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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김상무 아리랑(21화) “ 그럼 이 상무가 해봐. “

 

 

21.   

 

 

 

  1993.8.17(화)

  그날 하루는 길었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다.

 

강명철 부장, 한창진 부장, 박진홍 부장을 데리고 있는 임원들부터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인원 차출에 대한 요식 행위이기도 했다.   필수요원이니만큼 결국 강제성을 동원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배짱도 깔려있었다

이 세 사람의 상위자는 이병무 상무, 이창재 상무, 이용우 상무였다모두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다이 세 사람 만 각개격파하면 성공한 셈이다다소의 밀고 당기기를 각오하면서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어차피 단번에 결말이 날 성질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공식적으로 발표만 안했을 뿐 에이플랜이 시작된다는 소문은 파다했다전사적으로 인원 선발에 최우선 협조하라는 이희종 CU장의 의지는 각사별로 조직 계층을 따라 내려갔다임원들은 자기의 부하 중에 누가 붙들여 갈지 마음속으로 전전긍긍 할 수 밖에 없었다

전사적인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적합한 사람이 누군지 저절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법이다흐름이 빤한데 협조를 안할 수 없고 선듯 내주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먼저 해외사업부장인 이병무 상무를 찾아갔다.

 

 

해외사업부는 바로 한층 위에 있었다내가 방을 들어서자 책상에 앉아있던 이 상무는 세미나 테이블로 다가왔다.

 

다 아시는 이야긴데 설명을 좀 드리겠습니다. ”

수인사는 제쳐두고 나는 본론부터 꺼냈다.  

좀 있다... 커피 한잔하고 합시다.”

이 상무는 말을 더듬으며 두 손을 저었다우람한 체구에 걸맞지 않게 섬세한데다 영국신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 ................. ”

대전 엑스포에 온 친구들 때문에 엊저녁에도 늦었어요.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중국말을 섞어가며 이희종 CU장님은 한번 말씀만 나오면 끝이 없어요.   중국 친구들이 아주 좋아들했어요. ”

 

이 상무는 어제 저녁 늦게까지 중국 바이어와 지낸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마침 이희종 CU장도 저녁 모임에 조인을 한 모양이었다.   이 상무는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었다.  평소 약간 더듬는 말씨인데다 느릿느릿한 말이 이날따라 갑갑하게 느껴졌다.   내 말에 앞서 말머리를 돌려 딴전을 피우는 것 같았다.   해외사업부에서는 강명철이가 전출 대상이라는 사실을 이 상무가 모를 리가 없었다내심 최선의 방어에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강명철일, 주십시오. ”

나는 본론을 말했다이 상무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해외사업이 이제야 궤도에 오르는데 제대로 하고있는 사람을 빼버리면 어떡해요. ”

이 상무 목소리가 떨렸다.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대한 수출전략은 CU장의 핵심과제로서 전사적으로 자원을 집중하고 있었다

 

‘ 해외는 내수와 달라서 먼저 일을 벌이고 봐라. ’

 

이희종 CU장의 지론이었다.   불도저식의 해외 감각은 지금까지 산전의 문화를 한 차원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무조건 바깥으로 나가라는 말은 아니었다돌다리를 두드리다가 시간만 놓친다는 경고였다해외사업은 CU장의 최대 관심사항이었다그래서 CU장이 이병무 상무의 빽이다는 말이 나돌았다

이 상무의 어투에는 당당한 후원자가 있다는 점을 슬쩍슬쩍 비추었다.  이 상무는 산전으로 오기 전에 금성사에서 이희종 CU장과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고 산전으로 온 이희종 CU장이 데려온 인물로 분류되고 있었다. 

 

강명철이한테 기획 일은 맡겨놓고 있는데... 곤란하지 않을 가요. ”

 

이 상무는 지구전을 펼 태세였다.

 

강 부장을 데려와 제가 키워서 나중에 해외사업이 더 잘되도록 보내드릴께요. ”

나는 웃으며 반격에 나섰다이 상무는 여전히 두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데려갑니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해외사업은 제외해줘요. 김 이사. 부탁해요. ”

 

이 상무의 부탁을 귓가로 흘리며 돌아나왔다내 갈길은 정해져 있었다.

 

  

   한창진 부장의 임원은 자판기 사업부장인 이창재 상무였다.

