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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43화-1) "차기 대권 주자"

 

43-1.

 

 

백중영 사장이 94년 초에 금성계전 사장으로 산전CU에 컴백했다. 원대 복귀하듯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 '경영능력 뛰어나 차기 대권주자로 중용'

금성계전 사령탑 백중영 사장의 재기용 배경

 

최근 단행된 럭키금성그룹의 정기인사에서 백중영 금성통신 사장이 금성계전 사령탑으로 재 등용돼 금성산전 CU내는 물론 산전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정부의 업종 전문화정책과 관련, 산전CU 내 3사의 조기합병 방침이 천명된 시점에서 이뤄진 기용이어서 관심을 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백사장의 재기용에 대해 ‘ 마지막 배려 ’ 또는 ‘ 그룹의 중용 ’ 이라는 성급한 분석을 하고 있기도 하다. .....

 

미래예측 감각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장기인 백 사장이 이번 복귀를 통해 난마처럼 얽힌 산전 CU의 사업분야를 조정하고 경쟁사에 비해 위축되어 있다는 소리를 듣는 자동화분야를 어떻게 최고의 위치로 끌어올릴지 관심거리다. ..... “

 

<전자신문>의 기사였다.

 

 

 

 

 

‘그룹의 重用’은 산전CU 통합 이후의 경영구도를 말했다. 즉 < 포스트 이희종 >과의 어떤 연관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었다. 산전으로서 ‘ 예사로운 일 ’이 아니라는 데 기자는 초점을 맞추었다.

‘ 마지막 배려 ’보다는 ‘ 중용 ’에 비중을 두었다. 백 사장이 산전 CU장의 후계자가 틀림없다는 근거로 중용에 방점을 찍었다.

 

첫째, 백 사장은 금성계전에서 금성통신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인 90년도까지 산전CU의 대권주자로 이미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이다.

 

둘째, 후배이자 후임자이던 성기설 사장 자리에 다시 돌아온 자체가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그 배경에는 필시 어떤 의미가 있다.

 

셋째는 백 사장이 김회수 사장보다는 산전에서 선두주자로서 선배이자 산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넷째, 이희종 사장이 87년부터 지금까지 7 년이나 산전 부문의 장으로 재직하여 차기주자가 떠오를 시점이 되었다. 따라서 그룹에서도 ‘ 이희종 사장이 산전CU의 통합을 완성한다면 백 사장이 통합이후를 지휘하는 구도 ’가 아니겠는가 하는 해석이었다.

 

다시 말해 이희종 CU장이 산전, 계전, 기전 3사 통합의 악역을 맡아 처리하고 백중영 사장에게 산전CU의 대권을 물려 준다... 하는 그런 추측이었다.

 

 

그동안 산전CU에서는 리더십의 질서가 알게 모르게 구축되어왔다. 김회수 사장이 이희종 CU장 이후를 끌고 갈 산전 차세대 주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지금까지 단연 김 사장은 라이벌이 없는 단독 후보였다. 참새들이 방앗간 사정을 짚어보는 그림이었다. 때론 참새들이 더 잘 알았다.

 

 

 

 

지난해 가을, 금성계전은 연일 터지는 언론보도에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분당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들어간 열량계(히트 미터), 온도 조절변(서모스타틱 밸브)이 대량 불량으로 판명되어 집단 민원이 일어났다.

 

그룹 회장이 있는 여의도 트윈 타워 동관 사옥 앞에 까지 연일 분당 아파트 주민들이 몰려왔다. 구자경 회장 면담을 요구하며 럭키금성 그룹을 걸고 넘어지는 바람에 브랜드를 공유하는 그룹 입장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라는 그룹의 이념에 먹칠하는 대표적 사례로 몰렸다.

 

성기설 사장은 그룹 월례 합동이사회에서 불량에 따른 언론 보도사실의 전말을 설명하고 그룹에 누를 끼친 점에 사과를 해야 했다. 결국 성 사장은 날개가 떨어졌다. 작게는 성 사장에 대한 문책이지만 크게는 산전CU 전체가 곤장을 맞았다.

 

명색이 사장이었다. 5백여 명의 그룹 임원들 앞에서 ‘죄’를 고백하게 만들었다. 네 죄는 네가 알렸다 식의 추궁이었다.

