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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LG 93-98 김상무 아리랑(43화-2) '대권 후계는 오리무중'

43-2

 

 

이희종 CU장과 기전 김회수 사장의 관계는 원활했다. 한마디로 계전 백중영  사장을 거칠게 다루었다. CU장에 대해 해석이 분분했다. 백 사장을 의식한 견제구라는 말이 나왔다. 치고 올라오는 백 사장을 견제한다는 추측이었다.

 

백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산전의 토박이를 자처하며 관리자에서 공장장을 거쳐 사장이 된 첫 사례로 자부심이 있었다. 산전을 아는 업계의 바깥사람들도 백 사장이 차기 CU장이 될 가능성 0순위로 점쳤다.

백 사장은 1938년 생, 김 사장은 1940년이다. 럭키금성 그룹에서 직무 경력으로나 산전CU에서 위치로 보나 김 사장이  백 사장과 겨룰 상대는 아닌 걸로 보았다.

 

 

경영회의나 공식 비공식 모임에서 이희종 CU장과 백중영 사장의 대화는 마치 외줄타기 같아서 옆에 있는 사람들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CU장은 다분히 공격적이었고 백 사장은 전적으로 방어 위주였다. 

 

CU장은 백 사장을 무시하는 투였다. 백 사장은 한두 마디 응대하다가 끝이 희미하게 꼬리를 내렸다. 굳이 반론을 제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CU장의 뜻에 동조했다. 

주관이 없어 보이는 백 사장의 성향에 냉소적이었다. 백 사장은 이런 시선을 의식한듯, '빨리 결론을 내야 하는데 내가 토를 달면 시간만 걸리잖아... ' 하는 식으로 변명을 하곤 했으나 공허하게 들렸다.

 

백 사장은 눌러 참았다. 참는 모습이 보였다. 주위의 임직원들은 눈치로 다 알았다. 어떤 경우에도 백 사장이 이희종 CU장을 폄훼하는 표현은 없었다. 상위자에 대한 매너는 매끄러웠다.

 

 

 

 

그러나 백 사장도 어느 순간에 울분을 슬며시 드러냈다. 사내 회식자리에서 터질 듯 말듯 어쩌다 터지고 말았다. 

 

" 그 어른이 왜 그러시는지 나도 몰라... " 

 

이 정도가 최고조였다. 물론 공개적인 자리는 아니어서 아는 사람들 만 알았다. 내쳐 묻어두기보다 그런 순간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른' 이라고 강조하듯 발음에 힘을 주며 CU장을 지칭할 때면 못마땅하는 쪽으로 새겨들었다. 즉각 백 사장의 고뇌에 전적으로 동조했다. 회사 전체로 이심전심으로 누적되었던 분위기에 소줏잔의 위력이 편승하여 이희종 CU장에 대한 집단 성토가 거침없이 일어났다. 

 

나도 계전의 일원으로서 CU장에 대한 집단 성토에 적극 가담했다. 조직의 생리였다. 누군가 풀어야 할 숙제 같았다.

 

 

 

 

그 해(1989년) 늦은 가을 어느 날이었다. 이희종 CU장이 비교적 오랜만에 청주공장에 내려왔다. 오후 반나절 현장을 돌아보고 강의를 마치면 서울로 올라가던 평소와 달리 30여 명의 공장 관리자 들과 청주 초입의 프라타나스 길 가 불고기집에서 소줏잔을 곁들여 저녁 회식을 했다.

 

나는 오늘 이때다 하며 한 가지 작심을 했다. 오늘은 반드시 CU장을 2차로 몰아갈(모셔갈) 계획을 세운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CU장에게 바짝 붙어 서서 다짜고짜로 '오늘 2차로 한잔 사 달라.'고 운을 뗐다.

백 사장은 공장주재 임원인 이원규 공장장과 함께 CU장이 서울로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며 영문을 모른 채 저만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희종 CU장도 정색을 하며 다가서는 내 청을 분위기 상 묵살할 수 없었는지 "좋아, 그래 한잔 해." 하며 스스럼 없이 승낙을 했다. 나는 CU장 승용차 조수석에 재빨리 올라타고 길잡이를 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경빈으로 향했다.

왕 마담인 고 마담 밑에 새끼마담이 몇 있는 외부 손님 접대로 입가심 2차용 단골로 찾던 수수한 방석집이었다. 백 사장과 이 공장장은 곧 뒤따라 올 참이었다.

 

경빈에 도착하자 CU장은 내리지 않고 뒷좌석에 앉은 채 나더러 "빈방이 있는지 한번 들어가보고 와!"  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게 실수였다. 내가 안으로 먼저 들어간 잠깐 사이에 CU장을 놓쳤다.

서울로 내뺀 것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이희종 CU장에게 속 시원히 저간의 전말을 따져보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 CU장 줄행랑 사건 '의 자초지종이다.