 

한 부장은 자판기 사업부에서 서울지역 영업 담당이다  나와 같이 OVA 프로젝트를 수행하다가 산전에서 한 명을 파견해달라는 그룹 회장실의 V-추진본부 요청으로 일년 여 남용 상무 산하에 파견을 나가있었다.   6개월 전 회사로 돌아오면서 한 부장 본인의 희망에 따라 자판기 사업부로 보냈다.

물론 이 정보를 먼저 알게된 이 상무의 요청도 있었다이 상무가 계전의 총무부장 때에 한 부장이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해서 총무부에 데리고 근무를 한 적이 있어 한 부장을 잘 알았다.

자판기 사업부의 매출채권이 위험수위를 넘었다한 부장은 87년도의 ‘F-88 프로젝트에 따라 계전과 기전의 전기기기 영업을 합쳤을 때 매출채권 회수를 위한 C-플랜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그 때 능력을 발휘했다여러 정황에 상위자의 요청과 본인의 희망이 마침 맞아떨어졌다.

 

이제야 자판기 사업부에 정착이 될가말가 한 한 부장을 빼달라고 요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오랜 기간 인사부문을 담당했던 내가 보아도 합리적이지 못했다바로 이 점을 이 상무가 걸고넘어진다면 나로서 할 말이 없다에이플랜의 중요성을 강변하는 것만이 오로지 내가 가진 유일한 방패였다.

 

795월, 내가 금성계전에 입사할 때 이 상무는 당시 총무부장으로 서무과장인 나의 직속 상사였다.  한때 나의 상위자였다는 점이 아픈 대목이었다.

 

게다가 이와 비슷한 일이 한번 있었다.   이창재 상무가 산전의 전략본부장일 때 나는 인사 업무담당 초임 임원이면서 혁신활동인OVA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OVA 팀을 구성하면서 당시 이 상무 산하의 기술센터를 맡고 있던 김용철 부장을 빼앗아오듯이 데려왔다.   서브 리더의 적임자였기에 김 부장을 핵심멤버로 맨먼저 점찍었던 것이다.

섭섭하다는 몇 마디 훈계를 내가 감수한 끝에 이 상무는 김 부장을 내주었다.  이는 순전히 이 상무의 인내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내심으로 고마워했다 

이번 한 부장과 연결시켜본다면 이창재 상무 입장에서 나는 과거의 상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상습범이었다만만하니까 물로 본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이 상무에게 다른 측면에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점에 대해서 이 상무는 내 스스로 발설을 하지않는 한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작년 임원 승진할 때 전무 승진 T/O를 구정길 상무가 먼저 차지한 결정적인 계기도 나에게 얼마쯤은 있었다.   전략기획 담당인 이창재 상무와 기기사업부장인 구정길 상무 두 사람이 전무 자리를 놓고 경합했다.   고심하던 이희종 CU장이 인사담당인 나에게 어느날 조언을 구했다.

 

아무래도 영업 쪽이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 

그렇지. ”

비로소 CU장은 확신에 찼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반응이 나온 걸로 보아 CU장도 전력기기사업을 맡아있는 구 상무를 내심 점 찍어두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기정사실을 내가 재확인한 셈이 되었다.

 

이런 여러갈래 지난날의 사실들이 혼자 맘에 걸렸다.   옛날의 직속 상사인 데다  여러가지의 사연들로 제 발이 저린 격이었다.   나로서는 생각만 해도 난감했다.   만일 걸고넘어지면서 따지고 들어올 때 일일이 대응을 하자면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

이 상무의 성격을 잘 알았다.  굉장히 치밀하고 꼬장꼬장한 일면이 있었다고집과 개성이 강했다.   본인의 기분에 수틀린다 싶으면 상대방이 나가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역전빌딩으로 이 상무를 만나러가는 차중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긴장의 끈은 팽팽했다.  세 사람 중에 이 상무야말로 가장 껄끄러운 상대였다.

 

여의도 트윈타워를 출발해 마포대교를 건너며 이런저런 흘러간 일들을 곰씹고 있었다마침 10년 전의 일 하나가 떠올랐다.  

 

79년도니까 내가 금성계전에 입사한 바로 그해였다.  지난해 금성통신 사장으로 이동한 백중영 사장이 당시 신임 이사였다. 바로 전년인 78년에 금성계전 임원로 승진되었다내가 입사할 당시 바로 전해 임원이 된 그야말로 팔팔하고 젊은 마흔두살의 신임이사였다.

