등 산전CU로서 최적의 옵션에 대한 각 파트너의 예상 반응을 고려한 타협안을 도출, 평가하는 절차가 주된 내용이었다.

 

 

 

 

 

 

 

 

< 네고 플랜 >을 수립하는 첫 단계에 이희종 CU장을 비롯하여 백중영, 김회수 사장의 면담 과정이 들어있었다. 면담은 향후 에이플랜의 작업계획을 설명하고 앞으로 네고 시에 명확히 해야 할 요점을 집약하고 공유하자는 데 목적이 있었다.

 

< 네고 플랜 >에서 우리 산전 내부의 의견 조정이 문제였다. 사전 면담을 통해 탑의 명확한 의지와 견해를 확인하고 사전 조율을 해야 하는 일이 < 네고 플랜 >의 중요 프로세스이다. 중복사업의 조정과 함께 에이플랜 팀의 한계를 뛰어넘는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은 < 프리 인터뷰 > 때 이미 절감했다.

 

 

< 네고 플랜 >의 과정은 나와 에이플랜 팀에게 상상을 넘는 시련을 안겨주었다.

 

<엘리베이터>, <PLC>, <송배전기기> 사업은 산전 계전 기전 3사의 과거 역사를 집약했다. 서로 얽히고 설킨 과거를 앞으로 전개될 3사 통합이라는 새로운 역사에 간단히 접목시킬 수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물리적 통합으로 끝낼 성질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각 사 별로 파트너에 따른 살림을 꾸려왔지만 이제부터는 ‘ 두 집 살림 ’을 할 수 없는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타협이 아니라 선택해야 한다는데 어려움의 본질이 있었다. 어디로 기우느냐 에 따라 종업원들은 생사의 기로와 회사의 존폐가 걸린 문제로 보았다. 특히 미쓰비시를 끼고 있는 기전은 이런 측면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김회수 사장은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렸다. 해당 사업의 임원들을 포함하여 실무자들을 동원하는 우회전법을 썼다. 통합작업을 부인하거나 사보타지를 하는 느낌도 주었다. 결국 이희종 CU장을 겨냥한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때마다 이희종 CU장은 반박했다. 때로는 CU장이 묵살하기도 했으나 흐르는 기류는 탁했다. 배석했던 에이플랜 팀이 민망할 정도로 그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이 부분만큼은 이희종 CU장도 평소 감정을 조율해오던 패턴에서 벗어나 신경질적이었다. 에이플랜 프로젝트의 발족 이전의 두 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 차이는 엄청났다. 

 

 

이희종 CU장의 친 히타치의 성향을 지난 해 연례 <회장- CU장 컨센서스 미팅> 때 구자경 그룹회장도 우려를 나타냈다.

 

“ 미쓰비시를 어떻게 할라꼬 그러나? ”

 

그룹 내 각 사에 미쓰비시와 관련되는 사업이 많았다. 산전 때문에 빚어질 수 있는 사태를 우려하는 말이었다.

 

 

김회수 사장은 < 네고 플랜 >관련 <에이플랜 스티어링 커미티> 보고회에 앞서 튜닝 차 찾아간 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희종 CU장의 히타치 쪽 경도를 김 사장은 CU장의 옹고집으로 여겼다. 다분히 구자경 회장의 코멘트도 배경이 되었다. 

 

“ CU장이 너무 앞서 가고 있어. 이제 교섭을 시작해야 되는데 친 히타치 경향이 알려지면 산전이 득될 거 하나 없다니까. 손해야. 작전노출이야. 합병 주총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안유지를 해야 돼. 히타치한테 우리가 약점 보이는 건 굴욕이야. ”

 

 

 

김 사장의 우려는 옳았다. 김 사장의 불만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전 전체의 확고한 기류로 변했다. 엘리베이터에 이어 PLC도 사사건건 개미 쳇바퀴 돌듯 부딪쳤다. 어른들 눈치 보기에 급급해 실무자들의 협의는 그 자리서 맴돌았다.

 

엘리베이터를 두고 산전의 이중칠 전무와 기전의 김용호 전무 사이에 흐르는 냉각 기류도 마찬가지였다. 김 전무는 나를 보고 ‘ 정말, 죽을 지경 ’이라며 난처한 입장을 적나라하게 토로했다. 나로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희종 CU장은 단호했다.

 

“ 미쓰비시가 도면 한 장 줄 것 같애. 그리고 해외 시장에 우리를 밀어줄 것 같애. 어림없어. ”

 

기술의 이전 문제, 해외 시장에서의 산전의 자유도 측면에서 히타치가 미쓰비시보다 훨씬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미쓰비시는 수출이 강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산전이 발을 붙이도록 놔둘 리가 만무하다는 의미였다. 산전이 대련에 엘리베이터 공장을 건설한 것도 해외 시장를 겨냥한 투자였다.

