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말이면, 아무리 못해도 새해 초에는
반드시 책력을 샀다.
올해는 년초 벽두부터 병원 신세를 지느라
책력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퇴원해서는 우수 경칩도 지난 늦은 이차 판에
올 한해는 건너뛰기로 이래저래
마음이 굳어졌던 것.
너끈히 60년은 됨직하게
나에게 책력의 추억은 오래다.
어린 눈에는 벌건 표지에 한자투성이
책력을 머리맡에 두고서 토정비결을 본다든가,
관혼상제, 농사정보 등 일상 생활의 일부로
수시로 펼쳐보셨던 어른들이 계셨고...
수 십년 서울 직장생활에 한동안 잊고 있다가
도내리에 귀촌한 뒤에는
우리 마을의 '버갯속영감님'이 년말이면,
내가 구해다 드린 '일력'의 고마움 표시로
'책력'을 꼬빡꼬빡 내게 선물 하신 것이다.
몇년 전 북촌 만해당에서 하룻밤을 자며
한양 북촌 일대를 문화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안국동길을 터덜터덜 내려오는 데 우연히
눈에 띈 명문당 간판.
반가운 한편으로 다소 어수선한 건물 형색에
창 안으로 정돈되지 않은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퀴퀴하고도 생경한 느낌이
100년이 가까운 명문당의 역사와
일순 겹쳐졌다.
며칠 전,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인터넷 도서로 구매하다가
이때다 하며 같이 주문했던 것.
올해 한해 거를 뻔 했던
무술년 책력.
있어야 할 건
옆에 있어야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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