 

 

계전이 그렇게 ‘ 깨고, 깨진 ’ 반감의 집단적 표출은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해 년말(1989년) 그룹 인사에서 이사로 임원 승진 발령이 났다. 새해가 되자 나는 금성계전 청주공장을 떠나 트윈타워 서관 25층 금성산전 본사로 올라왔다.

산전CU 전체를 총괄하는 인사 홍보 업무 담당을 총괄하게 되었다. 이희종 CU장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는 직속 참모가 된 것이다.

 

1993년 8월, 금성산전, 금성계전, 금성기전 3사를 통합하는 프로젝트 <에이플랜 팀 프로젝트>를 담당하기에 이르렀다. 이희종 CU장 직속이다.

 

 

 

 

 

 

 

 

 

백중영 사장이 영업, 마케팅이라면 김회수 사장은 제조, 연구개발, 기술 쪽이었다. 이희종 CU장을 포함하여 세 분의 유일한 공통점은 서울 공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이희종 CU장은 언젠가 '서울 공대면 다 같은 서울 공대냐?'며 일갈했다.

 

백 사장이 정치적이라면 김 사장은 관료적이다. 백 사장이 두루뭉실 총론적이라면 김 사장은 다분히 각론에 치우쳤다. 백 사장이 감정을 극복하는 형이라면 김 사장은 자기감정에 눌리는 형이었다. 백 사장은 말이 많고 김 사장은 말 수가 적다. 

 

 

김 사장은 가는 길이 보였다. 우직스러운 면이 있었다. 사내 '문서혁신 시스템 구축'의 일환으로 <외래어 한글 표기 용례집>을 비롯한 기술 표준화에 관한 책을 만들어 전 사원에게 고집스럽게 배포할 정도로 스스로의 매뉴얼이나 프로세스는 바꾸지 않았다. 정공법 독일병정 같았다.

 

그런 면에서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자신을 고수했다. 김 사장이 백 사장과 큰 차이점이었다. 백 사장에 비해 고지식하다는 점이었다. 

 

고객 거래선과 골프를 치다가도 연거푸 미스 샷이 나자 성질을 못 이겨 티 박스 구조물을 골프채로 쳐서깨린 사례는 널리 알려졌다. '매너 백'으로 통하는 백중영 사장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 사장은 자기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해 호 불호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아닌 사람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평소 말수가 없는 기전의 김용호 상무는 '죽을 맛'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김해 가덕도 생짜배기 경상도 사투리에 버무린 김 사장의 성칼은 알아 주었다.

 

 

 

 

백 사장은 국면 전환에 능했다. 예측불허의 불안감을 유발시켰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틜지 모르는 긴장감을 동반했다.

전혀 180도로 변신하는 경우를 보면 기발할 정도로 신축적이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물에 걸려드는 느낌마저 주었다. 당했구나 하는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경계의 대상이었다.

 

친근한 다감하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상황이 갑자기 돌변하는 데는 아연실색할 때가 많았다. 결과에 대해 자기 위주로 해석했다. 그리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며 종주먹을 댔다.

 

“ 그 양반은 순전히 고무줄 잣대야. ”

 

“ 저 양반은 참모가 있어야 돼. 누군가 챙겨주는 사람만 제대로 있으면 한 건 하고도 남을 사람이야. ”

 

이중칠 전무의 말이 정곡을 찔렀다.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전고 출신이라 청와대 입김을 받는다는 둥, 하마평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는 둥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 거리가 가끔, 때가 되면, 나돌았다. 본인이 자가 발전한 듯한 심증을 주었다. 

 

 

 

 

내가 청주 공장장일 때 백 사장과 이런 대화가 있었다.

 

“ 실은 이번 내 출장은 고작 이틀 회사를 비우는 거야. ”

 

“ .....................? ”

 

“ 자 보라 구. 출발하는 날은 금요일 오후니 근무 다하고 가는 거고, 월요일은 식목일이고 목요일 돌아오는 날은 도착해서 회사에 들어올 수 있어. ”

 

“ 사장님 출장 간다고 누가 무슨 말을 합니까? ”

 

“ 그래도 사장이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있나? ”

 

잦은 해외 출장에 대해 자기 방어였다. 굳이 이런 말을 하면서 구차하게 변명할 것까지 없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 사장님 출장 간다고 누가 무슨 말을 합니까? ’ 하고 묻는 것 자체가 용기가 필요했다. 그저 그만 듣고 있으면 그만이었다. 

 

사장의 해외 출장은 많을수록 좋았다. 회사의 비즈니스를 위해 사장이 나서야 할 일이 많다. 하루 이틀이 문제가 아니었다. 필요하다면 일 년 열두 달을 해외에서 살아도 좋다. 사장이 사장실을 지키고 공장 만 왔다 갔다 하는 일만 근무가 아니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평일에 골프를 치는 일이다. 사장이 평일에 골프를 쳤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데도 죄 지은 것처럼 궁색했다. 다음날 아니면 가까운 언젠가 그 이유를 꼭 변명했다. 사장이 비즈니스를 위해 며칠 골프장에 살면 또 어떤 가?

