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심심찮게 고추가 열어준다.
서리가 내릴 무렵에 고춧대 고춧잎을 훑어서 말릴 때까지
고추는 빨갛게 연다.
일주일에 한번 쯤 고추를 따다가 가을볕에 말린다.
일년내내 우리 고춧가루는
쉬엄쉬엄 이렇게 모아둔 태양초다.
갈수록 꼬부라지고 못생긴데다 자잘하지만
고추의 매운 맛이야 어디로 가지않고 한결 같아서
제눈에 안경이라고 내 맘에 흡족하다.
넉넉하기야 하랴만 하는 듯 안하는 듯 자급자족하는 그 재미가
귀촌의 멋이고 맛이 아니겠는 가.
오늘은 고추를 따다말고 야콘밭에 살았다.
무슨 일을 하다가
전혀 엉뚱한 -그러나 실은 언젠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쯤이야
귀촌 일상에 수시 다반사다.
고추밭을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야콘 밭 둔덕의 잡초가
오가는 발목을 휘감는 게 도무지 성가셨다.
벌초한 지가 엊그젠데 언제 또 이렇게 자랐나
도대체 갋을 수 없는 게 잡초다.
농사의 절반은 잡초와의 싸움이라고 일찌감치 귀촌 초장에
가름한 바 그대로
갈수록 그 생각엔 전혀 변함이 없다.
단단히 시동을 건 예취기를 들고 일단
초벌 작업에 들어갔다.
철저히 한답시고 톱날을 아랫도리까지 잘못 들이댔다간 튼실한 야콘 밑동을
순식간에 요절내고 만다.
적당한 선에서 잡초 무더기를 살짝 걷어내는 게
예취기를 다루는 요령이다.
그 다음은 오로지 내 손길이었다.
곰탁곰탁 정리는 손으로 해야 한다.
기계가 힘을 덜어주지만
마무리는 사람이다.
야콘밭의 밉생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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