 

총무부장은 말이야, 일을 그따위로 할 거야. 어이, 총무부장. ”

 

과장이었던 나는 책상에 엎드려 일을 하다 고함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백 이사가 복도를 지나가다 반동자세로 이창재 총무부장을 노려보며 서 있었다.  자그만 키에다 당차 보이는 체구였다이 부장은 얼결에 몸둘 바를 몰랐다.   

총무부 사원은 물론이거니와 멀리 떨어진 재경부서 사원들까지 백 이사의 갑작스런 큰 목소리에 놀라 하던 일을 멈추고 멀건히 두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얼굴이 시뻘개진 이 부장은 구부정하게 선채 속수무책이었다설령 이 부장이 할 말이 있다손 치더라도 임원을 맞대고서 반론을 제기할 만큼 강단있는 성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더더욱 이 부장은 공주가 고향인 충청도 양반본토박이 출신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말야. 어이, 이 부장. 일이라고 하고 있어? ”

 

바짝 목에 힘을 주며 기세등등한 백 이사는 삿대질까지 곁들여 이 부장을 궁지에 몰아넣었다백 이사와 이 부장이 나이로는 한 살 차이였다.

특히 총무부.  간접부서는 뒷바라지하는 일이어서 생색나는 일이란 없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가끔 퇴근길에 동아상사에 몰려가 간이의자에 둘러앉아 골뱅이무침 맥주 한잔으로 그날 있었던 일을 복기하며 자조했다총무부장이라는 자리는 사장의 지근거리에 때깔이 나기도 하지만 별 이유없이 동네북이 되기 일쑤였다.

 

더더욱 총무부는 윤봉순 관리 상무 라인이었다백 이사는 영업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업무 라인으로는 내가 소속된 총무부와 관련이 없다이건 분명히 임원들끼리 보이지않는 파워 게임의 소산이자 자기과시를 통한 길들이기였다그 서슬과 틈바구니에서 깨지는 건 송사리였다.

 

입사한지 얼마 안된 나로서는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알 수 없었다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이 광경 자체가 꼴불견이었다내가 이 부장의 부하라는 사실과 또 별개였다.

서너 달 만에 이런 사례가 벌써 두 번째였다짐작컨대 이미 자주 벌어졌던 일임에 틀림이 없었다이 부장의 행동과 표정으로 미루어 이제 만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절대복종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는 이 부장의 아리송한 표정이 내 시야를 어지렵혔다백 이사가 물러간 뒤에도 회전의자를 돌려앉아 바깥을 내다보며 기분을 삭힐지언정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다만 퇴근할 때 회사 인근 대폿집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한잔 헐텨?"

 

지철호 인사,임처일 법제과장 그리고 내가 조용히 동행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기안한 품의서에 협조사인을 받으러 백 이사 방에 들어갔다사실 이 부장이 등을 떼밀다시피 하여 부장을 대신해 과장인 내가 간 것이다.  업무상  결재가 끝나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백 이사에게 말을 꺼냈다.

 

이사님. 오만 사원(많은 사원들)이 다 있는데 총무부장을 그렇게 메방을 줄 수 있습니까못마땅한 일이 있으시면 여기 불러서 하면 안되겠습니까?   여사원들 앞에서... 그건 심하십니다. ”

 

백 이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뜨악하게 쳐다보았다

 

어이, 김 과장. 김 과장은 회사에 온 지 얼마 되었어? ”

끌어당기듯 내는 특유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백 이사는 나를 노려보며 새삼 자세를 바로 잡았다

“ ................. ”

내가 굳이 대답을 할 필요가 없는 물음이었다나는 다소 긴장하며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당신, 아직 회사를 몰라서 그래.   좀 가만히 있으라구. ”

“ ................. ”

 

 

확실한 건, 이후 이런 사례가 전혀 발생하지않았다는 사실이다

 

총무부장은 말이야, 그따위로 할 거야. 어이, 총무부장. ”

이창재 총무부장이 백중영 이사로 부터 이런 말을 듣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백 사장의 기억사전은 아이템에서 다양했고 용량면에서 방대했다.  다들 기억 안했으면 하는 기억도 적재적소 적시에 술술 풀어내는 기억의 원천에 놀라지않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제기한 그 날의 직소는 필히 입력이 될 법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사건이었다그러나 그 이후 내가 아는 한, 백 사장의 메모리에서 한번도 들추어진 적이 없었다.

