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상무 아리랑

김상무 아리랑(22화) " 하죠. 하겠습니다. 그런데... "

 

 

22.     

 

 

  닷새 만에 트윈타워 24층을 계약하고 칸막이 공사는 초고속으로 완료했다사원들의 집기 비품도 빠짐없이 조달이 되었다.  ‘통합 산전에이플랜 팀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가 협조부서의 움직임을 빠르게 했다.

 

나는 25층에서 자리를 옮겼다.   이희종 CU장실과 한층 사이로 바로 아래였다멀리 북한산 자락이 누워있고 가까인 한강이 동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광경을 인사,업무,홍보 담당 임원으로서 28개월을 보아왔다이제 트윈타워 서관 24층 창 너머로 펼쳐지는 전경은 63빌딩과 관악산이 보이는 동남쪽이었다.   한 층의 차이가 주는 바깥 경치는 완전히 달랐다지금까지 청주 공장장 일 년을 빼고는 사장실 옆을 떠난 적이 없었다

한 층이라는 공간의 차이에 새삼 홀가분함이 있었다그 건 박충헌 전무로부터 벗어난다는 후련함이었다.  나는 박 전무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내려왔다.  내 직속 상위자가 된지 일곱 달 만이다

년 초 산전CU 내 인사 교류에 따라 안재화 전무가 물러난 자리에 기전에서 박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면서 산전으로 왔었다.  

 

 

  박 전무가 오자마자 정기 임금및 노사 단체협약 갱신교섭을 위한 노사협의회가 시작되었다.

 

이희종 CU장은 첫 회의에 참석하고 밀고당기는 지루한 교섭과정은 지난해까지 안 전무와 내 몫이었다.  올해는 박 전무와 함께 끌어가야할 나로서는 염려스런 점이 두 가지 있었다.  노조는 상대 파트너가 새 사람이 오면 강성으로 돌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내가 아는 박 전무의 평소 스타일이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기전에 비해 회사의 규모가 몇배나 큰 산전인데다  창원공장에서 담장 하나 사이의 금성사  강성 노조의 물을 먹은 산전에서 처음으로 임금 교섭에 임하는 박 전무는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박 전무가 자질구레할 정도로 지시하는 이런저런 자료준비에 지철호 부장을 비롯해 노무담당 실무자들은 초장부터 기진맥진이었다.  

 

단체협약에 임금인상율을 결정하는  정기 노사 교섭은 항상 두어 달 시간을 끌었다.  타결이 너무 빨라도 문제가 되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라 차수를 올려가며 끌대로 끄는 것이 노사협의회 관행이었다.  벌건 대낮에 끝내는 것도 노측 입장에서는 무척 신경을 썼다. 

 

 

   노조와 타결이 막바지에 이른 5월 21일이었.  작년 6월 2일 타결된데 비하면 열흘 정도 빨랐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교섭이 전병만 위원장으로서는 임기 마지막 교섭이었다.  다음 달에 노조위원장 선거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병만 위원장으로서는 이번 교섭이 재선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결정해주시죠.   CU장께서는 얼마든지 양해합니다. ”

 

정회를 한 다음 이동전화로 이희종 CU장을 찾았으나 불통이었다.  CU장에게 단체협약의 기본급 부분에서 0.15%의 추가 인상의 불가피함을 보고하고 CU장의 결심을 얻어낼 작정이었다.

 

보고를 해야지오늘밤에라도 김 이사가 댁으로 가서 설명을 드려요.  그만 내일 아침에 속개하는 걸로 합시다. ”

이런 정도는 우리들에게 위임이 되어 있습니다전체 재원에서 이미 예상이 된 거니까 오늘 결론을 내려줍시다내일까지 끌면 밤새 또 무슨 변수가 생길지 모릅니다.  CU장님도 중간에 시시콜콜 따져묻는 걸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

그래도... 이건 중요 사항이예요. ”

박 전무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사측 교섭위원이 이 정도도 하나 제대로 결정 못하는 우릴 노조가 어떻게 보겠습니까오늘 결정해 줍시다.  주거니 받거니 아닙니까다른 안건에서 책임지고 양보를 받아낼게요. ”

내 목소리가 올라갔다.  더 이상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판기사업부 출신인 손용환 출마 예비자의 강성 페이스에 말려들어 회사가  뒷북을 칠 염려가 있었다. 

