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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김상무 아리랑(12화) “ 그럼, 사장님들은 어디로 가지? ”

 

 

 

12.     

 

 

 

   93년 년초부터 통합의 흐름은 CU내 임원 인사에서 나타났다. 87산전부문'( 90년부터 산전CU ’가 됨 )체제가 만들어진 이후 4개사 간의 임원 교류는 처음이었다.

 

산전CU에서 산전, 계전, 기전 3사 간에 임원 4명의 인사이동이 있었다. 기전에서 산전으로 박충헌 전무, 계전으로 남세현 상무, 계전에서 기전으로 구자욱 전무, 이강룡 이사가 이동되었다.  곁들여 관리자 9명의 교류도 동시에 있었다.

CU 내에서 임원의 교류는 필요했다. 동질문화의 구축 차원에서 참깨가 천번 구르는 것보다 호박이 한번 구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동질문화의 구축은 산전에 있어 최상위의 화두였다. 그만큼 4개 회사의 태생부터 비롯하여 기업문화와 조직 생리가 이질적이었다.

 

내가 인사부문 담당이므로 인사이동의 흐름은 대충 먼저 알았다. 나는 일찌감치 이번 인사의 내용이 몰고올 파장을 염려했다. 조직의 정서상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미리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희종 CU장이 의아했다.

 

안재화 전무가 회장실의 감사실로 옮기면서 현역을 사실상 은퇴했다. 그 자리에 기전의 박충헌 상무가 전무로 승진해 CU의 중핵회사인 산전으로 온 것이. 계전의 구자욱 전무가 직위의 선임자로서 오는 것이 순리였다. 인사교류를 한다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특히 전임의 안 전무가 조직을 아우르는데 탁월하게 기여했다. 유별난 인적 구성과 복잡한 사업영역을 가진 산전에서 안 전무의 역량은 호감을 샀다. 후덕한 시어머니이자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아저씨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관리 지원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안 전무의 입에서 때로는 고함소리가 나왔으나 그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안 전무가 남겨준 넓이와 길이는 떠나고 나서 알았다. 안 전무는 직위 정년에 걸려 부득이 하게 산전을 떠나야 했다.

CU 내 임원들은 물론 타 CU에서조차 납득할 수 없는 산전 인사에 의문을 표시했다. 통합을 앞둔 사전 포석으로 보기에는 앞뒤가 안맞는 내용이었다

구 전무도 스타일을 구겨버렸다. 무성한 지방방송으로 보아 구 전무의 이동이 조만간에 있으리라 점쳐졌다. 아니나 다를가 다음해에 다른 회사로 전출되었다. 

 

 

 

   수군거리는 사내 통신들이  이희종 CU장의 귀를 비껴갈 리 만무했다. 조직의 흐름에 무신경한 듯 하면서도 누구보다 민감했고 정보도 빨랐다

한참 지난 두어 달 후 어느날 CU장은 나에게 넌즈시 물었다 CU장 질문의 초점은 이번 인사의 후유증에 대한 분위기의 파악에 있는 것 같았다

 

"잘못된 겁니다. 실팹니다."

 

나는 결론부터 말했다. 

 

"난 무죄야."

 

쓴입맛을 눌러다시며 말했다.

  

사장님이 무죄면 누가 유죕니까? ”

 

나는 정색으로 반문했다.

 

CU장은 박 전무가 산전으로 온 결정을 무죄 라고 표현했다. ‘ 무죄 라는 표현은 당신은 반대했으나 회장실의 결정을 결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말이었다 

이희종 CU장은 이번 인사에 대해 들끓는소리를 이미 듣고 있었다.  조직의 아우성이 CU장의 실토를 낳았다

 

 

 

 

   119, 새해의 첫 경영회의에서  이희종 CU장은 < CU 통합 >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을 했다.

 

처음으로 CU4개 법인간에 인사 교류를 실시하였습니다. 이는 95CU 통합에 따른 동질 문화의 형성과 조직 전략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데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CU 통합을 위한 인사 기획 기능을 확대하여 제도 개선과 표준화, 조직 운영안을 점진적으로 검토해 나가야 합니다. “

 

사업도 조정하거나 통합하여 사업의 시너지를 내도록 해야 합니다. 제어기기( 리레이 및 스위치 류 ) 는 기전에, 특수기기( 발브 )는 산전의 플랜트사업부에 흡수 합병키로 결정했습니다. “

 

95년을 목표로 통합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CU의 통합이 가시화 된다는 선언이었다. 게다가 자그마한 사업들이긴 하지만 일부 사업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결정은 그 자체가 크나큰 신호로 비쳐졌다.

 

산전CU 통합의 물꼬는 트이기 시작했다.

 

첫 인사교류가 통합으로 가는 길을 재촉을 했다. 지금까지 산전CU의 동질문화 형성 정도의 표현에서 산전CU 통합 으로 구체화되었다.

서로 주거니받거니 소규모나마 사업이 재편성된 것은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상호 중복이 되는 사업부문일수록 더 했다.