나도 이 사실을 상위자인 이 부장에게 이야기 한 적이 없다지금 이 시간까지 이 상무는 모를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로고보니 10여년 전에 세 사람 사이에 그렇고 그렇게 묻혀 지나간 해프닝이었다.

나는 이때를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었다어떻게 보면 이 상무가 나에게 진 빚일지도 모른다

 

오늘 이 이야기를 한번 해볼가 말가. ’

 

 

역전빌딩은 8월도 중순으로 넘어가  일부 사원들은 뒤늦은 휴가를 다녀오는 등 아직 한여름의 느긋함이 사무실에 넘쳤다.  긴장하며 이창재 상무 방을 노크했다.  미리 전화를 해두었기에 이 상무는 기다리고 있었다

 

한 부장을 데려간다면서... 한 부장한테서 얘기 들었어. ”

나를 보자마자 이 상무의 첫마디였다평소와 달리 오히려 이 상무 쪽에서 실마리를 먼저 풀었다감을 잡기 힘든 깐깐한 초반 설교를 각오했던 나로선 뜻밖이었다.  ‘ 크레므린 이라는 별명이 걸맞지 않은 선수(先手)였다.  선수에 깔려있는 지뢰를 걱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부장이 돌아가서 귀띔 겸 상황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내가 직접 상위자에게 말할 때까지 보안을 유지하라고 당부를 했지마는 지켜지지 않았다.

 

잘못된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이 상무님같이 경험이 많으시고 조직을 두루두루 엮어 가실 수 있는 분이 맡으셔야 되는데... 먼저 알고 계시니 뭐라고 말씀을 더 드릴수가 없습니다승낙해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

알았어요. ”

 

이 상무의 반응이 너무 쉽게 나온 걸로 보아 마음을 비웠다는 뜻 같았다지금까지 이 상무에게서 내가 봐온 스타일이 아니었다.

알았어요의 어감은 분명 유쾌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왕 결정된 상황에 순응하고 있음이었다

 

고맙습니다. ”

나는 재빨리 인사를 했다.

 

가장 고전을 면치못할 걸로 생각했던 관문을 의외로 너무 쉽게 통과했다는 안도감이 몰려왔다만리동 고개를 넘어 여의도로 돌아오는 차 중에서 내내 생각했다그 분답지 않게 빠른 결정이 고마웠다

 

 

 

   다음은 자동화 사업부의 박진홍 부장이다.   박 부장의 상위자는 자동화 사업부장 이용우 상무다자동화 사업부도 역시 역전빌딩에 있었다.

 

매킨지의 풀 멤버는 일본인 두 사람과 한국인 한사람이다.   매킨지 친구들은 물론 공용어가 영어이긴 하지만 산전 프로젝트는 작업의 내용과 인적 구성으로 보아 일본어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히타치, 후지전기, 미쓰비시 등 일본회사들과 오랜 합작관계로 있었기 때문에 대체로 일본어가 강했다.

박 부장은 일본 주재원을 거쳤다.   전공이 엔지니어 출신이므로 에이플랜 팀으로서 빼놓을 수 없는 적임자였다.   게다가 가장 고참임이어서 서브 팀장으로 나는 점찍어 두고 있었다서브 팀장에게 팀 멤버를 통괄하며 업무 조정과 추진의 가교역할을 부여할 예정이었다 

 

자동화 사업부는 흑자를 내지 못한 만년 적자사업부였다.   그러나 공장 자동화 즉 FA( Factory Automation )사업은 기존의 주력사업인 전력기기, 엘리베이터에 비해서 첨단 시스템 기술을 표방하는 산전CU의 차세대 주력사업이다.

생산 제품의 광고 문안에 팩토피아 라는 표현을 썼다.   FA사업을 핵심으로 첨단의 기술로 무장한 산전의 기업 이미지를 심어갔다.

 

이용우 상무는 전임자가 정도(正道)경영 면에서 불명예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게 된 임원의 후임자였다잘되는 집은 잘되는 이유가 단순해도 안되는 집안은 이래저래 복잡한 법이다적자 사업일수록 사연은 얼키고설켜 복잡했다.

사업책임자가 다반사로 바뀌었다그럴수록 조직은 불안하고 사기가 떨어졌다.   본질을 호도하는 사람 바꿈으로 해결이 될 성질이 아니었다문제는 사업 본질에 접근이다특히 당시 자동화사업은 생산현장이 창원공장과 오산공장으로 나뉘어져 있다시너지 창출과 거리가 멀었다.