게다가 구자경 회장은 '산전 사람들 얼굴 좀 보자! '며 이 날 참석했던 산전 임원들을 그 자리에서 모두 일으켜 세웠다. 망신이었다. 실패사례의 공유를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합동이사회에서 돌아온 임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울분을 달랬다. 회장실의 처사에 분개했다.

 

“ 꼭 이렇게 몰아가야 해. 온갖 창피 다 주고 말이야. ”

 

산전 임원들의 정서는 그룹의 처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 회장인들 밑에 놈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것 아니야? ”

“ 잘 한 칭찬은 얼렁뚱땅 넘어가고... 이건 감정이야. ”

 

지금까지 쌓여온 지난날의 응어리가 한꺼번에 봇물 되어 터져 나왔다. 

 

성 사장은 이것이 빌미가 되어 산전의 부사장으로 잠시 대기 발령 상태로 있다가 해가 바뀌면서 퇴진했다. 금성통신에 있던 백중영 사장의 복귀도 성 사장의 갑작스런 낙마에 기인한 대안이었다.

 

 

얼마 후 성 사장은 그룹과 경쟁관계에 있는 삼성그룹의 방계 회사인 이천전기로 전직했다. 업계에서 이천전기는 산전의 라이벌 회사다.

"아무리 그래도... 경쟁회사에?" 하며 성기설 사장의 삼성 행 행보에 여러 말이 나왔다. 본인 외는 해답이 없는 문제이지만  떠나갈 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후배들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럭키금성 그룹의 역사에 또 하나의 전기가 태동하고 있었다. 구자경 회장에서 구본무 회장 체제로 가는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풍문이 하나 둘 현실화 되는 시점이었다.

 

구본무 부회장이 그룹회장이 되면 산전CU의 대권 또한 김회수 사장이 분명하다는 말은 거의 정설로 굳어갔다. '김 사장이 대학시절에 구 부회장의 가정교사를 했다' 느니 하는 미확인 이야기가 굴러다녔다.

이런 소문은 사람을 건너뛰고 시간이 갈수록 증폭된 감도 없지 않았으나 때가 때인 만큼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졌다.

 

어느 조직이든 주위에서 이를 부추기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몇몇 임원들이 이에 편승했다. 말 한마디라도 김 사장의 뒤에 줄을 서는 처신이 눈에 띄었다. 기전의 사원들도 덩달아 고무되었다.

 

모를 리 없는 김 사장도 그래서 그런지 이런 분위기에 느긋한 표정이었다.

 

 

 

 

이희종 CU장으로서는 레임덕의 시작이자 김회수 사장은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김 사장이 가는 길은 탄탄한 독무대로 보였다. 산전CU에서 대안 부재였다.

 

이때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백중영 사장이었다. 다시 돌아올 것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3 년 만에 친정에 돌아왔다.

초대 사장이었던 윤욱현 사장이 구두회 사장 후임으로 3 대 사장에 돌아온 적이 있긴 해도 한번 떠났던 임원의 복귀는 그룹에서 희귀한 일이었다.

 

 

백 사장의 등장에 내심 나는 긴장했다. 再 登場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했다. 산전의 향후 역학 구도에 변수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나의 에이플랜 작업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희종 CU장과 백 사장 사이에 벌어졌던 지난 날 사례가 떠올랐다. 이희종, 백중영, 김회수 사장 세 분의 관계에 주목을 했다.

 

 

 

90년 한 해가 저무는 산전 임원 송년 모임이었다. 한껏 취기가 오른 이희종 CU장이 한 말이 이를 증명해 주었다.

 

“ '백'은 이제 나하고 와까레야!  ”

 

그날따라 CU장 옆에 앉아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해 나는 임원이 된 1년차 신출나기 이사였다.

 

“ 저 친군 말 뿐이야. 뭘 하는지 모르겠어. 와까레야, 와까레! ”

 

들으라는 듯 연이어 큰소리로 노골적인 불만을 쏟았다. 이 사장의 음성은 오랜 체증이 풀리는 듯 시원스러웠다. 서너 좌석 건너 백 사장이 앉아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 사장은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곧 그룹에서 단행되는 사장단 인사가 발표될 예정이었다. 백 사장의 신상에 무언가 변동이 있으리라는 직감적으로 간파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역시 현실로 나타났다.