 

이희종 CU장은 금성사 시절부터 히타치를 파트너로 상대해온 경험에서 비롯된 오랜 신뢰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김회수 사장은 미쓰비시가 기술의 수준에서 히타치보다 한 수가 위라는 견해에 집착했다. 바깥으로 영업이냐? 안으로 기술이냐?의 차이로 보였다.

 

 

김 사장의 주장을 종합하면 이랬다.

 

‘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모델 통합이 과연 시너지 있겠느냐.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 ’

‘ 미쓰비시도 우리의 해외 진출을 ‘不可’에서 ‘可’의 가능성이 있다. ‘

‘ 차라리 별도로 엘리베이터 전문의 단독 회사를 만들자. ’

 

김 사장의 이런 기조를 이희종 CU장은 일축했다. CU장과 김 사장은 엘리베이터 사업의 자립도나 제품의 개발 면에서 협조, 해외수출의 자유도 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각각 달랐다.

 

 

전번 회의에서 김 사장한테 CU장이 지시를 했다.

 

“ 김 사장이 주관해서 이중칠 전무와 협의하여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드래프트를 만들어 주시요. ”

 

별도 지시의 의미는 무엇일가? 이후 김 사장이 드래프트를 만들어 CU장한테 제안을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에이플랜 팀은 94년 1월 14일 김회수 기전사장을 시작으로 면담이 시작되었다. '각 기술선의 네고 플랜과 관련 미팅 계획‘의 일환이다.

 

17일 오전에는 이희종 CU장, 백중영 계전사장, 그리고 오후에는 성기설 산전 부사장과의 일정이 잡혔다. 그 다음 각 사업본부장, 관련 사업부장, 그리고 연구소장 차례로 이어진다. 나는 사장 면담에만 참여하기로 했다. 

 

 

 

 

 

 

 

 

 

 

김회수 기전사장의 면담은 매킨지의 후지모토가 나와 함께 트윈 타워 23층 사장실로 들어갔다. 김 사장의 면담은 이번 면담 일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에이플랜 전체 분위기를 가로막고 있는 바위를 제거해야 한다는 긴박감이 눌렀다.

 

공식 회의를 떠나 김 사장의 견해나 대안, 그리고 심중의 이야기를 듣고 확인하고 싶었다. 마주 앉은 후지모토도 분위기에 눌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시종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긴장했다.

 

 

 

면담 결과를 후지모토는 이렇게 리포트 했다. 장문이다. 이 리포트는 트윈타워 동관에 상주하는 아카바와 회장실의 남용 상무에게 팩스로 보내졌다.

평소 회의록을 간결하게 정리를 하는 매킨지가 이날 면담의 내용과 정황을 시시콜콜 아주 소상하게 기록했다. 

 

매킨지는 매킨지대로 회장실에서 파견되어 나온 V-추진본부 팀들은 에이플랜 팀에서 일어나는 사사건건을 때로는 실시간으로 상위자들이 있는 회장실로 각각 보고했다. 보고 채널은 내가 왈가왈부 할 수 없는 그들 만의 관례였다. 산전만의 비밀은 유지되지 않았다. 

 

 

 

“ 전주 금요일인 1월 14일 오후 3시부터 히타치, 후지, 미쓰비시 등 각 해외 파트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인가에 대해 김 사장과 30분 정도의 미팅을 가졌다. 그 결과를 토대로 시급히 해야 할 대응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미팅 분위기는 김 사장의 비서가 무언가 착오를 일으켰는지 김 사장은 처음부터 화가 나 있었다. 조금 진정이 되고 나서야 말문이 트이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밑바탕에는 에이플랜 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깔려있는 듯. 이

런 저런 정황으로 볼 때 우리들이 한 이야기를 어디까지 이해해 주었는지가 불명임. 따라서 팀으로서는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결론은 비치지 않았다.

 

 

김 사장의 발언 요지는 이러함.

 

‘ 전반적으로 볼 때 산전 CU의 사업 전반에 있어 미쓰비시와의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다른 데를 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함. '

 

이러한 생각을 지금까지 Top 미팅에서 김 사장 스스로 발언을 하지 않았음.

 

' CU 내에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이런 것들을 분석하고 검토해서 제안해주는 것이 관리직을 많이 갖고 있는 에이플랜 팀이 해야할 일 임.

 

에이플랜 팀은 자기가 말하는 것을 듣지 않음. 이것은 당초 에이플랜 팀에 계전 출신의 사람이 많아 후지에 Bias가 걸려있기 때문임. ‘

 

‘ PLC, 송배전기기 사업에 있어 미쓰비시와 후지 두 개 회사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미쓰비시 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음. 실무자들을 모아 놓고 토의를 시켜보면 결론이 나는 일인데 어째서 지금까지 후지를 선택하는 Option이 남아있는가. ’

 

‘ 엘리베이터도 다른 사업과 Set로 미쓰비시로 가는 게 좋음. 여타 제품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물량을 올려주면 미쓰비시로서도 수출을 용인해 줄 것이 틀림없음.

