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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무 아리랑

김상무 아리랑(11화) “ 김 이사. 김 이사가 당선되었어. ”

 

 

 

11.

 

 

 

     , 김 이사. 김 이사가 뽑혔어. ”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중앙에 자리 잡은 이희종 CU장이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김 이사! 투표를 했는데 93으로 당선되었어. ”

 

CU장의 목소리는 경쾌했다. 그러자 경영회의 참석자들은 한마디씩 거들었다.

 

' 당선이라니. 내가 뭘 출마라도 했다는 말인가. '

이렇게 내가 실소할 틈도 없이 일제히 들려오는 말들이 있었다.

 

압도적이야.”

인기 좋았어. ”

김 이사, 축하해요.”

" 잘 해 보소. "

 

내가 엉거주춤 뒷자리에 앉자 이희종CU장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일 할 사람들 뽑고 장소도 빨리 정해. 김 이사에게 전권을 다 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진행하도록... ”

 

이어 경영회의 멤버들을 돌아보며 큰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전적으로 협조토록 합시다. 김 이사에게 시켰지만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야. ”

열심히 해봐요. 김 이사 뿐이야. ”

잘 할 거요.”

정말 잘 됐어.”

 

격려의 말이 아낌없이 또다시 표출되었다. 혹시나 했던 불똥이 비로소 자신들을 비껴갔다는 홀가분함인가. 목소리가 클수록 그랬다.

 

당선.

산전CU< 3사 통합을 위한 태스크 팀 >< 프로젝트 리더 >로 내가 선발되었다는 뜻이다. 통합 작업을 맡으라는 결정사항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어쩌면 2년 전 OVA와 이렇게 닮은 꼴일가. 

 

경영회의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에 표결은 더러 있었다. 당사자가 같이 자리하고 있거나 피차 입장 표명이 난처한 안건일 경우에 그랬다. 예민한 문제를 쉽게 푸는 해법으로 원용했다. 이희종 CU장의 짓궂은 단면이었다. 이럴 경우 꼭 개구쟁이 같아서 가끔 주위의 웃음을 동반했다. 이번 결정과정도 이런 유형이라는 짐작이 갔다.

   

통합 작업.

산전CU 내 금성산전, 금성계전, 금성기전 세 회사를 통합하여 하나의 회사로 만드는 작업이다. 3사 통합은 산전의 미래상 즉,비전을 구상하는 첫걸음이다. 간단치 않은 작업일 뿐만 아니라 매킨지와 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한 일이다.

3사 통합 작업이 가는 길은 삼척동자도 짐작했다. 사장들의 면면으로 보나 노조들의 반응으로 보나 실타래같이 얽힌 각사의 이해를 조정하는 일이 난제 중에 난제였다. 게다가 세 회사는 모두 히타치,미쓰비시, 후지덴키 등, 해외에서 자본과 기술 합작선을 가지고 있어 해외 문제까지 걸린 사안이다.

그래서 이번만은 직위가 그럴듯한 전무나 상무 중에서 누군가가 통합 작업을 맡지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했다. 전무로는 이중칠, 박충헌 전무가 있고, 상무도 이창재, 서정균, 유창섭 상무들이 있었다. 이력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나보다 고참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맡고싶어 하지 않았다.

 

 

잘 할 거야. ”

이희종 CU장은 나를 앞세우며 차근차근 기정사실로 못을 박았다.

“ ............... ”

그리고... 김 이사. 팀 명칭도 지어봐. 이름이 길지 않도록... , 전번 매출채권 회수 때는 <  C 플랜  >이었지? ”

CU장은 앞서나가며 사뭇 흥분되어 있었다. 어느 때와 달리 장구치고 북치고 호들갑스럽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배려인가. ’

 

팀 명칭은 말이야.... ”

CU장은 팔로 턱을 괴고서 잠시 생각했다. 시선이 이희종 CU장의 입으로 집중되었다.

“ ... 그러면 이번 건 < 에이플랜 ( A Plan ) >이라고 하지그래. ”

좋습니다. ”

모두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주주총회에서 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킬 때처럼 전원 찬성의 동의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 에이플랜 >까지 즉석에서 결정이 되었다. 내친김에 < 에이플랜 팀 >이라는 팀의 문패까지 달아주었다. 이희종 CU장은 작심한듯 일사천리 속전속결이었다.

 

김 이사도 왔으니까 한번 더 강조합니다

이희종 CU장은 지금까지 논의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했다. 나에게는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10조처럼 들렸다.

 

첫째, 우리는 CU의 통합이 물리적인 단순한 합병은 뜻이 없습니다. 첫 단계로 조직의 진단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둘째는 매킨지의 도움을 받습니다. 외부의 도움과 제안이 때로는 자존심을 상하게 만듭니다. 우리 스스로를 드러내놓고 평가를 받아봅시다. "

 

CU장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뒷줄에 앉아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셋쨉니다. 김 이사. 바로 착수해요. 김 이사는 지금까지의 업무를 박충헌 전무에게 인계하고 에이플랜을 총 지휘 해주기 바랍니다

 

CU장은 시선을 돌려 경영회의 참석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에이플랜 팀'에게 전적으로 지원과 신뢰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

 

 

 

 

 

 

이날의 경영회의 멤버는 이희종 CU, 김회수 기전사장, 허창수 산전부사장, 성기설 계전사장, 권태웅 하니웰사장, 최호현 연구소장, 구자욱 기전관리담당 전무, 이중칠 산기사업본부장 전무, 박충헌 산전관리본부장 전무, 구정길 시스템사업본부장 전무, 김용호 기전 승강기사업부장 상무, 서정균 전략기획본부장 상무 등 모두 12명이었다.

 

9 3의 압도적인 당선. 나머지 3은 누구일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두 표는 박충헌 전무이고 한 표는 서정균 상무였다. 세 표가 분산된 의미는 산전 조직의 저변에 흐르는 기류의 반영이었다.

 

장장 여섯 시간의 회의를 끝내며 이희종 CU장은 앞에 놓여있던 서류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 이거 가져가. "

 

 

(11화끝)

 

 

 

 

 

 

                                            위에 있는 사진 설명을 잠시 해야하겠다.

 

 

                           이희종 CU장은 부회장을 끝으로 1996년 회사를 떠났다.

 

"내, 에이플랜 팀이 그렇게 고생한 줄 몰랐어.

늦었지만 오늘 내가 저녁 한번 살게."

 

                                   그날,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이플랜 팀이 구성된 1993년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에이플랜 팀이 해체된지 5년이 지난,

                                         2003년 여름 어느날 이희종 CU장님이

                                               우리 에이플랜 팀을 초청했다.

 

                                           서울 강남의 어느 중국 음식점이었다.

 

 

     '김상무 아리랑'은 1993년부터 1998년까지 5년간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