 

통이 커 보였으나 실상은 한없이 소심한 면이었다. 말 한마디에도 상대방의 동의와 맞장구를 기다렸다. 

 

 

 

백 사장은 마음에 안 드는 반대론에  저공비행을 하면서 기다리는 반면 김 사장은 고공비행으로 초전에 행동으로 박살을 내버렸다. '괴팍한 면에서 난형난제'라는 말이 언젠가 문길구 상무의 평가였다. 

 

이희종 CU장도 이런 면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부산 동래공장 시절부터 산전에 부임하기전 금성사 부사장까지 불 같은 성질에 관한 과거의 이력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금성사 시절 상하관계로 있었던 이병무 상무나 장석주 이사는 오래 전 생성된 그들 나름의 어떤 트라우마에 고개부터 절레절레 저었다. 

 

복잡다단, 예측불허...  산전에서는 괴팍해야 사장이 되도 된다는 진반 농반 자조적인 말이 나돌았다. 납득되지 않는 개성은 경계의 대상일 뿐, 괴팍함도 달리 보면 개성이었다. 

 

 

 

 

 

지난 연말(1993년) 그룹 사장단 인사가 발표된 직후 마포빌딩의 금성통신 사장실로 나는 백 사장을 방문했다. 친정이었던 계전에 부임하기 직전이었다. 에이플랜 추진과정을 간단히 설명할 겸 인사차 방문이었다. 백 사장은 유쾌하게 산전의 영원한 토박이를 자처했다.

 

“ 고향 찾아왔어. 내가 갈 곳은 역시 산전이야! ”

 

“ 다시 만나 뵈어서 반갑습니다. ”

 

“ 나, 그동안 공부 많이 했어. 떠나보니 우리 산전이 해야 할 일들이 보이더라고... ”

 

“ ................... ”

 

감성을 드러내 상대방에게 최대한 이입시키는 정감 어린 말투는 다름이 없었다. 자신감이 넘쳤다. 옛날 한창 때의 어조가 되살아났다. 그동안 타향살이의 절절함이 나한테 밀려왔다.

아닌 게 아니라 20여 년 세월의 금성계전은 백 사장에게 영원한 고향이 되고도 남았다. 

 

나는 에이플랜의 작업 경과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 김 이사, 김 이산 지금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요.”

 

두어 쪽 설명했을 때 백 사장은 엄숙한 어조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강조했다.

 

“ 누군가 해야 할 일인데 잘 하고 있소. 난 에이플랜 팀을 최대한 지원할거요. 사장인 나를 보틀넥으로 여기지 말아요. 무슨 말이지 알겠죠. 객관적인 입장에서 작업을 해주어야 해요. ”

 

정감이 뚝뚝 떨어졌다. 빈말이라도 아직까지 이런 톤으로 말해준 사람이 산전에는 없었다.

 

“ 고맙습니다. ”

 

“ 필요시에는 언제든지 최우선으로 에이플랜 팀을 만날 거요. 언제든지 찾아와요. 전화를 해도 좋아요. 진행사항 보고에 일부러 시간을 낼 필요는 없어. “

 

나는 지금까지 에이플랜 스티어링 컴미티에서 보고된 주요 자료를 전달했다.

 

“ 지금까지 내용은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겠소. 혼자서 공부를 좀 하고 모르는 건 부를테니 그 때 상의 하자구... “

 

그리고 백 사장은 덧붙였다.

 

“ ....이런 작업도 이희종 CU장이 계시기 때문에 되는 거요. 산전은 그 어른이 계실 때 터를 잡아야 해. 아주 잘 되었어요.”

 

“ .................... ”

 

“ 김 이사가 잘 도와드려야 해. 김 이사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죠? 알죠? ”

 

한마디 한마디에서 백 사장다운 체취가 풍겼다. 김회수 사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백 사장의 컴백은 분명 이희종 CU장의 희망사항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 돌아왔을 가. CU장이 동의했을 가. 

3년 전 떠나갈 때 '와까레야!' 하며 이미 어떤 선을 극명하게 넘어선 두 사람의 관계를 나는 알았다. 서로 피하는, 피차 원하지 않는 재회임에 틀림없다.

 

김회수 사장도 마찬가지다. 백 사장과 김 사장 사이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희종 CU장의 행보는 그럼?

백 사장의 부활이냐, 김 사장의 기득권 유지냐 가 관심사항의 초점이었다. 그룹 회장실의 기상도와 에이플랜에서 전개될 통합산전의 비전과 조직설계에 달렸다.

 

산전CU의 후계구도는 백 사장의 귀환으로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누가 후계자라고 점 찍을 수 없다. 백 사장을 마포빌딩에서 만나고 여의도 트윈타워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43화-2 끝)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김상무 아리랑> 원고를 이희종 사장께 보여드린 적이 있다. <김상무 아리랑> 41화,42화,43화,44화,45화 이 부분에는 밑줄을 그어가며 특별히 정독을 하신듯, 부연 설명하는 메모도 열심히 남겨 주셨다. 위 메모에서 구자욱을 구자정으로 잘못 기록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