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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김상무 아리랑(18화) 나는 매킨지와 생각이 달랐다

 

 

18.    

 

 

  다음날 아침 나는 실무 준비회의를 소집했다. < 에이플랜 프로젝트 리더 >로서 공식적인 첫 행보였다.

 

몇년 째 트윈빌딩 동관의 구자경 회장실의 남용 상무 산하  V-추진본부 한켠에 둥지를 틀고있는 매킨지에서는 후지모토 겐지, 아라마키 겐타로, 최동욱 등 3명이 왔다. 회장실 V-추진본부에서는 하희조 부장이 참석했다.

서로 명함을 교환하면서 처음으로 상면을 했다. 후지모토와 아라마키는 일본인이었고 최동욱을 포함하여 모두 미국에서 MBA를 취득하여 매킨지 재팬에 입사하여 한국 사무소에 합류한 사람들이었다.

 

먼저 나는 이들에게 현재 산전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룹이나 산전CU에서는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산전CU 통합의 자도 꺼내지 않았다쓸데없는 부작용을 우려하여 물밑 작업으로 진행되어 왔다

법인의 합병은 자칫 태풍의 핵이 될 수도 있었다. 히타치,미쓰비시,후지덴키 등 해외 합작선을 비롯하여 국내 산업용 전기전자분야를 선도하는 금성산전의 동향은 업계에서도 초미의 관심이었다.

사내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노조를 비롯하여 사원들의 동요나 긴장감을 최소한 줄이자는 판단이었다.  3사 통합은 곧 인원의 감축과 맥을 같이하는 걸로 해석했다. 

정황으로 보아 3사의 통합은 언젠가는 감내해야 할 일로 알고있었지만 막상 닥치면 그 충격은 일파만파였다. 합병, 통합작업, 신체제니 하는 표현 대신 < 사업활성화 프로젝트 >로 부르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 '에이플랜', '에이플랜 팀'이라는 표현은 내부적으로 통용했다. CU장이 직접 명명한 문패이므로 자랑스럽게 사용했다. 나중에는 오히려 에이플랜, 에이플랜 팀이 전사적인 공식 명칭처럼 되었다 

첫해 93년도에는 < 금성산전 > < 산전마당 >등 사보에서 활자화된 사업활성화에이플랜'이라는 말은 전혀 없다. 기사 한줄 사진 한장 게재되지 않았다.  해가 바뀌어  94년으로 접어들면서 지면에 서서히 가시화되었다.) 

 

 

 

 

 

 

    매킨지는 에이플랜 팀에 선발될 산전요원은 7~8명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과장급이면서 엔지니어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했다. 거기에는 매킨지 나름대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추진 일정이 강행군이므로 체력에서 젊은 과장들이 낫다는 점이었다.

금성계전 5개년 계획 수립, NBP는 물론 최근의 OVA에서 나도 경험한 사실이어서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단기 완료형 작업이 반복될수록 집중적으로 인력이 투입돼야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났다. 특히 장기간의 특수 프로젝트일수록 그때마다 엄청난 로딩이 걸리곤 했다

 

둘째는 산전이 사업군이 많기 때문에 배킨지를 단지 기술적인 면을 보완해줄 理工系 전공의 엔지니어 중심으로 구성하자는 뜻이었다.

산전 CU의 사업은 SBU로 나누어서 7개의 事業群, 45개의 事業이었다. 部品 / 機器, 設備, 시스템이라고 하는 서로 다른 특성의 제품이 혼재해 있었다. 생산 방식도 양산과 수주 생산으로 나뉘어 있어 매킨지로서는 당연한 발상이었다.

 

 

  매킨지의 권고에 내 생각은 달랐다.  7,8명이 아니라 10여 명으로 인원을 늘리고 과장급이 아니라 부장급 중심으로, 理工系商經系와 반반 정도로 생각했다

 

에이플랜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의 앞날을 설계하는 우리 프로젝트였다. 수없이 현장에서 딩굴며 정보를 릴리스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한다 매킨지와 수없이 반복되는 프로젝트 팀 내부의 치열한 토론과정 없이 에이플랜 프로젝트의 성공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 조직문화를 생각할 때 직급이 낮을수록 리더십의 발휘가 염려스러웠다프로젝트 책임자 입장에서 매킨지를 앞에서 시종 주눅이든 모습을 보이는 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

 

이론과 논리에 밝은 MBA 출신의 매킨지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취약점은 산전의 이해였다7개의 事業群, 45事業에 이르는

산전CU의 현상 파악을 위해 때 맞춰 폭넓게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매킨지가 단시간에 이해시키는데는 지식과 경험 면에서 과장보다 부장이 훨씬 효율적이었다산전 팀원 모두는 매킨지의 성실한 학생이자 어느 면에서는 매킨지를 가르치는 선생이 돼야한다.

 

무엇보다도 부장들이야말로 에이플랜의 성공체험을 통해 하루 빨리 각 부문에 돌아가서 사업의 후계자가 되는 빠른 길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었다

 

  

  첫 실무모임에서 일정계획이 확정되었다. 이 달 안에 팀 활동이 정상적으로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전제로 일정을 잡았다.

 

* 818()까지 팀원 구성을 완료한다.

 

* 820() < 팀원 첫 모임 > 을 한다. 각자 기존업무는 26일까지 인계 완료한다.

 

* 819() - 25() < 프리 인터뷰( Pre-Interview ) >를 실시한다.

 

* 823() 매킨지, 청주, 천안공장 방문

 

* 827() 정상 근무를 시작한다.

 

* 830() < 에이플랜 킥업 미팅 >을 한다. 공장장 급 이상 전원 참석

 

* 830- 91< 에이플랜 팀 멤버 자체교육 >을 실시한다.

 

매킨지는 819일부터 25일까지 < 프리 인터뷰 >실시를 제안했다.   에이플랜 팀의 공식 출범도 하기 전에 하는 첫 일정이었다. 초기의 무드업이랄가 현상 파악을 겸한 사전 인터뷰를 매킨지는 중요한 단계로 생각했다

CU경영회의 멤버와 일부 사업부장을 대상으로 매킨지가 주도하는 면담으로 이희종 CU장,성기설 계전사장,김회수 기전 사장 면담 때만 나는 참여하는 걸로 했다.

매킨지는 그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렀다매킨지가 산전 멤버들에게 주는 초반 길들이기 충격 요법이기도 했다인터뷰 계획일정과 설문서는 후지모토가 초안을 잡는대로 내일 다시 상의하기로 했다.

 

인원을 선발하는 일이 지금 내가 당장 착수해야 하는 선결 과제였다. 오늘 일정대로라면 10여명의 부장들을 현업에서 빼오는 일을 닷새안에 해내야한다.

한펀, 에이플랜 팀의 활동 공간이 될 사무실은  바로 아랫층인 트윈빌딩 서관24층의 공용 회의실 구역에 마련하기로 하고 총무부를 통해 빌딩 관리사무소와 협의토록 했다.

 

 

(18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