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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村漫筆

귀촌일기- 폭염이라는 이름의 독서(2) 고은과 이문구



'우리시대의 탁월한 이야꾼 이문구가 털어놓는 글쟁이 21명의 면모'가 담겨있는 '이문구의 문인 기행,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언제 어떤 경로로 내곁에 오게 되었는지... 서재에서 오랜 세월-2십 년이 넘도록 잠자고 있었다.

눈길이 지나다가 우연찮게 손길이 멈춰 꺼냈는데 그 때 그 시절 읽었던 기억은 아물아물 이제사 새삼 재미있다.






이문구 선생은 내가 귀촌해서 살고 있는 태안과 가까운 이웃 보령 태생이라 어느 작품 하나도 빠지지않고 문장 마디마디 글귀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표현들이 너무나 충청도스러워 거기에 빠졌다고나 할 가.

충청도이건 전라도건 경상도건 토속 정서나 말씨를 맛깔스럽게 녹아내는 문틀을 나는 좋아한다.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 맨 첫 장에서 1985년에 쓴 글로서 일초 고은과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마침 고은의 시집 '새벽길' 다음이라 이것도 예사 우연이 아니다. 올따라 예년에 없던 독서는 폭염이 가져다준 자연과 인간의 얄궂은 조화요 장난이다. 장난은 본래 재미있는 법.






...나는 점심을 얻어먹고 일초의 고향 군산을 향해 떠났다. 그의 본제가 있는 군산시 미룡동 138번지는 본래 옥구군 미면 미룡리의 용둔부락인데 1973년에 군산시가 되었다.

일초는 1933년 8월 1일. 아버지 고근식, 어머니 최점례 사이 3형제 중의 맏이로 태어났다....



한창 장마 때라서 밤새 쏟아진 비로 길가의 자갈에서까지 물이 흐르는 구적구적한 샛길을 질벅거리며 함석 사립을 미니, 올해 일흔둘의 노친은 수돗가에서 허드레 옷가지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노친은 나와 같은 충남태생이어서 충남토박이 말씨가 여전했으므로 나도 모처럼 고향 말투를 썼다.


큰아들이 어렸어는 어땠슈?


"션찮었슈. 늘 앓기만허구 크덜안혀. 그렇게 마디게 크니께 나가면 이늠 저늠헌티 맨날 처맞구 들어오는게 게 일여. 터를 안팔아서 근 십년 아수를 안 보니 역성들어줄 동기간도 읎구. 애들이 만만히 보구 찝쩍거릴밖에....옷을 안벗을라구 해서 빨래를 못해 입혔어. 벗으면 멍든 자국 투셍이니 혼날깨미 벗을라구를 허겄슈. 그런디 머리는 수재여. 잿정지 글방일랑 새터 남생이네 글방이 댕길 적버텀 신동이 나왔다구 다들 일렀으니께. 핵교 댕길 때두 공부 1등, 그림 1등, 웅변 1등...그렇게 열아홉에 나가 중이 되기 전까장 중학교 선생질두 허구, 미군부대 툉역관두 허구, 군산시 신문기자두 허구, 면서긔두 허구...뭐는 안했간유. 자발읇어서 뭐든지 쬐끔쓱 댕기다가 구만둬서 병이었지"....



나는 용둔마을을 떠나면서 어머니를 슬쩍 떠보았다.


저 아들이 뭣 허는 사람인가는 아시지유?


"나는 모르겄는디 넘덜이 다덜 시인이라구덜 해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