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벽까지 억수로 퍼붓던 비였다.
바람 잘날 없는 바닷가인데다 집터가 언덕배기라 창대비에 마파람까지 보태면 맘을 졸인다.
장마전선이 내려간다더니 긴가민가 했는데, 한나절을 넘기며 수꿈해지더니 하늘이 파랗게 한없이 높아졌다.
오늘 새벽에 동창이 밝아오는 걸 보니 장마가 일단 물러갔다는 푯대가 확실하다.
하늘에는 달이 남아있고 전깃줄엔 제비가 재잘거린다.
하룻만에 확 달라졌다.
햇살 가득한 마당에 나서니 지열이 푹푹 올라온다.
사우나 한증이 이럴 거다.
이웃 배씨 아줌마의 '훠이 훠이' 콩밭 산비둘기 쫒는 목소리가 오늘따라 시원스레 툭 터였다.
비가 내릴 땐 그 소리가 짜증스레 들리더니 그도 하릇새 달라졌다.
박 회장네 콩밭인 우리 밭 아래도 아침부터 손길이 바쁘다.
아주머니가 밭에 나와 비바람에 날아가버린 허수아비 잔해를 찾아 다시 조립을 한다.
집 뒤 버갯속영감 댁 고구마밭에서는 풀 깎는 소리가 요란하다.
장맛비 뒤에 나를 긴장시키는 건 다름아닌 잡초다.
채소인지 잡초인지, 잡초가 가당찮다.
그동안 오랜 가뭄에 땅바닥에 엎드려서 조용히 연명하던 잡초들이 이번 비로 제세상을 만났다.
주인 행세를 할 태세다.
나는 풀약인 제초제를 쓰지않기에 예초기로 깎아내고 고랑을 다니며 시나브로 일일이 손으로 들어내야 한다.
이것도 땅이 말랑말랑하고 크기가 고만고만할 때를 놓치면 구제불능이다.
다음 주에 다시 북상한다는 장맛비가 한번 더 지나가면 케세라세라 잡초 쑥대밭을 각오해야 한다.
그 사이에 밤송이가 선듯 가을로 다가간다.
어느날 꽃이 피는 가 싶더니 금방 대추도 달렸다.
도라지 흰꽃이 몰래 피었다. 수줍은 백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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