 

김 이사, 너무 쉽게 그러지 말아요. ”

걱정하지 마세요. ”

나는 기어이 밀어붙였다.

 

그럼, 김 이사가 해요. ”

 

자기 주장을 굽히지않던 박 전무는 나의 기세에 눌렸다.

 

하죠. 하겠습니다그런데 노조가 이상하다 생각 안할까요.   지금까지 전무님이 하다가... ”

" .................... "

 

회의를 속개했다. 나는 기본급 5.7% 인상 회사의 최종안을 노조에 통고했다그리고 다음 안건인 현장직무수당,근속수당으로 넘어갔다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한 달여 끌었던 단체교섭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떨떠름한 박 전무의 표정은 내내 사라지지않았다.

 

다음날 아침 이희종 CU장이 출근하자마자 박 전무와 들어갔다. 노사협의회의 합의사항을 보고했다

 

CU장은 말했다.

 

잘 됐어!

 

 

 

   이희종 CU장에게 주요사항을 구두로 상의하면서 에이플랜 팀의 비용은 선집행(先執行)으로 처리해 나갔다사전 품의나 결재도 필요없었다

 

사업활성화 팀 즉,에이플랜 팀의 출범에 잎서 예산을 수립해야했다.  문제는 에이플랜 팀의 교제비,교통비,복리후생비의 예산 편성이었다.  복리후생성 예산 편성은 사업계획을 세울 때마다 겪는 고역이었다.  손익을 총괄하는 관리부문은 나름대로의 잣대를 갖다대며 항상 라인 부서의 요구를 컨트롤하려고 덤볐다.   관리부문의 속성이었다

그 중에서도 자금 부문의 위세는 대단했다. 교통비와 교제비는 전가의 보도였다이를 휘두를 때에 아우성이 일고 돌아앉아 불만의 소리가 빗발쳤다예산편성 시스템의 개선 운운 하지만  예산에 관한한 라인이 관리를 이길 수는 없다구질구질한 부탁과 끈질긴 청탁은 어쩔 수 없는 회사의 풍속도였다.

  

금성계전 심사부장 때 나도 3년간 이 칼자루(?)를 찬 적이 있다.   예산 증액 때문에 뻔질나게 찾아오는 고참 영업담당 부장이 있었다이 사람이 나타나면 하철이 형님오신다고 놀렸다지하철 수주 때문이라고 둘러대는 바람에 하철이 형님이라는 피차 달갑지 않은 별명이 붙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양반의 이미지가 뇌리에 남았다.  회사를 떠나갔어도 개인의 자질과 소양이 평가되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된다는 걸 알았다.

 

나는 강명철 부장한테 에이플랜 팀의 예산편성에 기본 지침을 주었다.  흔히 말하는 교제비,교통비,복리후생비 예산이었다.

 

첫째는 철저하게 우리 예산을 사용하도록 할 것.

에이플랜 팀 활동은 사업부의 영업, 생산 현장 사람들과 딩굴며 하는 일이다현업 사업부에 얹혀서 설렁탕 한그릇도 비용을 전가시켜서는 안된다. 이런 데 지저분하면 에이플랜 팀의 리더십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은 그동안 내 경험의 소산이었다.

 

둘째, 중간에 증액 요청을 안하도록 할 것

에이플랜 팀은 예산 증액요청 운운하며 내부의 일에 매여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한편 시도때도 없이 견제구를 던질 사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내 지침에 따라 강 부장이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가져왔다강 부장이 편성해온 교제비,복리후생비 예산의 숫자를 보자마자 나는 곱하기 3을 했다  ‘곱하기 3’은 견제구의 뇌관을 사전에 제거하는 의미였다산전CU 관리담당으로 예산의 칼자루를 쥐고있는 박충헌 전무를 염두에 둔 나의 고육지책이었다. 

 

< 사업활성화 추진 품의 >라고 강명철 부장 특유의 큼지막한 글씨로 쓴 품의서는 827일자로 되어있다실행 품의는 요식적인 절차였다

인원은 팀장인 나를 포함하여 13장소는 트윈타워 서관24  공용 회의실 구역의 114,   그리고 년간 예산 등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이희종 CU장에게 곱하기 3’의 의미를 굳이 설명했다CU장은 사인을 했다.  간단명료한 의사결정이었다.

 

 

(21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