독자모델의 개발 문제는 히타치와 산전의 모델 쪽이 유리하다는 건 이해할 수 없음. 독자모델 개발 처음부터 현재의 생산 모델인 산전, 기전의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개발상의 문제는 없음.

 

‘ 종합하면 미쓰비시가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관계를 유지해야함. 이런 이야기를 에이플랜 팀에 몇 번이나 했는데도 어째서 그런 안은 내지 않는가. ’“

 

 

 

 

 

 

 

 

 

사흘 후, 17일 오전 이희종 CU장의 면담에도 나는 후지모토와 둘이 들어갔다. 순서가 김 사장 다음이라는 점이 우연이었지만 그게 잘 되었다.

 

 

후지모토는 이희종 CU장 면담 내용을 이렇게 정리했다. ' Strictly Confidential '이라고 특별히 명기했다. 민감한 사안이라는 의미였다.

 

 

“ 파트너와의 교섭은 아주 내밀히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에이플랜의 어프로치로는 산전 쪽의 정보가 어떤 형태로든, 때로는 잘못 변질되어 누설이 되기 때문에 앞으로는 CU장인 본인이 탑 다운으로 진행시키겠다. 따라서 에이플랜 팀이 터치하지 않았으면 한다.

 

히타치나 미쓰비시도 에이플랜의 진척 상황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잘못 증폭이 된 형태로 전달이 되어 양쪽 모두 아주 신경질적이 되었다. 이대로는 교섭에 지장을 초래한다.

 

앞으로는 누구가 누구와 무엇을 교섭할 것인지 일일이 직접 지명해서 하게 하겠다. 공개하지 않겠다. 2, 3월 말경에는 교섭을 한 결론이 명확해 질 것이고 그때 결론을 전하겠다. 지금까지 관계를 정리한다는 방침은 극비이기 때문에 취급에 주의를 바란다.

 

 

나는 엘리베이터는 히타치로 결정하고 있다. 다만 가능하다면 T/A가 아니고 P/A 방식으로 해야 한다. T/A로는 의타심이 생긴다.

PLC 등 그 밖의 사업에 대해서는 후지와 미쓰비시를 가능한 한 남기는 쪽이다. 그러나 후지, 미쓰비시 쌍방 간에 상충되는 문제가 있고 양쪽의 양립을 거부하는 경우의 선택은 교섭 중에 양쪽에서 제시하는 조건을 보지 않고는 결정을 할 수가 없다.

 

에이플랜 김 이사가 김회수 사장의 생각을 이희종 CU장에게 전했다. 김 이사는 '두 분이, 경우에 따라서는 백중영 사장을 포함하여 세 분이 허심탄회하게 의견 교환을 하실 기회를 만드시기'를 권했다. CU장은 김 이사의 권유에 대해 직접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 김 사장은 생각이 편협하여 스스로 어려움에 직면했다. 주위에서 이야기해주어도 좀체로 결단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로서 2, 3월에는 납득하는 필요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히타치와의 교섭의 결론과 함께 자신의 결단을 보여주고 명쾌하게 하겠다.

 

또한 중국 대련에 김 사장과 함께 가서 기전의 국내 생산규모보다 훨씬 더 큰 산전 대련공장의 현지 생산체제를 보여주겠다. 국내의 작은 문제에 얽매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런 체득의 기회를 빠른 시일 내에 내가 만들어 주도록 하겠다.

 

 

 

 

 

 

백중영 계전 사장의 면담은 나와 후지모토 외에 박동원이 함께 갔다. 백 사장은 산전CU의 금성계전으로 온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시점이다. 백 사장의 코멘트는 본 주제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박동원이 면담 내용의 정리했다.

 

 

“ 산전CU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당면한 통합작업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하고 또 매킨지의 도움이 필요한 분야는 21세기를 대비하는 CU 비전의 확립이다.

현재와 같은 백화점 식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와 같은 현재의 핵심사업이 21세기에도 산전을 대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21세기의 산전 비전이 명확하면 그에 따라 현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리하고 나아가서는 적합한 신규사업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판기 사업이 산전의 도메인에 적합한가. 자동화, 물류사업은 포텐셜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룹차원에서 산전에 적합하지 않는 사업은 타사로 보내고 타사 사업 중에서 산전의 영역에 속하는 사업은 가져오는 재조정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금성정밀의 계측기 사업은 산전의 도메인에 가깝지 않은가.

 

기술선의 선택이나 교섭 작업은 부수적인 이슈이므로 팀 작업의 초점을 21세기의 비전 확립에 중점을 두기 바란다. “

 

 

< 네고 플랜 >면담 일정에서 나타난 사장들의 시각과 현실 감각이 대조적이었다. 이희종 CU장과 김회수 사장간의 견해차는 그렇다 하더라도 백중영 사장과 김회수 사장이 3사 통합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깊이는 달랐다. (42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