그 즈음 단안을 내려 오산공장으로 생산 현장을 통합했다.  CU장은 새로이 맡긴 이용우 상무에게 많은 주문과 동시에 힘을 실어주었다기대에  부응하여 다음 해 상무로 승진했다이희종 CU장의 관심과 전폭적인 뒷받침은 누가 보아도 명확했다.

 

이 상무가 자동화 사업부를 맡고 나서 안정이 되는 것 같다. ’

 

경영회의나 실적 보고회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격려성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다른 사업부장들이 부러워했다.

박진홍 부장은 여기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기에 에이플랜 팀으로 데려온다는 건 나 자신도 여간 부담스런 게 아니었다.

 

사전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난들 어떡하라는 거요?

아니나 다를가 이 상무는 나를 보자마자 언성부터 높였다내가 나타나기만을 벼르고 있었던 것처럼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았다. 괄괄한 성미가 그대로 나타났다. 

“....................” 

 

에이플랜도 좋아요통합도 좋아요.  현업에서 영업도 해야할 거 아니요. ”

“ .................... ”

 

나는 이 상무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했다.

 

“ CU장한테 가서 안된다는 걸 내가 분명히 말씀드릴께. ”

이 상무는 자기 말도 끝나기 전에 의자를 획 돌려앉았다. 

“ .................. ”

나는 도리없이 묵묵히 앉아있었다 

더 이상 이제 그 말은 치웁시다. ”

이 상무는 여전히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결론을 내리듯 내뱉었다.

 

나는 한 마디도 하기 전에 나더러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엉켜버린 실타래를 어디서 풀어야할지 난감했다.  상당 시간 줄다리기가 예상되었다그러나 시간이 많지않다더더욱 박 부장은 서브리더로 점찍은 터여서 어느 누구보다 빨리 선발을 해야할 필수인원이다.

 

나는 부득이 입을 열었다지금 결론이 안나도 좋았다일단 설득이 필요했다.

 

박 부장의 역할로 봐서 이 상무님의 반대, 이해합니다사업부가 먼저 살아야하는 데는 저도 공감합니다다른 사업부도 아니고 자동화사업부에서 박 부장을 빼야한다는 것이 저도 부담스럽습니다. ”

이해하면 됐어요. ” 

전들 하고싶어 합니까. 회사의 명령이니까 하는 거죠. ”

그만 합시다. ”

이 상무님도 어려운 사업 맡으셨습니다만 저도 좀 이해해 주십시오. ”

김 이사! 제발, 안되면 안되는 줄 알아요!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초반 강공의 서슬은 갈수록 퍼랬다이 상무는 작정을 한듯 막무가내였다원천봉쇄 작전을 폈다피차 팽팽한 접전이 예상되었다.  어차피 오늘은 틀린 일이었다.  

 

시선도 마주치지않은 채 나는 이 상무 방을 물러나왔다.   내일 한번 더 찾아오리라 마음을 먹고 나오는데 저만치 박진홍 부장 뒷통수가 보였다고개를 숙인채 무언가 열중하고 있었다이 상무의 고성이 오간 대화를 귀를 세우며 틀림없이 엿들었을 것이다

임원들 틈바구니에 끼어버린 된 박 부장의 마음고생은 보나마나였다.  이 상무의 성격에 내가 돌아온 뒤 박 부장을 그냥 둘리 만무했다.  그럴수록 빠른 결론이 필요했다.  

 

여의도 트윈타워의 내자리로  돌아와 두어 시간쯤 지난 저녁 무렵이었다.   내 앞에 박 부장이 갑자기 나타났다그 순간 나는 긴장했다박 부장의 표정부터 살폈다뜻밖에 박 부장의 얼굴은 밝았다.

 

이 상무님이 김 이사한테 가서 일 하라는 말을 조금 전에 듣고 왔습니다. ”

뭐라고? ”

 

사이에 의외의 상황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나중에 파악된 자초지종은 이랬다내가 다녀간 직후 이 상무는 곧장 트윈타워로 달려와서 이희종 CU장을 만났다

 

이제 자동화 사업이 안정되기 시작했는데 기획부장인 박 부장을 빼내도록 하시면 어떡하느냐. ’

 

CU장에게 따지듯이 불만을 토로했다

 

이 상무의 불만을 듣고 난 CU장은 딱 한 말씀을 하셨다.

 

그럼 이 상무가 그 일을 해봐. “

 

 

(21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