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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귀촌일기- 가로림만의 밤바다 낚시

 

 

 

 

 

도내나루 바로 건너 구도항, 한적한 갯마을에

거대한 모래공장이 턱 버티고 있다는 건 '건설'과 '산업'이라는 측면을

백 번 이해하면서도,

볼 때 마다 나에겐 흉물이다.

 

게다가 어디서 모래를 싣고 오는지 모르지만 

항공모함 같은 모래 운반선을 만날 때 마다

나를 압도한다.

 

바다낚시를 나갈 때면 색깔 마저 시커먼 모래운반선 옆꾸리를

종종 스쳐 지나가는데 우리가

타고 있는 도내호는 말 그대로 일엽편주다.

 

어느 날 밤바다에서, 그것도 안개가 잔뜩 눌러앉은 야밤중에

모래운반선과 낚싯배가 맞딱뜨렸을 때

타이타닉호 같은

변고가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을 것이다.

 

 

 

 

 

 

 

7년 전인 가, 그럴 뻔한 적이 있었다.

 

문제는 짙은 안개였다.

 

그날사 말고 조황이 좋아 아나고 낚시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어어..하는 순간, 순식간에 안개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안개가 끼면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상대방 배와 자기 배의 위치를 알리는 경고등 전조등 마저 보이지 않으므로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잘못 움직이다가는 갯바위에 충돌하거나

되레 먼 바다로 나가기 십상이다.

 

 

 

 

 

 

이거 큰 일 났다 생각과 동시에

퉁퉁퉁 하며 모랫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안개 속에서는 그 소리가

어떻게나 선명하게 우렁차게 들리는 지.

 

모랫배가 지척에 다다른 것 같았다.

 

평소 비호감의 시커먼 모래운반선의 이미지가 겹쳐지자

심장이 뛰고 살소름이 끼쳤다.

 

모두 세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한평생 갯가에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다고 때늦은 넋두리만 공허할 뿐...

 

들이받치면 죽었구나 하는 순간...

 

 

 

 

 

칠흑 같은 밤바다의 안개...

 

그 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던 것이다.

 

지금 그 날 그 때를 돌이켜보고 있으니, 그 날의 힘겨운 악전과 아찔했던 고투 끝에

어쨌던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어제, 바다 낚시를 나갔다.

 

이웃 박 회장 배에 늘 얹혀 가는 몸이라 몇 시에 나오라면 나가고

돌아오는 시간도, 10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 만 경험으로 알 뿐

모두 배 임자인 박 회장 소관이다.

 

10월의 밤 낚시인지라 추위에 대비하여 행장을

투텁게 갖추었다.

 

해가 질 무렵 우럭 낚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아나고 밤 낚시로 들어가기 전에 저녁 요기로 라면을 끓여

든든히 먹어두는 일은 통상적인 순서다.

 

내가 바다낚시 하면 이마에 신짝을 붙이고서 달려나가는 건,

어쩌면 주객이 뒤바뀐 통상적인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서다. 

 

까짓것 우럭, 아나고 몇 개 더 잡아 뭘 하겠느냐는 혼잣말이

입에서 막 나오려는 걸 끝내 참는 것도

즐거운 인내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가로림만의 산천경개는 

언제나 안온하다.

바다가 아니라 차라리 호수다.

 

어제도 초장에는 그랬다.

 

 

 

 

  

 

밤에 비가 내릴 거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으나

이 쾌청한 날씨에 이 가뭄에 빗방울 몇 개 떨어져 본 들 무슨 대수냐

생각했던 것이 오산이었다.

해가 이원 쪽 서산마루로 떨어지자 마자

금새 어둠이 깔렸다.

 

오징어  잇갑을 썰고 낚시채비도 갈아 끼우며

본격적으로 아나고 낚시에 들어갔다.

 

멀리 서쪽에서 번개가 쳤다.

마른 하늘에 웬 번개 하며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번개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방은 캄캄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던 먹구름이 언제 몰려왔는지

터지는 번갯불에 비쳐서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났다.

 

갑자기 바람이 일더니 이내 비바람으로 변했다.

창대 같은 비가 퍼부었다.

 

어느새 번개는 우리 배를 향해 다가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배 가운데 꽂아둔

손잡이 쇠막대라도 뽑는 일 뿐이었다.

낙뢰는 쇠붙이를 타고 흐른다는 상식이 그나마 생각이 난 건

소싯적에 자연 과목에서 들어 배운 교육 효과에다

지푸라기라도 하나 잡고 싶은 심정의 발로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뻘건 번개가 연짝으로 터졌다.

바로 머리 위에 있었다.

 

우루루쾅쾅 쾅. 

뇌성이 고막을 찢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벼락,천둥,번개.

 

 

 

 

 

혼비백산.

한바탕 일진광풍이 지나갔다.

 

사지에서 살아돌아온 듯 두 사람의 몰골은 까만 밤중에

보나마나 말이 아니었다.

 

도내나루로 돌아오는 캄캄한 배 위에서

나는 박 회장에게 말했다.

'우린, 벼락 맞을 놈은 아닌개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