백중영 사장이 금성통신으로 이동했다. 이희종 CU장과 관계를 생각하면 백 사장은 산전에서 사실상 퇴출이었다.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너는 백 사장의 뒷모습을 다들 바라보았다.

 

 

 

 

20여 년 전 안양 지역에 물난리가 있었다. 안양천이 범람해 그룹의 주력회사 중의 하나인 금성전선 군포공장이 물에 잠겼다. 맨 먼저 달려간 사람이 당시 백중영 금성계전 오산공장장이었다.

 

오산공장 임직원을 동원하여 며칠을 출근하다시피 복구 지원에 앞장섰다. 계전 오산 공장이 안양 군포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었다면 있었다. 통근버스로 사원을 대동하여 도시락까지 준비해간 순발력은 대단한 일이었다. 당연히 구자경 회장을 비롯한 그룹 오너 어른들의 눈에 띄었다.

 

 

백 공장장의 무용담은 본인의 입으로 다듬어 지고 증폭되어 전설이 되었다. 직후 78년 40세 공장장에서 임원이 되고 상무, 전무,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이라는 그룹의 또 다른 신화를 만들었다.

 

백 공장장의 순발력과 기동성은 높이 평가를 받을 만한 했다. 누구나 가능한 일이지만 아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백 사장의 목에 힘이 실리고 은연중에 과시했다.

 

탄성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돌아서서는 불가사의한 인물로 비아냥의 대상되었다. 튀는 바람에 빛을 본 걸로 평가 절하하는 시선이 만만치 않았다.

 

백 사장에게 ‘ 해바라기성 ’과 쇼맨십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 해바라기성 ’과 쇼맨십의 근본은 부지런함이다. 백 사장은 그런 스타일이니까 애교로 보는 축도 없지 않았다. 

 

 

 

 

이희종 CU장의 시각에서는 ‘아니올시다' 였다. CU장의 백 사장에 대한 거부감은 심각했다. 정치성향의 의  ‘줄타기 재줏꾼'으로 간주하고 두드러기 반응을 보였다.

CU장과 대화 은연중에도 나에게 표출되었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백 사장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부산 동래 시절부터 쌓이고 쌓인 결론인 듯 확고부동했다.

 

 

 

87년 이희종 사장이 금성사에서 당시 산전부문의 섹터장으로 부임했다. 산전에서 20년 만에 다시 조우한 것이다. 산전에서 재회, 그 여파는 본인 두 사람의 단순한 우연으로 끝나지 않았다.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김회수 사장의 금성기전에 비해 백중영 사장의 금성계전이 상대적으로 ‘많이 깨졌다.’ 산전 섹터에서 계전이 기전에 비해 못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회사 서열 상 기전보다 매출 크기와 종업원 수로 보나 그룹 내의 비중으로 보나 월등히 앞섰다.  

 

계전은 LG 본가에서 태어난 회사인 반면에 기전은 서통전기라는 중소기업을 인수한 후발기업이다. 그룹에는 주력회사가 있고 자매 회사가 있어 알게 모르게 순서와 질서가 있었다.

 

계전이 이렇게 ‘ 깨고, 깨진 ’ 이유는 CU장과 백 사장의 불편한 관계에 기인한다고 나는 진단했다.

 

 

 

89년도 였다. 내가 관리 공장장으로 근무하던 청주공장에 무언가 작심을 한 듯 이희종 사장은 사흘이 멀다 하고 내려왔다. 한 주는 재고 관리 강의라면 다른 한 주는 공정 관리 강사를 자처하며 화이트 보드를 대령시켰다. 품질 관리 강의도 했다. 

 

교육 대상은 공장의 관리자지만 백중영 사장도 청주공장에 내려와서 강의를 들었다. 백 사장도 참석하라는 지시는 없었으나 백 사장 스스로 꼬빡꼬빡 참석했다.

 

기전에서 이희종 사장이 부과장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희종 CU장의 잦은 공장행은 백 사장을 무시한 처사로 비쳤다. 계전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43화-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