어느 회사쪽이 주축이 되어 통합되느냐에 따라 소속사원들의 위상이 갑이 되고 을이 되는 것으로 보았다. 회사 간, 사업부 간의 자존심으로 연결되었다.

 

년 초부터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은 거셌다. 조직에 번져올 파장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7월 들어 그룹은 <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영혁신 추진방안 >을 발표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신경제 정책에 부응하기 위한 발빠른 조치였다. 대기업 그룹들은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모범생임을 경쟁적으로 알렸다.

  

713일자 조선일보는 이렇게 기록했다.

 

럭키금성그룹은 13일 사장단 회의를 갖고 신경제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13개 계열사를 정리하기로 했다. 또 대주주 지분을 5% 이내로 억제키로 하고 호남정유, 금성산전, 금성 엘렉트론, 금성정보통신 등 4개 사를 공개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금성계전, 금성기전 등 두 회사가 금성산전에 합병되고 국제전선이 금성전선에,......

 

이번에 처분되는 계열기업의 정리로 럭키금성그룹은 계열기업 수가 54개에서 41개로 축소된다. .........

 

럭키금성은 화학과 전기 전자사업을 핵심사업으로 하고 이를 뒷받침할 금융, 정보, 서비스사업을 강화하며. .........

 

경영합리화를 위해 그룹을 21개 사업문화 단위( CU )로 구분하고 각 단위를 팀장의 자율 경영에 맡기며 그룹회장은 계열사 전체에 통용되는 사안에 대해서만 지원기능을 하는 전문경영 체제를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 “

 

금성계전, 금성기전 등 두 회사가 금성산전에 합병되고... ’

 

 

금성산전 3사 합병

 

언론은 다투어 대문짝 같은 표제를 뽑았다. 갑작스런 언론 보도였다. 정부의 '신경제' 정책발표 시한에 쫓긴 듯했다. 산전CU의 통합은 정부 정책의 일환이었고 내부적으로 LG그룹의 계열사 정리를 의미했다.

년초 경영회의에서 이희종 CU장의 ‘ 95CU통합 발언이 급기야 산전 CU 3사의 ‘합’이라는 전 사회적인 선언으로 이어졌다.

 

사내의 분위기는 아연 긴장하기 시작했다. 본사,공장,사업현장 삼삼오오 모이면 화제는 '통합'이었다.

 

과연 어떤 형태의 통합이냐, 흡수 합병이냐. 해외의 합작선이 이를 인정해 줄 것인가. 사업의 통합으로 인원은 어떻게 될 것인가. 매출은, 시장 점유는 유지 될 것인가. 이희종 사장은 언제까지 있을 것인가. 통합 실무작업은 누가 맡을 것인가.등등의 관심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더더욱 당장 작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은 현실의 긴박감을 더해주었다. 구체적으로 조직까지 구성하여 곧 착수한다는 말이 돌자 긴장은 최고조를 이루었다.

 

 

물론 몇 년 전부터 대비를 해왔다. 언젠가는 하나의 CU가 될 것이고 또 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공감했다.

CU 4사가 동질문화를 이룬다는 차원에서 그동안 인사, 회계, 생산관리, 자재, 품질관리 등 9개 분야를 나누어 업무를 통합할 것은 통합하고 제도가 다른 것은 하나로 조정하는 등 부분적인 노력을 단계적으로 해왔었다

.

 

나의 경우 홍보, 업무는 3년 전부터 산전CU 전체를 하나의 조직단위로 하여 관장을 해왔고, 교육 훈련, 연수도 금년 초에 기능을 통합했다. 

이 정도의 노력은 이제 서론에 불과했다

 

 

 

 

   “ 그럼, 사장님들은 어디로 가지? ”

 

조직의 통합은 사장자리부터 없어짐을 의미했다

 

합해지면 우리 사업부장이 밀릴 게 뻔해. 덩치가 작잖아. ”

 

사업 책임자인 사업부장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CU의 통합은 중복사업의 통폐합을 전제로 했다. 사업의 통폐합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임원들의 위치도 달라질게 분명했다.

 

사원들도 마찬가지다. 사원들도 이합집산은 물론 인원 정리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특히 간접부문은 더더욱 그러했다. 3사 통합에서 인원 축소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이 되는 권역이 간접부문이었다

 

영업과 공장이야 별 변화가 있겠어. 간접부서가 낙동강 오리알이지. ”

 

이희종 CU장 그만 두면 다음 CU장은 누가 되나? ”

 

사원들은 트윈빌딩 서관 17층 회사 휴게실의 자판기에서 종이커피를 한 잔씩 뽑아들고 삼삼오오 화제에 올렸다.

‘3사 통합’, ‘합병이라는 화두는 회오리바람을 몰고왔다. 변화에 대한 불안감이 조직 구석구석에 파고들었다. 장래에 대한 막연함이 오뉴월 7월에 내린의 한파주의보였다.

 

(12화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