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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기

다솔사 일기(1) 봉일암

 

1970년 1월13일(12. 6) 火  晴

이불뭉치와 가방을 챙겨 10시20분 bus를 타고 다솔사로 들어왔다. 작년 진하 군과 처음 이곳을 찾아올 때 형색 그대로다. 카메라,몇 권의 책, 일기장, 트랜지스터를 넣었으니 제법 무겁다. 애당초 밑에 절에 있기로 하고 짐을 풀었으나 마땅치가 않아 저녁 공양 후 북암으로 올라와 혜담 스님한테 간청을 했다. 보살님과 한 방을 쓰도 좋으니 북암에 있도록 해달라고 했더니 작년의 정을 못잊어 허락해 주었다. 보살님 방을 내일 내어 주겠다기에 하루 저녁을 법당에서 잤다. 내가 들어옴으로서 북암은 다섯 명이 된 셈이다. 환영회를 겸하여 엊저녁에 먹다 남은 거라면서 모과생김주와 보살님이 오늘 함양에서 돌아오면서 가져온 떡과 곶감을 내어 놓았다. 저녁이 이슥하도록 놀다 법당에 들어가니 스님이 이불까지 펴놓았다.

 

1970년 1월14일(12. 7) 水  晴

간 밤의 술로 일어나기 싫었으나 장소가 장소라 예불에 참석하지않을 수 없었다.  .... 보살님이 방을 비워줬다.

 

1970년 1월15일(12. 8) 木  晴

.... 간밤에 쥐들 때문에 잠을 설쳤다. 벽장 쪽 커텐을 치긴했으나 쥐가 돌아다니면서 노는 바람에 깊은 잠을 못잤다.

 

         ( 봉일암 앞에서 주지 慧潭, 처사 一心, 보살 玉蓮花, 月峰,

           白岩, 順心)

 

                     (아래 우물에서 바라본 한겨울의 봉일암. 수채화)

 

다솔사(多率寺)의 절간 생활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대학시절 겨울 방학 때 이불과 옷가지를 싸들고 69년, 70년 연 이태 다솔사 뒷쪽 언덕배기에 있는 암자인 봉일암(鳳逸庵)을 찾았다. 본절인 다솔사에서 서북쪽에 있어 흔히 북암(北庵)이라 불렀다.

 

곤양 다솔사는 진주에서 육십 리 남짓 거리인데 버스가 자갈길 흙먼지를 풀풀내며 달려 거의 두 시간이 걸렸다.  앞이(흔히 '앞대가리') 툭 튀어나온 버스는 시도 때도 없이 가다 서다 반복했다. 그럴 때면 운전수와 조수가 차 밑에 드러누워 정비를 했고 ㄴ자로된 쇠막대를 돌려 시동을 다시 걸곤 했다. 언제 어디서 고장이 날지 모르기 때문에 '빠스' 건 '도라꾸'건 조수를 달고 다니던 60년대, 고장 안나고 제대로 가면 뜻밖의 행운에 다들 내리면서 '그 차 엔진 죠시 좋네잉.' 3개 국어를 기분좋게 구사하던 시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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