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나자 날씨가 확 풀렸다. 엊그제 아침, 마당의 평석에 내린
눈에다 입춘이라는 글자를 새겼는데 며칠 사이에 마치 먼 이야기가
되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어귀 언덕바지 꿩바위 고갯길의 눈이 녹기 시작한다.
동네 사람들은 '꽁바우' 눈이 녹아야 봄이 되었다고들 한다. 동네를 나거나
들 때 응달지고 가파르고 미끄럽고 바닷바람마저 몰아치는 이 꽁바우
고갯 모랭이가 겨우내 그만큼 위험하고 성가신 존재였다.
승용 자동차, 우편배달 집배원 오토바이, 택배 차량은 물론, 하루에 여덟
번 드나드는 노선 버스도 여기선 바짝 긴장했다. 경로당을 오가는 노인들은
물론 전문 마실꾼 아지매들도 엉금엉금 길 바에야 차라리 출입을 삼가했다.
오늘 드디어 뚜껍게 얼어붙었던 꽁바우 눈이 녹는다. 가로림만 바다 물빛에
어리는 햇살이 벌써 다르다. 입춘은 역시 입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