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歸村漫筆

귀촌일기- 정순왕후 생가 댁의 경사

 

 

 

 

 

 

 

 

서산에서 해미로 가다가 조금 못미쳐서 왼쪽으로 돌자마자

음암의 한다리 마을이 나오는데

경주 김씨 집성촌이자 정순왕후 생가가 있다.

 

정순왕후가 누구신 가.

 

15세의 나이에 66세 영조의 계비로 간택될 때부터 총명하고

당찬 왕비로 알려져 있다.

 

사도세사의 죽음, 정조의 즉위와 치세를 온몸으로 감당하였으며,

11세에 임금이 된 순조 때는 대왕대비로 수렴청정을 하는 등. 

정순왕후 만큼 조선 중기 이후 파란만장한 역사를 써내려간 

왕비도 드물다.

 

여기를 지나다닐 때마다 생각나는 바,

천주교도의 신유박해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고 있는 건 안타깝다.

 

생가에서 십 여리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해미읍성과 해미 성당이 있는데 오늘날

천주교 박해의 순교 성지가 된 걸 보며 뒤안길로 걸어보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정순왕후 생가와 바로 맞붙은, 같은 집안인 계암 김기현 고댁에서

따님의 혼사가 있었다.

 

전통 혼례이자,

이른바 국제결혼이었다.

 

 

 

 

 

 

 

혼주인 계암 선생 내외분이 고댁을 지키고 있으며

"초노의 나이에 퇴직을 하고 마음의 고향인 이곳 한다리 마을에 돌아왔다"는

귀거래사를

'고댁에 돌아와서'라는 수필집 서문에서 읊고 있다.

 

 

 

 

 

 

몇년 전인 가.

 

원로 사진 작가인 이오봉 님과 함께 계암 선생은 태안의 우리집을 방문하기도 하셨기에,

전통 혼례라는 말도 솔깃하거니와 얼굴도 뵐 겸

한다리 마을의 경사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신랑 신부와 함께 어깨동무도 하고

스스럼 없고 따뜻한 혼사였다.

 

흔히 하는 말.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